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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강기희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4년, 대한민국 강원도 정선 (물고기자리)

사망:2023년

최근작
2023년 6월 <정선>

개 같은 인생들

오늘도 어김없이 해는 뜨고 진다. 뜨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이나 지는 해를 등지는 사람이나 희망 없기는 마찬가지인 세상이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더 절망스럽다. 어쩌면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이처럼 힘겨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답답증과 함께 멀미가 날 것만 같다. 희망 없이 그저 주어진 목숨만 부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직자가 그러하고 병들고 가난한, 이 땅에서 소외 받은 이들이 그러하다. 그들에게선 한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학이 그들을 위로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내가 더 한심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이 땅에서 실종되어버린 희망이라는 단어를 되찾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는 일은 좌초된 보물선을 찾는 일보다 더 힘들었다. 내게도 없는 희망을 누구에게 찾아 준단 말인가. 내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여 부끄럽기 그지없다.

양아치가 죽었다

1 소설가로 살아온 지 스무 해가 넘었어도 소설집을 펴내긴 처음이다. 단편보다는 호흡이 긴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한 탓이었다. 그렇다고 단편 작업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과작이지만 문예지로부터 청탁이 오면 썼고, 그렇게 하여 완성된 단편은 몇 권의 책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쌓였다. 그럼에도 나는 단편은 늘 뒷전이었다. 그때마다 장편소설을 구상하거나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간 단편을 소설집으로 묶어야지 생각만 하던 중이었다. 막연히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몸에 덜컥 병이 왔고,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다. 서둘러 원고를 모은 나는 고명철 교수에게 평을 부탁하곤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다. 이번에 묶는 소설은 그동안 발표한 작품 중 일부로 강기희 소설의 특징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했다. 나머지 작품들은 그것만으로도 소설집 두어 권은 더 내겠다 싶지만 이미 지면에 나왔던 작품들이라 아쉽지만 따로 묶지는 않기로 했다. 처음 장편소설 집필에 들어선 게 1995년 무렵이니 세월이 제법 흘렀다. 그간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상금이 있는 공모 문학상도 받고 지금껏 여러 작품을 냈으니 작가로서의 삶은 나름 괜찮았다. 그러던 중 지난 유월엔 시집도 한 권 출간했으니 소설집만 출간하면 문학인로서 할 짓은 다한 셈이 된다. 2 고향 덕산기 마을에 돌아오면서 오지 산중에 숲속책방을 냈는데,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책방이 이래저래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이고 멀리로는 제주 부산 광주 목포 여수 울산에서부터 하동 진주 남원 당진 서산 전주 창녕 안동 대구 대전 충주 청주 제천 양산 울진 화순 춘천 원주 강릉 속초 홍천 삼척 동해 영월 평창 등의 인근 지역에서까지 책방을 찾았다. 전국에서 온 걸음들이라 고맙고 반가웠다. 도시의 책방이 하나둘 사라지는 시절이라 더욱 그러했다. 책방이 문을 닫는 시대에 책방을 찾아 천리 길을 달려온 이들이 있어 고마웠다. 정선 여행 중 지나가다가 들르는 게 아니라 책방이 목표였기에 더 고마웠다. 그동안 책방에서 내 첫 소설을 읽었다는 독자도 우연히 만났고, 작가가 되겠다며 한 수 지도를 청하는 어린 여학생도 만났다. 칠순 할머니께서 고등학생 손자를 데리고 와선 좋은 글귀를 써달라며 사인을 청할 땐 묘한 감정이 일기도 했고, 책에 저자 사인을 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은 문학 강의에 가까웠지만 다들 좋아했다. 이 마을에도 분교가 문을 닫으면서 공동체 문화가 사라졌는데, 지금은 책방이 학교가 했던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가수들의 콘서트나 시인 작가들의 문학 행사 등이 책방에서 열릴 때면 전국에서 모여든다. 행사 끝나고 참여한 사람들과 음식과 술을 나누다 보면 오랜 지기를 만난 듯 금방 친해지는데, 헤어질 무렵이면 다들 아쉬워 다음 행사를 기다리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화를 나누고 만들어내는 일, 나는 이것이 작가와 책방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 3 산첩첩 물첩첩인 아라리의 고장 정선에, 한국의 네팔이자 대한민국 최고 오지 마을인 덕산기에 탯줄을 묻은 작가로서 내가 할 일은 거의 다 한 것 같다. 그동안 문학의 이름으로 잘 놀았고, 행복했다. 4 작가로서 살아온 한 생生이 풍요롭진 않았지만 내가 자청한 길이라 그 가난이 부끄럽진 않았다. 지금껏 지켜봐 주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준 이들이 많다. 그들이 있어 내가 살았다. 진정으로 고맙다. 2022년 7월 여름 땡볕 덕산기 숲속책방에서 강기희

연산

조선조 여러 왕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왕이 있다면 세종과 연산이다. 그중 세종은 역사적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으나 연산은 왕이 아니라 둘도 없는 폭군인데다 불륜과 패륜 등을 저지른 천하의 잡놈으로까지 희화화되고 있다. 아무리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고 해도 연산에겐 너무도 가혹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12년이나 조선을 통치한 왕이 아니었던가. 만약 연산의 자손들이 살아 있다면 혹은 연산에 관한 자료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면 이러한 평가를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연산을 폭군이요 패륜의 왕으로 만들었을까. 그렇게 만든 근원은 다름 아닌 조선왕조실록의『연산군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연산군일기』는 역사적 사료라고 믿어도 될 정도로 사실을 기초로 하여 기록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보았다. 작가의 눈으로 본 『연산군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박원종 등이 자신들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꾸며낸 책에 불과했다. 기록에는 그들이 알리바이를 맞추기 위해 연출한 흔적 또한 곳곳에 보였으나, 그 역시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들통 날 수 있는 알리바이가 오백 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연산의 역사가 단절되었다는 것과 중종이 무려 39년간이나 재위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남의 이야기를 즐겨하는 호사가들의 무한 상상력도 한몫했을 테고. 연산군일기를 책임 편찬한 이는 성희안으로 그는 박원종의 난 주역 중 한 명이고 중종을 임금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그러한 자가 전왕의 역사를 곱게 써줄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도 상식인 세상이다. 지난 역사가 그걸 증명하니 성희안으로서도 억울할 일은 아닐 것이다.

연산의 아들, 이황

이 소설이 최초 출간된 시기는 2012년 12월, 햇수로 9년 전이었다. 연산 시대를 소설로 써보리라 작심한 것은 그보다 한참 앞섰으나 집필 기간은 지금도 감옥을 들락거리며 재판받고 있는 이명박이 대통령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너도나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시절, 이명박은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꿰뚫었고 거짓말이었지만 모두를 잘살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그는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던 그 시절, 나는 5백 년 전의 인물인 조선국 10대 왕 이융에 주목했다. 역사적으로 패륜아요, 폭군으로 평가받거나 회자되는 조선의 왕 이융. 그는 과연 역사가 정의한 것처럼 패륜아에다 폭군 정치를 펼쳤던 인물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고, 이융의 장자로 세자였던 이황이 폐세자 되어 정선으로 유배 온 역사적 사실도 내겐 흥미로웠다. 『연산군일기』에 기술된 역사를 정사로 볼 것인가는 논외라 치더라도 연산의 후대 평가는 가혹하리만치 냉혹하여 나는 행간에 숨은 당시의 역사를 복원해보리라 작심했다. 하여 소설도 폐주 ‘연산군’이 아닌 조선의 왕 ‘이융’과 폐세자 이황을 중심으로 반란 세력과의 관계를 비중 있게 다루어보았다. 소설이 출간되고 독자들은 ‘연산군의 재평가’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다. 연산군을 다시 알게 되었다는 이도 있었고, 자신도 연산이 패륜아에다 폭군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이도 있었다. 사극에 자주 출연했던 한 배우는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책을 구입해 연출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작가인 나는 ‘연산의 항변-나, 연산이오!’라는 1인 가면극을 만들어 대중들 앞에서 몇 차례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그 역시 반응이 좋았다. 그랬던 소설이 절판되었고, 이번에 다시 눈 밝은 출판사 달아실에서 복간된다. 소설이 절판된 채 사장되기엔 아깝다는 이야기일 테니 작가 입장에서 보면 기쁜 일이고, 독자에겐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이융’을 다시 평가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조선의 왕 이융, 부디 그대가 꿈꾸었던 조선의 왕으로 다시 태어나시라. 2020년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

평생 소설가로 살아왔지만 죽기 전 시집 한 권은 내고 싶었다. 서사를 다루는 소설과 달리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시 쓰기는 늘 즐거웠다. 이제라도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다들 고맙다) 2022년 덕산기계곡 숲속책방에서 강기희

원숭이 그림자

내가 서식하고 있는 마을 지명은 활엽이 많아 붉은 단丹 수풀 림林이라 하는데, 그 지명을 한글로 풀면 ‘붉은 숲’이 된다. 간밤 봄비가 한 차례 지나간 후 맞이한 붉은 숲의 아침은 마치 가을하늘처럼 맑고 쾌청했다. 점심상에 두릅이나 취나물 같은 산나물이라도 올려야겠다며 나선 길에서 고라니를 만났다. 마당을 어정거리며 먹이를 찾던 녀석은 나를 보자 계곡을 가로질러 앞산으로 뛰었다. 나는 녀석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소설 속 무대인 ‘피스 숲’을 떠올렸다. 녀석은 나를 소설에 등장하는 늑대나 족제비쯤으로 여기는 듯 눈도 마주치지 않고 도망을 쳤다. 고라니는 마치 밤공기를 가르던 ‘친원파 척살단’처럼 이동했는데, 단숨에 단풍나무 군락지를 지나 참나무 군락지로 이동했다. 언젠가는 마당가에서 노르스름한 털에 크고 멋진 꼬리를 한 담비를 만난 적도 있다. 녀석과 나는 서너 발짝 사이를 두고 마주쳤는데, 녀석은 그야말로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계곡을 건너 산으로 뛰었다. 호랑이조차 두려워한다는 담비였다. 삵과 함께 이 숲에서 최상위 서열을 자랑하고 있는 녀석들이지만 인간만 보면 죽어라 도망을 쳤다. 인간의 잔혹함을 알지 못하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잔혹한 다른 인간들 때문에 어쩌다보니 이 숲에서 가장 높은 권력자가 된 셈이다. 내 뒤를 담비와 삵이 따르고 그 뒤를 멧돼지, 너구리, 족제비, 오소리, 고라니, 토끼, 청설모, 다람쥐 등이 이어가는 것이다. 고라니는 지난겨울에도 많이 만났다. 눈이 하얗게 덮인 산비탈을 겅중겅중 오르내리는 고라니를 보면서 나는 외롭게 투쟁한 빨치산을 떠올렸고, 줄을 지어 이동하는 멧돼지들을 보면서는 토벌대를 상상하곤 했다. 이념을 선택받던 시기, 내 서식지인 붉은 숲 일대는 빨치산의 이동 통로였다. 조국통일이라는 명제를 가슴에 품고 남으로 내려온 숱한 젊은이들이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산자락엔 지금도 서늘한 바람이 인다. 음력 삼월이 되어 산등성이로 핏빛 진달래가 하나 둘 피어나면 나는 그 꽃들을 통분의 시절에 죽어간 젊은이들이라 여기고 있지만 시절의 아픔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가시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에서 총 맞아 죽을 각오보다 얼어 죽을 각오와 굶어 죽을 각오를 먼저 했던 빨치산 대원들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숲민’들과 다르지 않고, 사월 민주혁명에 나섰던 시민들과 오월 광주항쟁에 나섰던 시민들이 소설 속에서 스러져간 ‘숲민’들과 다르지 않고, 마산 앞바다에 수장된 김주열과 공수부대 대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채 암매장 당한 광주 시민들이 숲얼단과 숲경찰에 의해 원숭이 먹이나 강고기 먹이로 던져진 ‘숲민’들과 다르지 않고, ‘피스 숲’을 강점한 원숭이 떼의 앞잡이로 지내다 해방된 숲의 지배자로 변신한 친원파와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친일민족반역자 무리가 다르지 않고, ‘피스 숲’을 강점한 원숭이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던 먹바위가 이 나라를 철권으로 통치했던 어느 대통령과 다르지 않고, 부정선거로 숲통령에 당선된 먹바위 딸의 행로가 이 나라 어느 대통령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원숭이 그림자」를 탈고한 이후 마주친 현실은 소설과 너무도 달랐다. 아주 작은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이 땅의 현실은 답답했으며 사람들은 비겁해보였다. 여느 해처럼 올해도 봄은 와 제주에서부터 꽃비가 내려도 봄이 봄 같지 않았다. 사월이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그즈음 인간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숲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선거로 정치지형을 바꾼 인간들의 선택은 숲민들이 혁명을 이룬 것처럼 아름다웠고, 그 선택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룬 숲민들의 혁명과 버금가는 일이었다. 바야흐로 인간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숲에도 균열이 생기며 혁명의 기운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과 현실의 결말이 같아만 진다면 분명 올해의 봄은 희망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푸른 오월을 맞이한 서식지에도 혁명의 바람이 인다.

위험한 특종

20년 전 김달삼이라는 인물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주와 평양, 양양에서 영덕과 영천, 포항에 이르는 백두대간 마을을 내달리며 바람처럼 불꽃처럼 살다간 파르티잔 김달삼과의 만남이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김달삼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는 내게서 그만큼씩 멀어져갔다. 김달삼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동시에 증언자를 만나고 그가 머물렀던 현장을 찾아다녔지만, 그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조차 각기 달라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나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던 중 2008년엔 산중 누옥이 전소되는 불운까지 있었다. 애써 구한 자료와 원고를 그렇게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기도 했으니 김달삼과의 인연은 불일치의 연속이었다. 화재로 모든 것이 소멸되었음에도 김달삼을 포기할 순 없었다. 다시 자료를 모으며 현장을 찾아다니기를 또 몇 년.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숙성이 되었다 싶어 집필에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구성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애초엔 정통 대하소설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파기한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었고, 김달삼이 정선에서 사살되었다는 국방부 발표를 믿지 못하면서부터는 소설 구성이나 문체 또한 전면 수정해야만 했다.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달삼에 관한 자료는 적어도 남한 땅에서는 전무했다. 일제 강점기나 해방 공간에서 재판을 받거나 경찰에 검거당한 사실이 없는 탓이기도 했지만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 치고는 그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하룻밤 몇 백리 산길을 뛰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없었다. 공식적 문서라고는 국방부의 김달삼 사살 발표나 김달삼이 대정중학교에 낸 이력서가 유일한데, 이 또한 믿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간 김달삼을 취재하기 위해 제주를 몇 번 찾았지만 김달삼에 관한 제주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무모하게 4·3을 일으켜 무고한 양민들까지 희생시켰다며 김달삼의 소영웅주의를 비판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양민 학살에 관한 문제는 학살 당사자인 미국과 이승만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임에도 마치 김달삼에 의해 생긴 일인 양 ‘김달삼 탓’을 했다. 이렇듯 제주 사람들은 당시 미군정이 만든 레드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은 김달삼과 ‘빨갱이’를 연동시켜 놓았으며, 자신들에게 씌워진 ‘빨갱이’ 혐의 또한 김달삼에게 전가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덕분에 역사는 평론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 또 역사는 당시의 시대를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 4·3를 비롯하여 여순사건과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러했듯, 음시로 흐르기도 한다는 것도 알았다. 곁눈질로 본 역사는 왜곡된 역사를 만들고, 왜곡된 역사가 결국 진실이 되는 교묘하고도 어두운 대한민국의 흑역사와 마주하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나도 북쪽에 가고 싶어 압록강을 어슬렁거리고 두만강 유역을 염탐한 적이 있었다. 어디로 넘고 어디로 건너야 목적지에 무사히 당도할 수 있는가에 골몰하며 밤마다 잠입 지도를 그렸다 지우기도 했었다. 지금이라도 북쪽에 갈 수만 있다면 못다 쓴 김달삼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나,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나, 민간인의 북한 방문은 여전히 힘들고 지난하다. 올해가 제주 4·3 70주년이다. 광풍 같은 살육의 흔적은 아직도 선연하지만, 70년이 흐른 지금까지 제주는 ‘사건’이라거나 ‘항쟁’이라거나 하는 공식적 명도 없다. 그저 4·3이라고 칭해야만 하는 제주의 유채꽃 같은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하고 그 사이 제주에는 미군 기지가 들어섰다. 통일이 되면 번듯하니 제 이름을 찾을 수 있겠다지만 스스로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는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그것도 하세월이다. 때문에 이번 소설로 김달삼과 제주 4·3에 관한 담론이 수면 위로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20년 세월 품고 있던 ‘김달삼’을 이제야 세상에 내놓는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김달삼을 추적하는 일은 더 이상 의미도 없다. 지난 세월 나는 최나한이고 서나래였다. 김달삼이 정선 반론산에서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였으니 긴 세월이었다.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다. 소설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지켜보아 준 이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고작 70년 전의 이야기를 700년 전의 이야기보다 힘들게 썼다. 더하여 이 자리를 빌려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에게 청한다. 김달삼에 관한 취재를 이어가야 하니 북한 방문을 허해 달라. 2018. 3 덕산기 숲속책방에서

이번 청춘은 망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979년 무렵이었다. 아버지께 “8.15 해방 때 정선은 어땠어요? 정선에서도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나요?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나요? 그때 아버지는 뭐하셨고요?” 등등의 질문을 한 적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이야기를 나름 하셨지만 고등학교 1학년생인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도 먼 이야기 같았다. 그것은 내가 해방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도 없는데다 그 시기를 조명한 책이나 자료를 본 적 없는 탓이기도 했다. 서북청년단에게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아버지, 서북청년단은 대체 뭐하는 단체이고 군인도 아닌 그들이 총은 왜 들고 있었어요?” 하는 것들이 더 궁금했으나 아버지는 그 질문엔 답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궁금했던 내가 어른이 되어 40년 전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강원도에서도 최고 오지 마을인 정선의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서 겪고 경험한 이야기를 도시가 아닌 ‘정선의 시간’으로 썼다. 세월이 더 흐르면 기억조차 희미해질 것이라 생각했고, 올해는 사북항쟁 40주년인데다 광주민주항쟁 또한 40주년을 맞았기에 작가적 입장에서도 정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막상 집필에 들어가자 40년 전의 일들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들처럼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들뜬 기분에 정신이 다 아득할 지경이었다. 아버지께서 34년 전 해방 시기 정선에서 있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길어 올렸듯 내가 경험한 40년 전의 일도 그렇게 살아서 심장보다 더 뜨겁게 펄떡거렸다. 소설의 시작은 1979년 10월 26일이었고, 집필을 시작한 건 2019년 7월 5일이었다. 오랫동안 내재된 이야기라 소설은 술술 써졌다. 내가 태어나고 숨 쉬며 살았던 정선 이야기라 막힘도 없었다. 소설은 10.26이 터진 날 포고된 계엄령과 함께 출발했다. 10.26 이후 나라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있었는데, 정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전두환은 정의의 사도인 양 당당했고, 로봇 태권 브이처럼 강했다. 대통령이 죽자 군인들은 권력 쟁탈전을 벌였고, 12.12 쿠데타도 생겼다. 해가 바뀌어 1980년 봄엔 사북항쟁에 이어 5.18 광주항쟁이 일어났고, 광주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어 삼청교육대로 이어진 검거령 하에선 모두가 숨죽였고, 강토는 두려움에 떨었다. 권력자들이 기획한 시나리오를 알 턱이 없는 시골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건 신문과 방송뿐이었다. 장꾼들이나 바람이 전해오는 소문이 없진 않았지만 늘 늦었고, 그 소문이 당도할 즈음이면 새로운 사건이 나타나 뜬소문을 덮었다.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시기를 그렇게 보냈다. 청춘의 시기이고 반항의 시기이고 학업에 열중할 시기를 전쟁통처럼 지냈다. 쌕쌕이가 무시로 날고 먼데서 포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사람들 마냥 공포를 느끼며 그렇게 살았다. 주인공 민철을 비롯해 송희, 미친소, 주기동, 처남, 왕창, 정님, 국어 선생 윤미옥, 막스, 미친소 삼촌 등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가 불행의 길을 걸은 듯 보이나 그 시절엔 누구나 그렇게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독한 시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은 죽음과 저항의 시대였다. 그 시절을 별 일 없이 살아낸 사람들은 꽃길만 걷거나 용하거나 운이 좋거나 착하다 못해 순진한 사람이거나 지나치게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2020년 가을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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