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좋아했을 때 그것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지만, 너무 좋아하기에 섣부르게 다가갈 수 없는 마음. <구의 증명> 리커버를 진행할 때 끊임없이 되뇐 생각입니다.
구와 담의 사랑을 화려하고 반짝이게 꾸미고 싶지 않았고, 너무 정제되고 딱딱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원에서 퍼져나가는 작지만 아름다운 에너지, 달이 태양을 가려 생겨나는 일식의 모습을 표지에 담고 싶었고, 두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코팅을 걷어냈습니다.
시간이 지나 종이가 까지고 때가 타겠지만, 그렇게 흔적이 쌓여 독자분께 온전히 자신만의 책으로 간직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_디자이너 박민수
p.7
천 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p.16
너를 보고 싶었다.
낡고 깨진 공중전화부스가 아니라, 닳고 더러운 보도블록 틈새에 핀 잡초가 아니라, 부옇고 붉은 밤하늘이나 머나먼 곳의 십자가가 아니라, 너를 바라보다 죽고 싶었다.
p.19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p.20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p.54
담이는 내 생각을 하지 않는가보다.
내 생각을 하지 않고 자나보다.
잠이 잘 오는가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p.99
두 분이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과 부모님을 이해한다는 말이 같은 뜻은 아니었기에,
아버지와 악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