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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왕가위 (王家衛, Kar Wai Wong)

본명:Kar Wai Wong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중국

출생:1956년, 상해 (게자리)

직업:영화감독

기타:홍콩이공대학 미술설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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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블루레이] 에로스 : 풀슬립 일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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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예행연습,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추천1,댓글0) knulp13   2016-03-15 06:05


'그러했다'에서 그렇게 되길 원했다'로


 화 <화양연화>의 인물들은 두 가지 장면을  '예행연습' 한다. 먼저는 한 사람이 배우자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고,  다음은 두 사람이 이별하는 순간이다. 영화의 제목인 <화양연화>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을 뜻한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 순간을 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어떤 때는 장난과 같은 역할극을, 어느 때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로 두 사람만의 리허설을 한다.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예행연습은 의미 없이 지나가버리는 순간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들은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그대로 진짜 인생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먼저 그들에게 닥쳐올 순간의 밑그림을 그리고, 충분히 그것을 이해하기 원했다. 한 번 만 산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만 순간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 어떤 의미가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비서실과 신문사에서 일하는 장만옥과 양조위는 각각 타자기와 식자기를 다루는 일을 한다. 두 가지 일 모두 주어진 문자를 그대로 베끼는 '단순 반복' 작업이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은 배우자의 잦은 출장,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삶의 반복이다. 그들이 자신의 일상을 반복하기만 했다면 모든 것은 한  번뿐인 일과 다름이 없고, 어떤 의미도,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겐 모든 '그러했다'를 '그렇게 되길 원했다'로 바꿀 수 있는 특별한  예행연습이 필요했다.


@ 두 사람만의 연습 장소로 가는 길


 그것은 마치 '실전'인 것처럼 온 신경을 집중한 '연습'이어야 한다. 사실적인 밑그림일수록 실제 작품이 완성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과 같다. 실감 나는  예행연습은 무대 위에서의 '부끄러움'을 없애 준다. 장만옥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될 바로 그 순간을 겁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는 식탁에서 갑자기 남편의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은 끔찍하다. 증오와 질투심을 느끼는 순간만큼 수치스러운 것도 없다.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그녀는 이웃집 남자를 상대로 역할극을 시도한다. '당신 사실 애인이 있지요?' 여자의 물음에 상대 배우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뺨을 때린다. 연습이지만 여자의 눈빛은 흔들린다.


 '그러면 안돼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받아들여줘야죠.' 상대역을 맡은 배우는 여자가 맡아야 할 역할을 알려준다. 곧이어 두 번째 연습이 시작된다. 이번에 여자는 손을 휘두르지 않는다. 그 대신 말없이 남자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 흐느낀다.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인생에 증오와 질투심은 솟아나지 않는다. 한 번 분출되면 가벼워질 슬픔의 감정과 체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두 사람의 '이별 연습'도 이와 같았다. 그들은  예행연습을 통해 부끄러움을 덜어낸다. 비어진 그 자리는 새로운 감정들이 채워질 공간이다. "미리 이별 연습을 해봅시다" 말을 마친 남자는 혼자 뒤돌아 선다. 여자는 울어 버린다. 이번에도 연습일 뿐이지만, 여자의 감정은 실제 이별을 겪는 것만큼 충분히 분출된다.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남자의 품에 안긴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두 팔과 어깨를 오랫동안 쓰다듬는다. 이제껏 벽을 사이에 두고 살아왔으며, 좁은 골목에서 마주치더라도 거리를 두던 두 사람은 어깨를 기대고 밤거리를 달린다.


@ 실제 무대와 다름없었던 둘만의 예행 연습


 그대들은 증오와 질투를 모를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증오와 질투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은 위대해져라.

-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이제 증오와 질투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위대해졌다. 몇 번의  예행연습 덕분이었을까. 인생이라는 진짜 무대에 오를만한 담력이 생겼다. 장만옥은 남편의 외도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증오와 질투의 감정을 인정했다. 남편의 부재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겉모습을 치장하던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화려했던 치파오의 무늬가 옅어지고, 빈틈을 보이지 않던 올림머리 역시 자연스럽게 풀어 내렸다. 그녀는 남편 없이 '누군가의' 아이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양조위 역시 장만옥과의 연습을 통해 달라진다. 다른 남자를 만나는 아내를 떠나 새 직장을 구해 이국으로 거처를 옮긴다. 증오와 질투를 느끼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보다 생산적인 방법을 간구한다. 그는 어릴 적 꿈인 무협소설을 연재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새롭게 써나 간다. 장만옥은 그런 그를 옆에서 돕는다. 그가 쓰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고 좋고 나쁨을 이야기해준다. 남자의 홀로서기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 서로가 상대역이 되는 공간


 '진짜 이별'이 있은 3년 후, 장만옥은 양조위를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한다. 과거 "우리는 그들과 달라요"라고 말하며 끝내 양조위를  따라나서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 스스로 비행기표를 끊고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방까지 찾아 들어온다. 그가 머무는 침대 곁에 다리를 뻗고 앉아 있던 그녀는 방 안을 천천히 살피다, 담배를 하나 피우는데 그  담배꽁초는 나중에 양조위에게 발견된다. 그것은 두 사람의 엇갈린 만남을 보여주며 사실상 두 번째 이별을 의미한다. 결국 그 둘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그들에게 이별 순간은 단 한 번이 아니었다. 감정이 충분히 몰입된 실감 나는 리허설이 한 번 있었고, 그것은 몇 가지 은유를 통해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연습과 반복을 통해 그들의 만남과 이별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는, 어느 쪽이 좋을지 확인할 길이 없는 단 한 번의 무의미한 사건이 아니라 각자의 의지로 선택한 결말이 된다. 모든 "그러했다"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바뀐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이별은 영원히 간직할 추억이 된다. 둘 만의 세계에서 화양연화는 끝없이 변주된다. Ja, es muss sein.


 그 모든 "그러했다"를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니체,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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