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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1778
장자크 루소의 삶:

장자크 루소는 1712년 6월 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1722년 아버지가 제네바를 떠나면서 그를 외삼촌에 맡겼고, 외삼촌은 그를 개신교 목사 랑베르시에가 운영하던 보세의 기숙 학교에 넣었다. 1725년 도제 일을 시작했으나 3년 만에 그만두고 제네바를 떠났다. 1728년 안시에서 바랑 부인을 만나 이후 그녀의 후원을 받는다. 1742년에 바랑 부인과 이별하고 파리에 올라와 디드로, 콩디야크 등과 친교를 맺으며 사교계에 드나들었다. 디드로의 요청으로 『백과사전』의 음악 항목을 맡아 썼고, 1749년에 디종 아카데미 현상 논문 공모에 「학문 예술론」을 제출하여 당선되면서 문인으로서의 이력을 시작한다. 1755년 출판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 전 유럽에 알려진다. 1758년에 디드로를 비롯한 『백과사전』 집필자들과 절교한 뒤 파리를 떠나 장자크 루소 79 『신엘로이즈』, 『사회 계약론』과 『에밀』을 잇달아 출간하지만, 파리 고등 법원은 『에밀』에 유죄 선고를 내리고 루소에게 구속 영장을 발부한다. 1762년부터 1770년까지 루소는 모티에, 생피에르 섬 등을 거쳐 영국으로 도피 생활을 계속하다가 파리에 돌아와 악보 필사와 식물 채집을 하면서 만년을 보냈다. 자서전으로 1770년 말에 『고백』, 1776년 『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 — 대화』(이하 『대화』)를 완성했지만(이 두 책은 모두 루소 사후에 빛을 보았다. 『대화』는 1780년에, 『고백』은 1782년에 출판되었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1778년 7월 2일 파리 교외의 에름농빌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1794년 10월 볼테르의 유해와 함께 루소의 유해가 팡테옹에 이장되었다.

장자크 루소의 사상:

루소의 가장 독창적인 생각은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결코 사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흩어져 홀로 살았으므로 언어도, 법도, 도덕도 필요하지 않았다. 루소는 사회가 ‘뒤늦게’ 생겼음을 강조한다. 사회는 인류의 시작이 아니라 가까워진 끝이기 때문이다. 이 도식을 선택했기에 그는 흔히 자연의 사상가, 문명의 적대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루소의 생각은 역사상 어떤 문명 비판가나 자연주의자의 생각과도 같지 않다. 루소는 사회 폐지를 주장한 적도 없고 자연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없다. 루소는 또한 자연에서 비롯된 것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세심히 구분하고 분류하고자 했던 동시대 계몽 철학자들의 입장에서 결코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철학이 종교를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점에는 회의했다. 광신이 구원의 수단이 아닌 만큼 추론 또한 진리의 과정이 아니다. 도덕은 배워야 할 기술이 아니라 의식의 명령 자체이다. 루소는 도덕의 준거를 외부의 절대자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명령하는 의식의 목소리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여하한 가톨릭 사상가와 다르며 유물론 사상가와도 거리를 둔다. 그가 말하는 의식의 목소리가 자연이고, 양심이고, 정념이고, 신앙이고, 침묵이며, 그의 전 생애와 사상은 이 순서를 따라갔다.

장자크 루소, 단계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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