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에서 3년 정도 교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 교사 생활을 하는 부산으로 왔다. 이후로 쭉 그때는 있지도 않은 단어인 경단녀라, 그냥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그게 또 취향에도 맞았다. 비바람 부는 날 식구들은 다 학교에 가고 나는 집에 있어도 되는 게 아주 맘에 들었다. 하지만 전업주부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유휴 노동력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 덕분에 온갖 데 다 불려 다녔다. 이 책도 그렇게 어느 날 난데없이 불려간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지은 책으로 딸 김하나를 낳은 날부터 다섯 살 생일까지 기록한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가 있다.
이옥선 작가에게 목욕탕은 세상이다. 듣고 말하고 관찰하고 배우는 인생의 장이다. 첫 책 커버에서는 목욕탕에 있는 사람과 어른들의 뒷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리커버에서는 그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고 씻기는 목욕탕 공간의 재미를 표지디자인에 담았다. 뿌옇고 우중충한 목욕탕이 아니라 이옥선 작가의 놀이터이자 생기가 넘쳐오르는 생활공간으로서의 목욕탕을 핑크빛과 민트색의 조합으로 살렸다. ‘즐거운 어른’ 타이포에서는 비누거품이 풍선처럼 퐁퐁 솟아오르고, ‘ㅇ’자에 겹쳐진 비누거품은 눈동자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이옥선 작가의 호v기심과 시선을 상징한다.
‘ㄹ’자는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듯 경쾌하게 디자인해 책 전체에 흐르는 이옥선 작가의 유머와 활력을 고스란히 담았다. 본 책 디자인에서 시선을 모은 이태리타올 띠지는 그대로 살려 책을 감쌌다. 때타올처럼 시원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밀어주고 감싸주고 씻어주는 이옥선 작가의 기세와 매력을 응원하면서.
이 리커버는 목욕탕과 이야기장수가 함께 만들어낸 ‘즐거운 어른 특별판’이다. 누구나 보는 순간 마음이 훈훈해지는 빨간 목욕탕 로고와 활짝 웃는 모습의 이야기장수 로고를 콜라보 기호로 표시해 이른바 『즐거운 어른―장수탕 에디션』으로서의 재미를 더했다. 결국 한 권의 책은 작가가 살아온 삶의 공간과 출판사가 협업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다.
_북디자이너 윤종윤(문학동네 디자인국장)
이옥선.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그녀의 딸인 김하나 작가의 육아 일기를 책으로 엮은 <빅토리 노트>의 공저자였던 2022년이었다. 누군가를 이토록 세세하게 사랑한 기록이 있다는 부러움 반, 대단한 분이 나타났다는 기대감 반으로 그녀의 첫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2년 후, 그녀는 드디어 단독 저자로 돌아왔다. 아주 화려하게, 다소 매운맛으로. <빅토리 노트> 이후 책을 다시 낼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새 글을 쓴다는 것이 '나이깨나 먹은 나에게 부담을 주는 숙제를 떠안는 꼴'이라고 여겨 '책을 다시 내다니 안 될 말이라고 다짐'했는데 쓰다 보니 글이 술술 풀려 '한입으로 두말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변명'하는 이옥선 작가는 이 책에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한 노년의, 대부분은 즐겁고 종종 헛헛하고 꽤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마 모두에게 두려운 일일 것이다. 한 번도 도달해보지 못한 미래, 그 미래를 먼저 맛 본 인생의 선배가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말해 준다. 늙음이란 꽤 괜찮은 것이라고. 젊은 사람들은 노인이 안 바쁠 줄 알지만 사실은 요가도 다니고 목욕탕에도 출근하느라 바쁘고, 가끔 불면증에 시달리긴 하지만 다음 날 굳이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잠이 올 때 그때 자면 되고, 종종 야밤에 콜라를 마시며 더 이상 나에게 잔소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라고 이 책이 말해준다. 그리고 나는 어쩐지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음 책은 부디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 이옥선이 아니라 에세이스트, 작가 이옥선이라고만 소개되면 좋겠다. 그런 호칭이 충분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당당하고 호쾌하고 명랑하고 즐거운 책이다.
내가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심장마비로 고독사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중략) 제대로 못 먹고 살던 시대에야 부모의 임종 전 병원에 가서 비싼 주사라도 한 대 맞혀 보내드려야 마지막 효도를 다 한 것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죽음은 이미 병원에서 맞닥뜨리는 일이다. 나는 죽을 떄가 되면 집에서 펴화롭게 죽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러려면 이제 아무도 안 볼 때 갑자기 죽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자들이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불릴 때쯤 얼마나 심정적 갈등이 많았을까. 당연히 결혼도 했고 적당히 나이들었으면 아줌마로 불려도 그러려니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왜 이게 또 쉽게 받아들여지질 않는 겐지. 게다가 요즘엔 나이는 제법 들었는데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모르는 사람을 불러야 할 때는 꽤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결혼하고도 아이를 안 낳은 사람도 있는데, 장사하는 사람 중에는 손님에게 무조건 어머니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도 엄청 바뀌어서 아무나 어머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중략) 이제는 모든 면에서 '이게 맞나?' 자신의 상식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좋게도 그냥저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여러 인생살이와 이런저런 사건사고와 경제적 결핍과 허약 체질과 남편과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익명으로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처치 곤란한 재물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한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수터, 또 종교와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