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은 남겨진 자들의 삶의 궤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들의 삶은 4·3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생존 투쟁의 연속이었지만, 4·3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 허호준, <4·3, 19470301-19540921>
이제 알겠느냐. 슬픈 역사, 그날 이후 제주의 서정은 그냥 그대로의 서정이 아니었음을. - 허영선,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아이들과 노인을 등 뒤로 숨기고, 총에 맞지 않기 위해 흰 수건을 나뭇가지에 묶어 들고 내려오는 깡마른 남녀들의 행렬이 자료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처벌하지 않겠다던 약속과 달리 수천명이 체포됐는데, 천운으로 풀려난 친척이 당숙네로 찾아왔대."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쓰루가역에서 쌀을 나르는 조선인을 심문한 판사는 알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청년의 경력, 그가 맛본 갖가지 폭력, 그로 인한 공포, 그의 사고력이나 결단력, 일본과 일본인을 향한 그의 동경, 그러한 동경을 품고 그가 해 온 일, 그 때문에 도피자가 되어 버린 처지, 그렇게 되기까지 조선과 제주도에서 벌어진 상황 등등 실로 판사는 무엇 하나 알지 못했던 것이다." - 박사라,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