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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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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오직 사람 아닌 것>

놈이었습니다

한여름 초록 들판을 전심전력으로 달려 건너온 푸른 사내의 심장을 녹즙기에 내려 마셨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든 내 몸속에서 한결 맑아진 서늘한 도랑물 소리가 난다. 2015년 11월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초판 시인의 말 스무 살 가을밤이었다. 어느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어떤 서늘한 손 하나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섬뜩했으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날 선 칼 한 자루와 맑은 눈물과 제목 없는 책 따위의 무량한 허기뿐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른 아침 호주머니 속에선 뜻밖에 오천 원권 지폐 한 장이 나왔는데, 그게 여비가 되어 그만 놓칠 뻔한 청춘의 막차표를 끊었고, 그게 밑천이 되어 지금껏 잘 먹고 잘산다. 그때 다녀가셨던 그 어른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그간의 행적을 묶어 소지하듯 태워 올린다. 2003년 10월 화성에서 이덕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스무 살 가을밤이었다. 어느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어떤 서늘한 손 하나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섬뜩했으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날선 칼 한 자루와 맑은 눈물과 제목 없는 책 따위의 무량한 허기뿐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른 아침 호주머니 속에선 뜻밖에 오천원권 지폐 한 장이 나왔는데, 그게 여비가 되어 그만 놓칠 뻔한 청춘의 막차표를 끊었고, 그게 밑천이 되어 지금껏 잘 먹고 잘 산다. 그때 다녀가셨던 그 어른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그간의 행적을 묶어 소지하듯 태워올린다.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개정판 시인의 말 다 잊었다는데, 모두 다 지난 일이라는데도 나는 여전히 가난하고 슬프고 여린 것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아서 무작정 미안하고 송구한 사람. 세상 춥고 성한 곳이라곤 없어 보였던 그때, 눈보라치는 내 눈동자에게도 나는 일생 순정을 다해 원금과 이자를 무는 사람. 묵은 빚 갚느라고, 찬바람 무서리 맞으며 철 늦은 꽃을 매단 질경이처럼 입동 근처, 빈들에 파랗게 서 있는 사람. 2022년 화성 들녘에서 이덕규

밥그릇 경전

들판에서 일을 할 때, 어느 순간 힘의 한계에 이르러 미세하게 떨리는 손목관절이나 장딴지 근육쯤에서 꽃 멍울 터지는 소리가 난다. (몸을 아껴 쓰는 것은 生을 낭비하는 것) 척박한 몸속에서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그 힘겨운 감탄사가 정녕 시의 향기로운 입김이라면……, 나는 여전히 꽃다운 시절이다. ('시인의 말'에서)

오직 사람 아닌 것

당신이 곤고했던 농부의 몸에서 내린 밤 집 앞 텃논에 평생 새긴 별보다 많은 발자국이 한순간 환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걸 보았습니다. 나는 이제 저 어둑해진 텃논의 유업을 밝히기 위해 날마다 맨발로 소를 몰고 나가 캄캄한 무논을 갈아엎는 심정으로 당신의 빛나는 발자국을 따라가겠습니다.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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