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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고영범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3년 11월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

고영범

평안북도 출신의 실향민 부모님 밑에서 1962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서는 신학을, 미국에서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공부했다. 대학원을 마친 뒤 십수 년 동안은 이런저런 방송용 다큐멘터리와 광고, 단편영화를 만드는 한편, 영화와 광고 등의 편집자로 일했고, 그후로는 번역과 글쓰기를 주로 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1, 2》(이승민과 공역)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불안》 《별빛이 떠난 거리》 《나는 다시는 세상을보지 못할 것이다》 《스웨트》 《예술하는 습관》 《우리 모두》 등이 있고, 쓴 책으로는 《레이먼드 카버》,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와 희곡 <태수는 왜?> <이인실> <방문> <에어콘 없는 방>, 단편소설 <필로우 북_리덕수 약전> 등이 있다. 현재 미국에 살면서 집안의 실향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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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큰글씨책] 서교동에서 죽다> - 2022년 4월  더보기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썼을 때 그건 시의 형태였다. 최소한 겉모습은 시란 이런 것이라고 그때까지 알고 있던 것들과 닮아 있었다. 그러다가 이라는 연극을 보고 나서는 희곡을 쓰고 싶어졌고, 모두 세 편을 써서 그중 두 편은 당시에 다니던 교회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공연으로 만들어 올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쓴다는 건, 당연히,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었는데, 당시는 하나의 군사독재 정권이 다른 군사독재 정권으로 넘어가던 무렵이었고, 따라서 내 생각의 상당 부분은 당연히, 그 문제들에 대한 걸로 채워졌다. 이 생각들은 시나 희곡 속에 스며들기도 했지만, 당시에 발생한 이란의 미 대사관 점거 사태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란의 미 대사관 점거 사태와 미국의 제국주의’라는 소논문 비슷한 형태의 글로 나타나기도 했다.(이 소논문은 교지의 인문사회과학 논단에 싣기 위해 쓴 것이었다. 학교 측에서 이 글을 게재하지 못하게 막은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는데, 교지의 당시 편집장이었던 친구는 학교와 맞서서 결국 게재했다고, 자기 집 어딘가에 그 책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시와 희곡, 사회과학에 몰두하게 된 건 당연한 귀결이었고, 문학회와 연극반, 그리고 사회과학 서클에 동시에 가입한 것도, 따라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세 가지 영역 모두에서, 전공 공부를 포함한다면 네 가지 영역 모두에서 실패했다. 전적으로 겉멋과 불성실, 비윤리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이 세 가지는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서로를 부추기면서 같이 움직이게 마련인데, 따라서 각자 맡은 역할을 시간표에 따라 수행해야만 하는 곳인 연극반이나 사회과학 서클과는 늘 문제가 많았고, 몇 달 만에 상당한 수준에 오른 불성실과 무책임성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유일한 모임인 문학회에서 입대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나이가 들면서 이 문제 많은 존재와 가족, 동료들, 그들의 가족들에 대해 이런저런 각도에서, 틈틈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한 번 들여다보자 싶어졌다. 형식은 이 존재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혹은 그동안 선택해왔던 방식들을 모두 동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몇몇 에피소드는 오래전에 시나리오 형식으로 써본 적이 있었으니 그 형식은 제쳐두고, 이번에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각 에피소드의 성격에 적합한 형식들—시와 희곡,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접근이 뒤엉킨 소논문, 인터뷰, 기사, 에세이, 심지어 성명서 등 한 번이라도 다뤄본 형식은 모두 동원해서—로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내부에서 다투면서 밖으로 말하는 책을 만들어보자, 이를테면 그런 생각이었다. 가쎄의 김남지 대표와는 페이스북 친구로 처음 만났는데, 농담처럼 꺼낸 이 이상한 몽상에 대해 “마음대로 해보세요”라고 대답해 줬다. 그게 벌써 4년 전의 여름이었다. 이런 무계획에 가까운 계획은 얼마 되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인터뷰 형식의 글은 겉돌았고, 논문 형식의 글은 깊이가 없었고, 에세이는 감상적이었고, 시는 그냥 그랬고, 기사는… 이것까지 들어가자 전체적으로 어린애 장난처럼 보였다. 기중 마음이 가는 게 이사 가는 날을 다룬 희곡 형태의 장과 개에 물리는 장면을 다룬, 이전에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소설 형태의 글이었다.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서 한동안 밀어두고 있다가 조금 나아진다 싶어져서, 일단 희곡 형태로 되어 있던 장을 붙들고 공연이 가능한 길이로 키워봤다. 너무나 설명적인 내용이 많아서 희곡은 포기하고 차라리 소설로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별개의 작품으로 키워보기로 했다. 희곡은 다행히도 2021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얼마 전에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직을 마치고 나온 이성열 연출이 해보겠다고 나서줬다. 이성열 연출은 공연으로 올리기 난감한 면이 있는 대본을 노련하게 다듬어서 올려줬고, 코로나와 기타 등등의 이유로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관객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들었다. 고맙다. 이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를 한동안 안고 살아준 배우들과 스태프진에게도 고마울 따름이고. 그리고 이제 이 책이다. 희곡과는 별개로, 다른 조각들을 해체한 뒤 ‘장편소설’이라는 형태로 재구성해서 다시 쓴 것이다. 이야기가 꽤 오랜 기간 동안 난삽한 변신 과정을 거쳐 비로소 소설의 형태로 정착된 셈인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김남지 대표가 건네줬던 그 넉넉한 제안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맙고, 결과물을 내어놓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 건 몹시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대학 생활이 실패였다고 썼는데, 희곡 를 연출해준 이성열은 대학 연극반에서 만난 친구고, 문학회에서 만난 선후배와 친구들은 그때 이후 여태까지 내게 마음속의 닻이고 돛이고 갑판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아주 실패하지는 않은 셈인가.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 모두 고맙다. 혹시라도 누구 하나 빼놓을까 봐 두려워서 이름을 일일이 적지는 않겠다. 다만 먼저 이곳을 떠난 성원근, 기형도, 이주원 형들의 이름은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불러보고 그 얼굴을 떠올려본다. 이 이야기 속에서 가족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 소설 속의 인물들일 뿐이다. 내 실제의 형제들(누나가 둘이 더 있다)은 이들보다 훨씬 더 다정다감한 사람들이고 동생은 직장생활 잘하고 일찌감치 은퇴해서 여유 있는 은퇴자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어떤 순간 서로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칠십 년대의 야만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허구적 요소들과 함께 희생자로 동원되었을 뿐이다. 글을 쓰는 건 철저하게 사적인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애정과 이해심으로 무장하고 있다 해도, 몇 시간이고 한쪽 구석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애도 아니고 그 집에서 제일 덩치 큰 남자 어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 관계를 감당하기 위해, 또 집안을 함께 꾸려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꽤 있는데, 글을 쓴다는 건 그 일들의 상당 부분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최소한 뒤로 미루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한마디로 민폐다. 그 답답함과 괴로움을 견뎌주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오마니가 이 책을 보셨으면 분명히 잊기 어려울 농담을 한 마디 하셨을 텐데(나는, 불행하게도, 약한 치아는 그대로 물려받은 반면에 그 은근한 유머감각은 반도 닮지 못했다), 오마니는 당신을 오랫동안 한결같이 편안하게 모시고 있던 형 집에서, 올해 초에 먼저 떠나셨다. 나는 늘 늦게 귀가하고 늦게 도착하는 자식이었는데, 이번에도 늦었다. 늘 용서하셨으니 이번에도 용서해 주시겠지. 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이 따뜻한 걸 보면 이미 그러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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