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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현상윤

출생:1893년, 평안북도 정주군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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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큰글자도서] 김동인 현상윤 태화산인 소설 선집 >

현상윤

1893년 평안북도 정주군 남면에서 출생했다. 기당의 부친은 한학자로서 성균관 전적과 승정원 주서를 지냈다고 한다. 기당의 별호인 소성(小星)은 대학생 때 지은 것으로 어린 시절 학문을 통해 접한 진암 현상준과 의암 유인석의 호국정신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2세 때 조혼한 기당은 16세 때 평양 대성학교를 거쳐 1912년 보성중학교를 다니고 1914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한다.

현상윤은 유학생활 중에 잡지 ≪학지광≫을 편집하고 스스로 필자로 활약했으며 육당 최남선이 경영한 ≪청춘≫에도 수많은 소설과 수필, 시, 논설을 발표했다.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해 중앙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현상윤은 곧이어 최린과 더불어 3·1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동경 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은 현상윤은 국내에서 대규모의 시위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절감하고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을 추진해 전국적 규모의 세력 조직에 앞장서게 된다. 독립운동 후 20여 개월 옥고를 치른 현상윤은 중앙고등보통학교장에 부임하게 된다.

해방 후 경성대학교를 거쳐 보성전문학교장을 맡았던 현상윤은 1946년 고려대학교 교수 겸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다. 현상윤의 학문적 업적은 1949년 출간된 ≪조선유학사≫와 1960년 복간된 ≪조선사상사≫에 나타나는데, 이 저서들은 현상윤이 뛰어난 국학자임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1960년 6·25가 일어나자 현상윤은 강제 납북되어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채 이후 타계했다는 소식만 전해진다.

근대 신문학의 선도자이자 뛰어난 국학자로 활동했던 현상윤은 1914년부터 1917년까지 4년 동안 ≪청춘≫과 ≪학지광≫을 통해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함으로써 근대 단편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였다. 그는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과 시에 걸쳐 폭넓은 장르의 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함으로써 당대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현상윤의 다양한 학문적 업적과 문학 활동은 2000년 간행된 ≪기당 현상윤 문집≫(경희대학교 출판국) 과 2008년 간행된 ≪기당 현상윤 전집≫ 전 5권(나남)으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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