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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amilton)

출생:1755년 (염소자리)

사망:18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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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카리브해의 영국 식민지 서인도 제도 네비스섬의 찰스타운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연도는 1755년 혹은 1757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1755년 1월 11일생이라는 것이 더 유력하다. 해밀턴은 비록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부유한 상인에 의해 입양되어 자랐으며, 어릴 적부터 아주 영특하였다. 그의 이러한 영특함을 알아본 많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뉴욕의 킹스칼리지(지금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 재학 중 영국과의 독립전쟁에 참여해 합중국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 장군의 부관을 지냈다.
1780년에 해밀턴은, 1600년대 중반에 일찍이 네덜란드로부터 이주해 와 뉴욕주의 명문가로 자리 잡은 스카일러(Schuyler) 집안의 딸인 엘리자베스 스카일러와 결혼하였다. 이후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에 뉴욕주 대표로 참여해 강력한 중앙정부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헌법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헌법회의에서 돌아온 해밀턴은 버지니아주 대표로 참가했던 제임스 매디슨과, 뉴욕의 유명한 변호사인 존 제이를 설득하여, 새헌법의 장점과 비준의 필요성을 뉴욕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푸블리어스라는 필명으로 뉴욕의 여러 신문에 게재를 시작하여 총 85편의 에세이를 발표하였다. 이 에세이, 혹은 페이퍼들은 뉴욕주에서 새로운 헌법이 비준되는 데 많은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헌법의 공화주의적 토대와 새로운 정부 형태인 연방제도의 장점을 일반 시민에게 소개했다. 이후 이 페이퍼들은 『The Federalist Papers』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미국 헌법, 독립선언문과 함께 오늘날까지 미국 정치의 3대 신성한 문서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해밀턴은 매디슨과 제이 이외에도, 거버너 모리스(Gouverneur Morris)와 윌리엄 두어(William Duer)를 공저자로 고려했었다. 하지만 거버너 모리스는 해밀턴의 제안을 거부하였고, 윌리엄 두어의 경우 그의 글이 해밀턴의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세 사람이 집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페이퍼들이 신문에 기고될 당시 저자들은 그들의 신분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 이유로 특히, 해밀턴과 매디슨이 쓴 많은 페이퍼 중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현재까지도 논란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해밀턴이 가장 많은 페이퍼를 썼으며, 그가 모든 프로젝트를 감독하고 출판과 계획을 총괄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원저자의 논란이 있는 12개의 페이퍼 가운데 10개를 매디슨이 썼다고 하는 주장들이 있지만, 아무도 그 진위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해밀턴은 새헌법에 의해 연방정부가 수립된 후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미국 경제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불행하게도 그의 정적인 당시의 현직 부통령이었던 애런 버(Aaron Burr)와의 결투에서 입은 총상으로 그다음 날인 1804년 7월 12일, 만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비극적인 사망 이후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스카일러 해밀턴은, 그 후 50년 동안 해밀턴의 모든 편지와 논설, 그리고 저서들을 모두 수집하고 정리해 오늘날까지 해밀턴의 글들이 보존되고 읽히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편 엘리자베스 스카일러 해밀턴은 90살이 가까워졌을 때까지도 미국 사회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기금을 모금하고 고아원을 설립하는 등 자선가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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