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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허병섭

출생:1941년

사망:2012년

최근작
2014년 11월 <스스로 말하게 하라 (큰글씨책)>

허병섭

1941년 김해에서 가난한 민중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한국신학대학교에 입학해 1969년 동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군목(軍牧) 시절 청계천에서 빈민들을 만났으며,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의 총무로 활동하면서 빈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1976년 가난한 주민들과 함께 하월곡동 산동네에 동월교회를 개척하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일하고, 국악 찬송 등 한국적 예배와 민중적 신앙고백을 몸으로 실천했다. 또한 1981년 한국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를 설립, 소장을 맡으면서 민중교육론을 연구하여 <스스로 말하게 하라>(1987) 등을 저술하며 교육이론을 현장에서 실천했다. 이 저서는 한국적 민중교육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이후 민중교육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90년 마지막 기득권이던 목사직을 버리고 1994년까지 미장공이 되어 건설노동자들과 함께 ‘월곡동 건축일꾼 두레’를 만들어 건설노동자 생산협동공동체를 시도했다.

그러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소비의 근원지인 도시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 나눔과 섬김, 공생의 가치가 담긴 생태적 관점으로 세계관이 확대되자, 1996년 4월 무주로 귀농하여 땅을 일구며 생태·생명운동에 뜻을 두었다. 그리고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대안학교인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 설립추진위원장으로서 대안학교 설립에 기여했으며, 2005년부터 온 배움터(전 녹색대학교) 대표를 맡으며 생태·생명운동과 교육에 헌신해 왔다.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벗하고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지향하며 빈민운동과 생태·생명운동 그리고 민중교육운동을 몸으로 실천해 왔다. 최근에는 자신의 전 재산인 땅과 집을 자연 생태 보존을 위해 자연환경국민신탁에 기증했다. 허병섭 목사는 패혈증으로 2012년 3월 27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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