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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신형기

직업:대학교수

최근작
2015년 8월 <시대의 이야기, 이야기의 시대>

신형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형기는 식민지시대와 해방 직후의 문학, 특히 문학논의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로 학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북한문학에 관심을 갖고 민족 이야기(nation narrative)를 문제시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통해 쓰인 이야기를 읽고 그 작용을 살피는 데 주력해 왔다. 저서로는, <해방직후의 문학운동론>(1988), <해방기 소설연구>(1992), <북한 소설의 이해>(1996), <변화와 운명>(1997), <북한 문학사>(공저, 2000), <민족 이야기를 넘어서>(2003), <이야기된 역사>(2005), <분열의 기록>(2010) 등이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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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분열의 기록> - 2010년 12월  더보기

책머리에 모더니티의 ‘이후post’가 거론된 지 오래지만 ‘이후’의 전망이란 번번이 모더니티의 작용과 효과의 성찰을 요구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 나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쓰인 이른바 모더니즘 소설을 읽음으로써 근대성의 문제를 다시 조명하려 했다. 모더니즘 소설이 모더니티를 반영하거나 부각했다면 과연 모더니즘 소설에서 근대성이란 무엇이었으며, 그 의미는 어떻게 해독되어야 할 터인가가 나의 관심사였다. 나는 식민지 시대 모더니즘 소설을 분열schizophrenia의 기록으로 읽었다. 두루 알다시피 제도로서의 근대성은 동질적이고 단일한 체계화를 추구한 것이었다. 근대성에 의한 통합은 또 그것이 계몽주의적 보편성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통합의 과정은 ‘중심’이 ‘주변부’를 확대해간 양상으로 나타났다. 주변부로 관철된 모더니티가 보편적인 것이 됨으로써 주변부를 중심에 종속시켰던 것이다. 식민지에서 쓰인 일단의 모더니즘 소설들은 모더니티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 중심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방식으로 주변부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이것이 내가 식민지의 모더니즘을 주변부 모더니즘으로 명명한 이유이다. 주변부는 중심이 아닌 곳이었다. 그렇지만 모더니티가 관철된 주변부는 중심과 이어진 곳이 되었다(주변부와 이어져 있지 않은 중심은 중심일 수 없다). 나는 주변부 모더니즘이 확인한 주변부라는 위치가 위계적 격절과 연속의 모순된 이중성을 갖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분열은 주변부라는 모순된 위치가 작용하고 드러나는 양상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중심의(에 의한) 동일성을 부정하는 상태이자 증거였다.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모더니티가 동질적이고 단일한 체계화를 추구한 시간은 또 내면적 분열이 진행된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근대란 모더니티의 시간으로서의 당대성contemporaneity이 지구적 수준으로 통합을 달성하는 과정이었다. 모더니티가 관철된 주변부에서는 지역적 과거local past의 절단된 단면 위에 모든 것을 바꾸어가는 모더니티의 시간으로서의 당대성이 엇갈려 놓이는, 다른 시간과 공간이 불균등하게 공존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주변부 모더니즘은 지구적인 당대성의 실현을 목도해야 했다. 그런데 주변부라는 위치에서 당대성이란 역설적이게도 잔존하는 지역적 과거를 또한 드러내는 것이었다. 당대성이 흔히 지역적 과거에 부착되어 불균등한 공존의 양상을 빚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부 모더니즘에서 읽게 되는 분열이 지구적으로 확산된 당대성과 파열된 지역적 과거의 불균등한 공존이 일으키는 소란을 기록하는 방식이었다고 보았다. 주변부로 관철된 모더니티가 불균등성을 초래하기 마련이었다면 불균등성이야말로 근대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구적 당대성에 민감하였기에, 또 그런 만큼 불균등성을 외면할 수 없었던 주변부 모더니즘은 그럼으로써 근대의 모순된 입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식민지 시대 모더니즘 소설은 흔히 프로문학이 퇴조한 이후의 정신적이고 이념적인 혼란을 수동적으로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나에게 주변부 모더니즘에서의 분열은 이념적 정향을 잃은 혼란의 증상으로 비판하기보다 그 내면적인 필연성을 통해 조명해야 할 것이다. 분열이 모더니티가 작동한 방식의 이면, 무엇보다 통합/배제의 그늘을 감지하였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윤리적 고뇌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심이나 제국, 혹은 지구적 헤게모니에 대항한다는 입장에서 시도된 민족적이거나 계급적인 통합론은 궁극적으로 모더니티에 의한 통합의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간을 다시금 성찰하려 한다면 주변부 모더니즘에서 노정된 분열은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화제임에 틀림없다. 분열은 주체에 의해 포섭되지 않는 타자의 존재를 비추며, 그런 방식으로 주체의 오인(誤認)을 넘어서는 윤리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 모더니즘 소설은 이른바 미적 근대성을 구현한 텍스트로 설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분열의 변증법적 효과는 미적 근대성이라는 범주로 해독되거나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 제목으로 굳이 ‘다시’ 읽는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이 책이 주변부 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변호apology’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주변부 모더니즘의 의의를 정당하게 되돌아주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모더니티를 성찰하는 하나의 거점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기대다. 2010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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