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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김기림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생:1908년, 함경북도 학성 (황소자리)

최근작
2024년 1월 <매일, 시 한 잔>

김기림

1908년 5월 11일(음력 4월 12일) 함경북도 학성군(후에 성진으로 편입됨) 학중면 임명동 275번지에서 부친 김병연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의 6녀 1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아명은 인손(寅孫), 호는 편석촌(片石村)이다. 등단 초기 간간이 G. W.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바도 있다.
어린 시절 고향의 임명보통학교에 입학, 졸업하고 한동안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적이 있다. 13세에 성진의 농학교(중등과정)에 진학하였으나 1년 수학 직후 서울로 올라와 보성고보에 다니게 된다. 보성 3학년 재학 도중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고향에 내려와 요양을 하게 되는데, 건강을 회복하고 난 후 학교로 복학하지 않고 곧바로 일본 유학을 떠나 당시 도쿄 소재의 메이쿄(名敎)중학[현재는 도쿄 근처 지바(千葉) 현 우라야스(浦安) 시 소재의 도카이(東海)대학 부속 우라야스고교]에 편입, 졸업한다. 졸업 이후 1926년 봄, 니혼(日本)대학 전문부 문학예술과로 진학하고 1930년 봄에 동 대학을 수료한다.

대학 재학 기간 중 서구 모더니즘의 여러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귀국과 더불어 ≪조선일보≫ 사회부,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 창작과 비평 발표 등의 문필 활동에도 힘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최초의 글은 니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직후인 1930년 4월 27일에서 5월 3일까지 발표한 <오후와 무명작가들?일기첩에서>로 기록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평론으로 분류하기도 하나, 엄밀히 말한다면 문학적 감상을 섞은 단상 형태의 수필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평론은 같은 해인 1930년 7월 24일에서 30일까지 ≪조선일보≫ 지상에 편석촌이라는 필명(호)으로 총 6회에 걸쳐서 연재한 <시와 시인의 개념-근본적 의혹에 대하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후 그는 활발하게 서구 모더니즘에 영향을 입은 시작 활동과 비평 활동을 꾸준히 병행하면서 당대 문단의 중심을 향해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간다. 그런 와중에 1933년 이태준, 정지용 등과 함께 모더니즘 문인들의 친목 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하여 모더니즘문학의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 1935년은 그의 문단 활동이 정점에 이른 시기다. 대표작이기도 한 장시 <기상도>를 잡지 ≪중앙≫과 ≪삼천리≫에 연재하는 한편, 그의 초기 모더니즘시론의 핵심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오전의 시론> 시리즈를 ≪조선일보≫ 지면에 장기간에 걸쳐 의욕적으로 연달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스스로 모험을 감행한다.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학문 연구를 위해 재도일하여 도호쿠(東北)제대 영문과에 입학한 것이다. 도호쿠제대 재학 기간 동안 조선 내 그의 문단 활동은 잠시 주춤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기도 하나, 이 기간 그는 영문학의 새로운 학문적 원리와 이론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학관을 심화하는 한편, 보다 폭넓은 사회 역사적·철학적 토대 위에 종래 자신이 추구했던 모더니즘문학 운동의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1939년 동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함과 함께 조선 문단 전면에 재등장한다. 복귀 후 한동안 문단 활동에 주력하지만, 1940년대로 넘어서자 점차 조여드는 일제의 압박에 회의와 위기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가 한동안 절필 상태로 지내게 된다. 친일 문학인들과 단체의 끈질긴 동참 권유를 뿌리치고 긴 침묵의 기간을 보낸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다시 가족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간의 침묵을 만회라도 하듯 문단과 학계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1950년 6·25동란이 발발된 직후 서울 거리에서 북한 기관원들에게 연행당한다. 그 뒤 북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 내에서 그의 행적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시론집으로 ≪시론≫(1947)과 ≪시의 이해≫(1950)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 등이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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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김기림 시집> - 2021년 3월  더보기

◎ 어떤 친한 시(詩)의 벗에게 드디어 이 책은 완성된 질서를 갖추지 못하였다. 방황(彷徨), 돌진(突進), 충돌(衝突) 그러한 것들로만 찬 어쩌면 이렇게도 야만(野蠻)한 토인(土人)의 지대이냐? 그러면서도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의연히 상봉(相逢)이나 귀의(歸依)나 원만(圓滿)이나 사사(師事)나 타협의 미덕이 아니다. 차라리 결별을 ― 저 동양적 적멸(寂滅)로부터 무절제한 감상의 배설로부터 너는 이 즉각(卽刻)으로 떠나지 않아서는 아니된다. 탄식(歎息). 그것은 신사와 숙녀들의 오후의 예의가 아니고 무엇이냐? 비밀(秘密). 어쩌면 그렇게도 분 바른 할머니인 19세기적 ‘비너스’이냐? 너는 그것들에게서 지금도 곰팽이의 냄새를 맡지 못하느냐? 그 비만하고 노둔(老鈍)한 오후의 예의 대신에 놀라운 오전의 생리(生理)에 대하야 경탄한 일은 없느냐? 그 건장한 아침의 체격을 부러워해본 일은 없느냐? 까닭 모르는 울음소리, 과거에의 구원할 수 없는 애착과 정돈. 그것들 음침한 밤의 미혹과 현혹에 너는 아직도 피로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너는 나와 함께 어족(魚族)과 같이 신선하고 깃발과 같이 활발하고, 표범과 같이 대담하고 바다와 같이 명랑하고 선인장과 같이 건강한 태양의 풍속을 배우자. 나도 이 책에서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다만은 너는 저 운문(韻文)이라고 하는 예복을 너무나 낡았다고 생각해본 일은 없느냐? 아무래도 그것은 벌써 우리들의 의상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물론 네가 이 책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구히 너의 사랑을 받기를 두려워한다. 혹은 네가 이 책만 두고두고 사랑하는 사이에의 정신이 한 곳에 멈춰 설까보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네가 아다시피 이 책은 쇼와 5년 가을로부터 쇼와 9년 가을까지의 동안 나의 총망한 숙박부(宿泊簿)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내일은 이 주막에서 나를 찾지 말아라. 나는 벌써 거기를 떠나고 없을 것이다. 어디로 가느냐고? 그것은 내 발길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어디로든지 가고 있을 것만은 사실일 게다. - 쇼와(昭和) 9년(1934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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