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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소설

이름:미나토 가나에 (湊かなえ)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일본

출생:1973년, 일본 히로시마 현

직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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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성장에 박수를! - 야행관람차, 왕복서간 (추천3,댓글0) 이카   2012-09-09 02:08

 

야행관람차/왕복서간
- 작가 : 미나토 가나에
- 역자 : 김선영
- 출판사 : 비채

: 가끔 궁금한 점이 있다. 한 사람의 예술가에게 자신이 어떤 특정한 작품 하나로 대중들에게 각인된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라디오헤드가 아무리 수많은 명곡을 남겼어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라디오헤드의 노래는 Creep이고, 프랭크 와일드혼이 아무리 많은 작품을 쓰더라도 그는 지킬&하이드의 작곡가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조앤롤링이 아무리 새로운 소설을 쓴다 하더라도 해리포터와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이렇게 예술가 자신이 아무리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발표하더라도 계속해서 비교당하는 것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작품일 때, 작가는 그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저주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그나마 그 한 작품이라도 남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인 '고백'은 등장할 때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설이었다. '우리 반에 내 딸을 죽인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선생님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 사건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등장인물 각자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들을 접할수록 다가오는 사건의 무게와 깊이에 저릿할 정도의 서늘함을 느끼게 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 가차없는 결말은 한편으로는 섬찟하고 또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한 기분이라 이 작품을 접하고 나서 나 역시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랬다.

이 정도 작품 쯤 되면 독자가 다음 작품을 볼 때 전작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후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이라면 모두 다 읽어봤지만, 사실 모두 '고백'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졌던 교차 서술은 '이 작가는 이렇게밖에 못 쓰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으며, '소녀'를 읽었을 때에는 작위적인 설정과 결말에 실망하기까지 했었다. 원체 필력이 있는 작가다보니 흡입력은 평균 이상이었지만, 살인사건으로 시작하여 그 사건을 둘러싼 교차서술로 이어지며 밝혀지는 진실이라는 틀은 슬슬 식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별 기대없이 집어든 야행관람차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미나토 가나에를 보게 되었고, 이것은 가장 최근작인 '왕복서간'을 읽으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 작가는 어떤 한 단계를 넘어 성장했다고.(*국내 출간은 'N을 위하여'가 너 늦게 되었지만, 작품이 쓰여진 순서는 고백-소녀-속죄-N을 위하여-야행관람차-왕복서간 순이다.)

흡입력 있는 문장으로, '읽어볼 만한 추리소설'정도로 넘길 뻔 했던 야행관람차가 이토록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한 장면 때문이었다.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에는 어쩐지 제대로 된 인간이 나오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다들 하나씩 어딘가 뒤틀려 있고, 어둠을 가지고 있다. '복수'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고백처럼 야행관람차는 '행복'과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완전히 행복한 가정은 없다' '어느 가정이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꾸만 주변 사람들의 '겉모습'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족은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던가. 야행관람차는 행복한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울뿐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밖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아야카네 가족(엔도 가족), 이에 대비되는 완벽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카하시 가족과 이 두 가족을 지켜보는 고지마 사토코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서로 다른 이유로 고통받는 각 캐릭터들의 모습에 서로 다른 이유로 치를 떨었다.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그렇게 그리워하고 집착하던 어머니를 살해하게 만든 고백의 결말을 보며 나는 이 작가는 도대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실망하고 인간의 어두움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으면 이런 결말을 쓸 수 있었나 생각했었다. 오히려 깔끔하고 완벽한 복수이기에 더욱 서늘한 복수가 아니었던가. 야행관람차의 결말은 이런 결말과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아야카의 지나친 히스테리에 그만 폭발하고 만 마유미(엄마)는 아야카의 입에 흙을 쳐 넣으며 아야카를 질식시켜 죽이려고 한다. 아야카가 바닥에 질질 구토를 해도, 숨이 얕아져가도 이미 눈이 뒤집혀버린 마유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건이 끝나게 되고 엉망진창이 된 거실에 아야카와 엄마, 아빠가 힘없이 줄지어 앉아 있다. 바닥에는 흙과 깨진 유리 파편이 널려 있고, 아야카가 죽을 뻔하며 왈칵왈칵 쏱아낸 구토물 때문에 공기 중에는 시큼한 냄새가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자리에 앉아 생각한다. 내일이면 또 이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또 함께할 것이라고. 그것이 가족이라고. -- 이 장면을 보는데 정말 가슴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아, 그렇구나. 아야카는 왜 마유미가 그렇게까지 눈이 뒤집혔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엄마가 왜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그렇게 했는지, 그 동안 엄마 나름대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하겠지. 아마 엄마도 딸이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고 있었으며, 히스테리를 부리는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이 가족의 문제를 얼마나 크게 키웠는지 여전히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모습으로.

이 작은 한 장면에서는 나는 작가의 변화를 보았고, 작가의 성장을 보았다. 일종의 가치관의 변화라고 할 만한 무엇을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고백'에 가장 심하게 매여 있었던 것은 작가 자신이 아니었나 생각도 들었다. 전작들이 독기가 가득했다면, 그래서 도리어 인간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착시 효과를 줬다면, 야행관람차부터는 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 변화는 왕복서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이상하게도 기교 없이 내려놓고 부른 가수의 잔잔한 노래에 마음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분명 콕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이 정말 좋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고나 할까. 아, 그래. 야행관람차 이전까지의 작품들이 자신의 어둠에 파묻힌 인간이 내지르는 비명같은 작품이었다면, 야행관람차에서 드디어 그 인간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렇게 만신창이인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왕복서간에서 드디어 타인을 향한 위로의 말을, 자신의 아품과 같은 아품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간의 작품들이 '독백', 즉 철저히 '자기 중심의 발화'고, 그것의 종착지가 수신자가 있는 '편지글'의 형식이란느 점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게 아닐까. 눈을 닫고 귀를 막고 자신의 말을 외치던 사람이 이제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과연 지나친 비약인 걸까.

여전히 미나토 가나에는 '고백'의 작가다. 그러나 이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작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큰 인연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의 지금까지의 노력과, 변해갈 앞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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