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새해 목표를 점검할 때가 됐다. 다들 다이어리 첫 장에 썼던 결심을 3일 이상 지키고 있습니까? 나는 작년 한 해 집 밖으로 나간 시간이 적다 보니 몸이 너무 굳은 것 같아 아침 요가를 시작했다. 5일 째, 다행히 아직 하고 있다. 대표적인 새해 결심이라면 나처럼 운동이거나 금연, 건강한 식습관 등 주로 건강을 위한 것일 테다. 아참, '건강' 하니 생각났는데 혹시 가족들과 얼굴 보며 식사하기, 친구들에게 자주 안부 묻기 등도 올해 목표로 잘 챙기셨는지? 웬 뜬금없는 연결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은 건강과 장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적 관계라고 말한다.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것이 운동보다, 건강 보조제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정도의 말이 아니다. 저자가 600여 건의 논문 분석, 50여 명의 과학자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과학적 진실이다. 이를테면 행복한 결혼 생활은 사망 위험도를 최대 49%까지, 자원봉사는 약 22% 정도까지 낮춘다고 한다. 사실 비타민과 오메가3를 챙겨 먹을 때보단 친구들과 수다 떨다 배가 아프도록 웃을 때 문득 이렇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무래도 뜻이 있어야 길이 있는 거 아닐까. 책을 읽고 나니 지금 시국이 더 아쉬워진다.
1986년 출간되어 오랜 시간 사랑받다가 아쉽게 절판된 도서,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35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총 20권의 세트로 복원되었다.
알라딘에서는 지난 2020년 12월 1일 <아르미안의 네 딸들> 북펀드를 시작했고 854명이 참여, 총 124,676,800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펀딩 금액을 달성했다. 이로써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의 복간을 기다려왔는지 알 수 있었고,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증명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꿈과 환상,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를 넘나들며 상상 그 이상의 세계로 독자를 이끄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당신의 2021년 첫 책으로 손꼽을만한 가치가 있는 명품 순정 만화가 될 것이다.
2020년 김수영문학상을 등단한 적 없는 젊은 시인 이기리가 수상했다. 1부의 주인공은 혹독한 시절을 회상한다. "세상으로부터 주파수가 맞춰지는 느낌"(<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이 그에겐 자주 느껴지는 기분은 아닌 듯하다. 그가 말하는 친구들의 웃음은 "내 불알을 잡고 흔들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같은 시)의 순간이다. 학교라는 공간 속, 주인공은 자주 괴롭힘당하고, 그의 관계는 주로 숨겨야 하는 것이다. "숨겨야 할 표정이 생길 때마다 / 서랍을 열면 / 이미 숨겨두었던 정체들과 마주치게 된다."(<싱크로율> 중)라고 말하는 사람. '부디 나에게 관심을 그만 가져 / 여기까지 오려고 / 얼마나 많은 눈들을 피해왔는지" (<명당을 찾아라> 중) 라고 말하는 사람. 그가 말하는 저 웃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2부에서 주인공은 "내가 할 수 있는 있는 오직 단 하나의 숲을 걷거나 이 이야기의 끝을 생각해보는 것"(<유리온실>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들이 닿은 자리. 시는 3부에서 조금씩 4부를 향해 나아간다. 아픈 할머니의 구겨진 손을 잡으며 "손이 아직 따뜻했다. 더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 듣는다고 했다>)라고 생각하는 마음. 1부의 혹독함은 이 즈음에 이르러 조금 다르게 보인다. 4부의 주인공은 "버스를 타기 전에 젖은 우산을 길가에 터는 사람은 / 누군가의 곁이 눅눅해지거나 / 바닥에 물자국이 고이는 일을 염려하기 때문이겠지요"(<괜찮습니다> 중) 알고 있는 사람. '당신'과 "가만히 여름이 부서지고 있는 오후"(<백년해로> 중)를 함께 보내는 사람. "타인을 사랑하고 믿으려는 맹목적 태도를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다. 혹독한 웃음들이 닿은 자리에서 당신들을 향해 계속 편지를 쓰는 사람. 아무 것도 잊지 않았지만 모든 시간을 바르게 마주볼 줄 하는 사람의 태도가 이 시집을 들추게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돌이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나' 사이의 행간을 벌려놓고, 여전히 '진행중인 진실'을 마주하겠다는 태도에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시인 유계영이 추천했다.
책을 파는 사람으로서도 읽는 사람으로서도 즐거운 출간 소식이다. 책을 파는 사람으로서는 이런 고충이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간의 홍수 속, 분명 좋은 책이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저 멀리 밀려가는 모습을 아련하게 지켜보는 일. 이때, 영향력 있는 누군가가 추천해 이 책이 패자부활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참 반갑다.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책 파는 사람으로서 거는 기대는 이런 것이다. 좋은 책들이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일을 막아주는 것. 좋은 책들의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살피어 주는 것.
책 읽는 사람으로서는 이런 고민이 잦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게 맞는 건지. 사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놓친 채 겉핥기만 한 건 아닌지. 혹은 이 책이 간과한 지점을 나도 같이 눈 감고 지나친 것이 아닌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정곡을 찌르는 비평'과 '독서의 재미와 깊이를 더해 주는 길라잡이'를 자처한다. 좋은 리뷰는 대상 콘텐츠에 대한 이해의 폭을 훅 넓혀준다. 뭐랄까, 이 콘텐츠의 남은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 흡수시키는 느낌. 이 서평 전문지가 그런 경험을 선사해주길 기대한다.
장강명 작가는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책 중심 사회'를 소망한다고 썼다.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 서평 전문 잡지의 출간이 당장 우리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바꾸기를 기대하는 것은 허무맹랑한 꿈일테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어떤 바람을 타고 만들어지고, 바람엔 반드시 시작점이 있다. 이 잡지의 시작을 부푼 마음으로 응원한다.
흔들리는 삶의 이정표를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건 알지만 흔들리는 와중에 낯선 고전을 읽기가 벅찬 것도 사실이다. 좋은 가이드가 있다면 고전에 다가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서양 고전학자 김헌과 중문학자 김월회가 고전에서 건진 질문들을 소개한다.
동서양 고전을 넘나드는 이 책은 인간이 삶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핵심 화두를 살핀다. 명예, 행복, 부, 정의, 공동체, 죽음, 분노... 번갈아가며,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우리의 머리를 괴롭히는 키워드들이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서 돌부처처럼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흔들릴 때마다 다시 토대를 다진다면 나름의 곧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두 학자들이 던지는 질문들 안에서 자신을 잘 찾아보길 바란다.
영원히 밤이 지속되는 곳, 시간이 얼어붙어 자정에 갇힌 세상 속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담은 영국 판타지 3부작의 첫 번째 작품. 에밀리는 한밤중에 배달된 편지와 함께 사라진 엄마 아빠를 찾아 밤거리로 나선다. 아빠가 일하는 밤 우체국에 도착하자 자정을 알리는 빅벤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에밀리는 영원히 밤이 지속되는 밤의 세상으로 끌려 들어간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에밀리가 된 것처럼 발을 구르고 '이렇게 되면 안 되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사라진 엄마와 아빠를 구하고 두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려는 녹턴과의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선 함성이 나온다. 덤으로 런던에 대한 생생한 묘사 덕분에 마치 빅벤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 들 수도. 다음 권이 기다려지는 건 아마 독자 한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책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 건강과 돈 이야기로 시작된다. 오늘날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의학 보건 업계에 큰 영향을 끼쳐 인류의 건강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돈은 어떤가? 투자에서 어떤 패턴과 법칙을 발견하고 기법을 익히려는, 즉 투자가 과학의 영역이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금융공학은 모두를 부자로 만들지 못했다. 저자는 단언한다. 우리를 성공적인 투자자로 만드는 기술은 어디에도 없다고. 이는 곧 투자가 심리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의 성패는 우리 각자의 감정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성장기 때 강세장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투자에 보다 적극적이며, 큰 수익을 경험한 사람들은 위험 선호도도 그만큼 높다고 한다. 각자의 경험과 시기적 행운이 투자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훌륭한 상황판단과 현명한 의사결정이 부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저자는 경고한다. 자만, 욕심, 낙천주의를 경계하라고. 요즘 같은 거침 없는 상승장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명심하자. 요령과 행운으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그 돈을 지켜 끝내 부자로 남는 것은 전적으로 심리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부모 품에 안겨 부모가 골라 읽어주는 그림책을 가만히 듣던 아기들도, 초등학생이 되면 자기 생각이나 의지도 커지고 다른 할 일도 많아져서 책과 점점 멀어진다. 독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이 요구되는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다 보니, 아이에게 책을 권하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지게 하는 일은 의외로 힘들다. 좋은 책을 만나고, 즐거운 책 읽기로 독서력을 키우고, 나아가 학습력을 높이는 과정이 중요함은 알고 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부모가 된다고 저절로 책 보는 눈이 생기고, 책 볼 시간이 생기고, 아이들의 눈높이와 교육과정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공부머리 만드는 그림책 놀이 일 년 열두 달>로 그림책 읽는 법을 소개했던 저자가 '초등학생도 책을 재미있게 보게 만드는 방법'을 묻는 부모들에게 답하는 책을 만들었다. 잡지나 방송에 글을 쓰면서 두 아이를 키웠고, 쇼호스트로 어린이책 방송을 진행했으며,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일했던 저자의 경력이 책에 고스란히 남아서, 과학, 사회, 문학, 예술 등 주제별로 추천도서 목록, 도서 상세 정보, 읽기 놀이 방법, Q&A 등 초등 독서력을 키우는 책읽기 정보가 600페이지가 넘는 책에 꼭꼭 눌러 담겨있다. 이제 자신 있게 아이 책을 고르고, 함께 읽으며 깨발랄(고정관념을 '깨'고 '발'로 뛰는 느낌으로 열심히, '랄'라랄라랄라... 신나게) 책놀이를 즐겨보자!
엄마와 가족들과 함께 사는 코끼리 어니스트는, 어느 날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는다. 고릴라, 사자, 하마 등 크고 강한 동물에게 물어보지만 다른 동물들은 귀찮아할 뿐 관심이 없다. 그때 가냘픈 목소리의 작은 쥐가 기꺼이 손을 내민다. "울지 마. 내가 도울 수 있어. 날 들어 올려 봐. 길을 알려 줄게."
앤서니 브라운은 작가 지망생 시절 처음 구상했던 아기 코끼리 이야기를 40년 만에 그림책으로 그렸다. 노년의 거장은 자신이 꿈 많던 청년에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된 것처럼, 누구에게나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응원한다. 곤경에 처한 이에게 먼저 손 내미는 용기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따듯한 마음, 울고 있는 코끼리를 도와주는 작은 쥐의 친절이 커다란 울림으로 마음에 와닿는다. '작은 쥐도 행복했어요. 조용히 인사하고 정글로 돌아갔지요. "안녕."'
서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베스트셀러 코너가 우리를 반긴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게 뭔지 훑어본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코너로 향한다. 물론 몇몇은 이미 베스트셀러를 들고 계산대로 간 뒤다. 이제 매대에 놓인, 서가에 꽂힌 많은 책들 가운데 나만의 책을 찾는 탐험이 시작된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류다. 서점은 크게 경제, 인문, 소설 등으로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 내에서도 철학, 심리, 역사 등 세부 분야별로 책을 진열하여 독자들이 관련 분야의 책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요즘 주식 투자를 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매우 유사하다. 삼성전자, 현대차, 네이버 같은 베스트셀러로 투자를 시작한 많은 동학 개미들은 반도체, 바이오, 건설 등 각자 눈여겨보아 온 분야로 투자의 폭을 넓히기 시작한다. 그런데 코스피, 코스닥 상장 종목만 2,200여 개나 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그 많은 종목들을 25개 업종, 109개의 섹터로 나누고 마인드맵으로 시각화한 이 책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 책을 도구 삼아 자신만의 안목을 기르고, 호도되지 않는 현명한 투자자가 되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에게 말실수를 해서 상처를 입혔다면, 기억하자. 한 번의 칭찬이나 사과로는 상쇄 시키지 못한다. 1번의 부정적인 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최소한 4번 이상의 긍정적인 것이 필요하다. 책에선 이를 4의 법칙이라 부른다. 사람의 뇌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빠르고 깊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매번 칭찬받다가도 한번 지적받으면 왜 이렇게 좌절스러운지, 늘 좋던 관계가 왜 어쭙잖은 실수 한 번으로 처참히 깨어지기도 하는지, 그 이유가 다 인류의 진화라는 유구한 역사에 있다.
인간이 부정성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는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자세나 인간관계 등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관계에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보단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 것. 우리는 싫은 것을 더 강렬하게 기억하니까. 손실과 이익의 결정 앞에서 마음이 흔들린다면 타인에게 조언을 구할 것. 타인의 일에 대해서는 손실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라는 장애물이 없으니까. 여러 실험과 사례들을 따라가며 책을 읽다보면 우리 뇌의 부정성 편향이 삶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정확히 알고 통제한다면 조금 더 긍정적인 일상, 현명한 인생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바흐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그의 음악의 아름다움은 무엇하나 더하고 빼는 순간 음악의 완전성이 흐트러지는,그 특유의 완전함에서 온다. 이토록 완전한 음악을 만든 바흐, 그의 천상의 음악이 우리처럼 불완전한 인간에게 감히 허락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는 바흐의 삶의 다채로운 겹에서 그의 음악의 아름다움의 기원을 찾아낸다. 권위를 무시하고 사회의 규율에 소홀한 인물이었으면서도, 학교와 시의회에 약속한 창작의 의무를 수행하고, 그러면서도 칸타타를 매주 작곡하기로 한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며 근면하게 음악에 매진해 온 바흐.
바흐의 "음악과 더불어 여정을 시작하면 한껏 고양된 의식에 노출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다." (876쪽) 바흐의 음악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의 본질은 그 무엇보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에 담겨 있다. 새해와 함께 경험하는 인간 바흐의 세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작가 이언 보스트리지가 "학구적이고, 생생하며, 신중하다. 창조적 예술가의 위대한 전기들이 그렇듯, 이 책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다리를 놓아 그 작품들을 새로운 삶에 불러들인다." 라고 말하며 추천했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까? 그건 '나음'의 상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인간의 몸에 관하여 '나음'을 요철 없이 매끄러운 상태로 정의하는 순간, 기술은 진짜 불편을 해소하지 못한 채 불편을 말하는 입을 막거나 어떤 종류의 불편을 더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섬세한 사유를 거치지 않은 인간의 창작물은 사회의 위계를 그대로 지닌 채 태어난다. 지금의 기술이 무엇을 간과한 채 달리고 있는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음의 방향이 어디인지에 대해 김초엽과 김원영이 각자의 사유를 풀었다.
두 저자의 글은 같은 굵은 줄기에서 뻗어 나와 각자의 결대로 흐른다. 성별도, 연령대도, 장애 경험도 각자 다른 두 저자가 인간의 몸과 과학기술이 결합하는 지점에 대해 논의한 이 글들은 서로 대결하는 듯, 교차하는 듯 치열하게 이어진다. 장애와 기술에 대한 논의는 이 세계의 어느 한 쪽에서 되풀이하여 이어져왔겠지만, 소수자성을 띈 논쟁들이 대부분 그렇듯 아직 지배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진 못했다. 이 책은 아직 논의가 닿지 못한 곳에 불길을 던져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들의 사유가 도달한 곳곳에서 적극적인 생각들이 번져가길 바란다.
2011년 1월 22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글을 매만지다 홀연히 떠난 박완서 작가. 그가 떠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박완서 작가가 집필한 660여 편의 에세이 중 고르고 골라 대표할 만한 35편의 글을 한 권에 담았다.
박완서 작가는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정직하게,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겠다는 다짐으로 쓰고 고치고 쓰길 반복했다. 정직하고 엄격하게 한 편 한 편을 지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따뜻함을 선사했던 작가의 주옥 같은 글을 10주기를 맞이하여 다시 읽는다. 그의 따스한 시선과 위로의 문장으로 담아낸 글은 언제 읽어도, 몇 번을 읽어도 우리의 마음을 온기로 가득 채워준다.
아이는 학교에 가면 맨 뒷자리에 앉는다.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오늘은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다. 입이 아예 꼼짝도 안 하고, 모든 눈이 나를 보고 모든 입이 나를 비웃는 날, 집에 가고만 싶어지는 날. 이런 날이면 항상 아빠가 나를 데리러 학교에 오셨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함께 강가를 거닐기도 했다. 발표 시간이 떠올라 힘들었던 어느 날, 아빠는 강물을 가리키며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캐나다 시인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바닷가 탄광 마을>로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한 시드니 스미스가 그림을 그렸다. 말을 더듬는 아이의 내면 풍경, 주위의 반응과 그로 인해 더 움츠러드는 아이의 마음, 그리고 쉼 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며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신을 긍정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굽이치고 부딪히고 부서지면서도, 쉼 없이 당당하게 흐르는 강물, 빠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한 강물. 발표 시간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는 강물처럼 말한다.
랑시에르의 문제의식이 태동한 저작이다. 랑시에르는 1830~50년대 프랑스 노동자들이 저널과 일기 등에 기록한 여러 목소리를 분석하며 노동자의 말하기에 주목한다. 그는 노동자 말하기를 일정한 존재 양식이나 어떤 문화(생활사)로 귀착시키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되는 현실을 해명할 수 없다는 것, 이 노동자의 말하기를 일종의 노동자적 집단 형체 안에 가두면서 사실상 거기서 문제가 되었던 유형의 진리를 없애버렸다는 것에 주목했을 뿐만 아니라 리얼리즘적이고 자연화하는 기능을 갖는 서사를 채택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문제의식을 획득한다.
2020년을 2873.47로 마감했던 코스피지수가 불과 4거래일 만인 1월 7일, 3031.68을 기록하며 역사적인 3천 시대를 열었다. 2007년 7월, 2천선을 돌파한 이후 무려 14년 만의 일이다. 그 후 며칠이나 되었을까. 코스피가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면서 조정 국면을 맞자 3천선이 위태하다는 기사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올라오고, 증시가 너무 과열됐다는 쪽과 이제 한창일 뿐이라는 쪽의 신경전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이제 막 시장에 참여해 주식을 배우는 중인 초보 투자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 불안한 '주린이'들의 마음을 가라앉힐 진정제다. 주식투자 열풍이 낳은 또 한 명의 스타이자 '염블리'라 불리는 주린이들의 멘토, 염승환 저자가 자신의 첫 단독 저서의 독자층을 주식초보자로 설정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한 일이다. 많은 저자들이 자신만의 투자 노하우를 뽐내기 바쁘고 독자들 역시 어떤 요령에 더욱 집중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이기 때문이다. 책에 담긴 77개의 기본기를 대부분 안다고 방심하진 말자. 하루하루 주가변동성에 휘둘리는 우리는 아직, 이 책을 곱씹어야 할 주린이인지도 모른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기적의 세일러문' 노래가 흘러나오면 홀린 듯 TV 앞으로 모였던,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대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모든 팬들 주목! 90년대 후반, 몇 번의 도서 발행이 있긴 했지만 완전판이 아니었고 그마저 수급이 원활치 않아 중고가가 어마어마했던 바로 그 책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의 첫 완전판이 전 10권으로 동시 출간되었다.
중2의 쓰키노 우사기는 고양이 루나를 만나면서 본인이 선택받은 정의의 전사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되고 동료 전사들과 함께 턱시도 가면의 방해를 막아내며 '환상의 은수정'을 지키는 사명을 부여받게 된다. 이번 완전판은 새로운 표지 일러스트에 모든 원고를 디지털 리마스터링 하여 깔끔한 화질을 선보인다. 또한 잡지 게재 시의 컬러 페이지를 재현했고 금박 로고, 홀로그램 가공 등을 활용해 오랜 시간 기다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어린 시절 추억을 소장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만하다!
기후 위기로 지구의 생명들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요즘이다. 인간이라는 파괴적 존재로 인해 사라지는 생명들, 그 반작용으로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칼날의 연쇄 작용 앞에서 근원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폴 너스 경이 답변을 가져왔다.
그는 생물학의 5가지 개념으로 생명에 대한 정의를 시도한다. 세포, 유전자,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화학으로서의 생명, 정보로서의 생명을 토대로 개진해나가는 그의 설명은 명료하고 간결하다. 생명에 대한 섬세한 정의 끝에 그는 이 이해가 결국 다른 생명에 대한 책임에 닿아야 한다고 말한다. 앎으로부터 끌어올린 책임, 인간이 마음에 지녀야 할 태도까지 알려주는 책이다.
캐나다, 미국, 중국 등과 비슷한 땅 크기에 무려 50여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곳. 육지의 7%, 세계 인구의 10%를 차지할 뿐이지만 대륙이라 불리는, 그마저도 러시아를 제외하면 오세아니아를 누르고 지구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 되는 그곳. 인류 문화를 꽃피웠다는 자부심이 과한 나머지 인근의 낙후된 국가들마저 아시아라 부르며 변방 취급을 했던 문화 공동체.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만든 절대 강자, 유럽 이야기다. 한때 세계 인구의 25%가 모여 살던 세상의 중심 유럽은 그러나 그 오랜 명성이 무색한 최악의 한 세기를 맞이하게 된다.
세계적 역사학자 이언 커쇼가 파란만장했던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두 권의 책으로 갈무리했다. 총 2056쪽으로, 그의 대표작이던 <히틀러>(2236쪽)에 필적하는 또 하나의 대작이다. 그가 붙인 원서 제목처럼, 반세기 동안 지옥을 맛보며 죽다 겨우 살아났지만 이후의 반세기를 내내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던 유럽의 20세기는 애당초 간단히 정리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방대한 드라마를 단 두 권으로 '편집'한 저자에게 감사하며 유럽의 20세기를 돌아본다. 우리 인류가 또다시 지옥행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며 내일로 가는 사람들" 예지, 김초엽, 황소윤, 재재, 정다운, 이주영, 김원경, 박서희, 이길보라, 이슬아 90년대생 여성 10인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다. 패션매거진 '마리끌레르 코리아'의 피처 에디터 유선애가 그녀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눴고, 유려한 문장으로 다듬어 의미 있는 한 권의 기록으로 탄생시켰다.
뮤지션, 다큐멘터리 감독, 배우, 유튜버, 연재노동자이자 작가, 국가대표선수. 직업도, 연령도 다양한 여성 10인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나대로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각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다채롭고, 매력적이며, 생동감 넘친다. 정직하고 분명한 그녀들의 이야기에 더해진, "삶 속에서 되고 싶고, 기꺼이 사랑하게 되는 여성의 모습이란?" 질문에 대한 10가지의 답변 역시 가슴 뛰게 만든다.
2015년 신춘문예 등단, 2019년 동주문학상 수상, '시인의 악기 상점'이라는 이름의 가수로도 활동중인 시인 정현우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6년 동안 발표된 68편의 시를 섬세하게 배치해 4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천사의 말을 얻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눈 내린 숲, 쓰러진 천사. "나는 천사를 등에 업고 / 집으로 데려와 천사를 씻겼다. / 날개에는 작은 귀가 빛나고 있었다. / 나는 귀를 훔쳤다. / 귀를 달빛에 비췄고 /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귀와 뿔> 中) 인간에게 닫힌 말을 얻게 된 이후 내겐 보통은 들리지 않을 이야기들이 들린다. 그것은 하늘을 높이 나는 '주인집 아들이 부는 비눗방울'처럼 선명한 가난의 이미지일 수도 있고(<덫> 中), 인간의 말이 아닌 말로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을 얻길 바라며 치르는 굿판의 '신복(神服)을 입은 할미가 내 목을 누를 때'의 감각일수 있고, (<점(占)> 중) 네 부고를 들은 후 '죄들이 손바닥 끝에서 / 붉고 투명한 귀들로 자'(<용서> 中)랄 때의 간절한 고해일 수 있고, '소매에 넣으면 길어진 나의 팔은 쑥쑥 자라 입을 수 없는 옷들만 수북이 쌓'(<옷의 나라> 中)일 때의 당혹스러움일 수 있다. 나의 정체성엔 이 세계가 맞지 않는 듯하다. 내겐 맞는 옷이 없듯 맞는 몸이 없고, 맞는 언어가 없어 슬프지 않을 수 없으니 이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 자문할 수밖에. '자기 다움의 소실점'을 따르는 고해록 같은 시. (시인 이병률 추천의 말 中) 그 모든 슬픔을 기리는 천사의 말, 정현우의 지금이 도착했다.
31세기의 시점에서 본 21세기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대서사의 시작은 12세기, 한 인간 남자를 사랑한 마계 여인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를 의미하는 '두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 마족과 인간의 혼혈인 두니아의 후손들은 자신의 뿌리를 모르는 채로 인간의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800년이 흐른 21세기의 어느 날, 거대한 폭풍우가 세상을 휩쓸어 인간계와 마계 사이의 봉인이 깨지기 전까지는.
이어져서는 안 될 두 세계 사이에 통로가 생기자 인간 세상에는 온갖 괴이한 사건이 난무한다. 혼란을 틈타 침입한 흑마족은 인류를 노예로 삼으려 하고, 두니아는 그에 맞서기 위해 후손들을 규합하고 이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일깨운다. 공중부양을 하는 정원사 '제로니모',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실체로 나타나는 그래픽노블 작가 지망생 '지미', 주변인들의 부정부패를 알아채는 아기 '스톰', 번개를 쏘는 '테리사'가 부름을 받아 흑마족과 전쟁을 벌인다. 천 하룻밤, 장장 '2년 8개월 28일 밤'동안 이어진 어둠과 신비의 기록. 25개의 부커상 수상작 중에서 선정된 ‘부커 오브 부커스상' 수상작이자, 40개의 수상작 중 독자가 선정한 '베스트 오브 더 부커상' 수상작 <한밤의 아이들>을 잇는 매혹적인 현대판 '천일야화'를 만난다.
<수상한 시리즈>가 당차고 적극적인 여진이의 이야기였다면 스핀오프인 <궁금한 시리즈>는 여진이의 사촌 동생 여우의 이야기다. 여우는 장래에 탐정이 되는 것이 꿈이어서 탐정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다. 그런 여우가 깐깐하기로 소문난 고모의 아파트에서 잠시 지내기로 하는데, 고모의 아파트는 이상하다. "절대 인사하지 말 것!" 여우의 아파트에서라면 서로 인사를 할 텐데 왜 고모의 아파트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걸까? 궁금증이 넘치는 여우는 이 아파트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된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많은 사람의 거주 공간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동 주택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고 이웃 간의 문제가 여럿 발생하게 방치하거나 서로를 모른 척하는 걸 당연시한다. 아이들의 눈에는 그런 광경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같은 반 친구와 인사하지 않는 친구를 보는 기분이지 않을까? 이 책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자신의 주변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관심과 배려의 소중함이 더욱 중요한 나날이다.
코스피지수가 3천을 넘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3200선을 돌파하자 이러다 금방 4천까지 가겠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2천에서 3천이 되기까지 14년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정말 엄청난 상승세다. 상황이 이쯤 되면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상승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번다. 주식으로 쉽게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자신이 투자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들을 추종하고 흐름에 편승하려는 이들도 함께 생겨남은 물론이다.
그렇게 갑자기 투자에 뛰어든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 것인지, 어떤 종목을 사야 크게 벌 수 있는지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투자자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은 별로 없다. 충분히 공부한 후에 투자하면 혼자만 뒤처질 것 같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그러한 투자를 경계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만의 투자 시나리오를 가져야 한다는 것. 이제 가장 좋은 때를 묻지 말고 묵묵히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자. 현명한 투자자에게는 매 순간이 곧 기회다.
뮤지션, 책방 주인, 작가, 팟캐스트 진행자로 음악과 책 두 개의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대중들과 소통해온 요조. 책방 '무사', 떡볶이, 여성으로서 일하며 살아가는 삶,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그가, 이번에는 자신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고 독자들 앞에 다시 섰다.
제주의 집과 서울의 집을 오가며 때로는 제주 생활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서울 생활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관찰하고, 살아간다. 그 사이사이 부암동 어느 작가의 집, 구미의 어느 문고, 도봉동의 부모님 댁에 머무르며 보낸 시간들이 채운다. 작가만의 정갈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람과 반려동물과 일과 일상을 그려내 한 권에 담았다. 그가 지은 음악의 결과 닮은 다정한 산문 하나 하나는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면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명절이면 떠오르는 그림책은 <솔이의 추석 이야기>이다. 아기를 등에 업은 엄마와 양복 차림에 선물 꾸러미를 든 아빠, 색동 한복을 차려입은 솔이가 시골길을 걷는 표지는 언제봐도 정겹고,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우리를 단번에 데려간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가 엄마 아빠 어릴 적 명절 풍경이라면, 김영진 작가의 신작 <설날>은 지금 아이들이 보는 명절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시골의 할머니 댁 대신 도시의 어느 아파트로 가족들이 모인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저녁은 회, 치킨, 피자 등을 시켜 먹고, 음식 준비도 설거지도 온 가족이 함께한다. 고모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행을 가셔서 친정으로 설을 쇠러 오고, 작은 아버지네는 교회에 다녀서 차례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 명절을 지내는 모습은 이렇게 달라졌지만,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의 밤늦은 수다와 사촌들과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여전하다. 한 해를 새로 시작하는 명절, 설날. 그린이가 힘차게 인사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바이닐 상점, 필름 카메라 현상소, 중고 서점... 자본주의 세계에서 주도권은 잃었지만 아직 영원히 사라지진 않은 공간에 기대하게 되는 낭만이 있다.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교양 있는 손님들이 들락거리고, 계산대에선 눈빛이 깊은 사장이 위트 있는 질문을 던지는 풍경 같은 것. 알다시피 현실은 언제나 꿈을 밟고 넘어진다.
이 책의 저자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의 주인이다. 첫 장부터 성마르고 편협하고 비사교적인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서점을 운영하기 전엔 유순하고 상냥했다고도 말한다) 서점에서 마주치는 별별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주 가끔씩 이상적인 손님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99%는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손님들의 이야기다. 왠지 따스해 보이는 책의 제목과 표지와는 달리 내용은 무례하고 난데없는 에피소드의 향연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tv 시리즈로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끈 이유는 이 서점 주인의 반응 때문이다. 그는 체념, 분노, 위트가 아주 적절한 간으로 배합된 감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손님들에 대한 속마음을 푼다. 이 요상한 웃음 포인트가 대단한 감칠맛을 내서 계속 읽게 된다.
이 책의 저자가 마주하는 일상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매출의 압박에 시달리는 현실, 손님들의 진부한 무례함과 참신한 괴롭힘, 엉뚱한 직원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은 무례한 손님에 해탈한 저자의 반응, 좋은 책에 대한 서점의 안목과 주관, 손때 묻은 책들의 낡은 향기가 합쳐진 멋진 풍경이다. 그러니 낄낄 웃으며 책을 다 읽은 후엔 어쩔 수 없이 낭만에 대한 착각을 또다시 이어갈 수밖에.
"요즘 몸이 너무 무거워." 친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어받는다. "살을 좀 빼. 일단 먹는 것부터, 특히 탄수화물부터 줄여 봐. 그리고 운동 좀 해. 달리기가 최고야. 주말에는 나랑 같이 뛰자. 안 그러면 너 금방 당뇨 오고 큰일난다. 건강 챙겨라."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 왠지 모를 뿌듯함과 유대감을 느낀다. 그런데, 친구도 그렇게 느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이야기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핵심 열쇠는 선의의 제안과 권고, 조언과 비판이 아니라 상대의 자존심을, 욕구와 바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고문의 대안을 찾아 테러와 범죄 용의자를 신문하는 심리 전략을 연구해 온 저자들은 영미 정보기관이 도입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 책은 그 '라포르' 전략을 일상적인 관계에 활용하는 방법을 다룬다. 저자들은 말한다. 고문과 같은 강압과 강요는 물론 그 반대쪽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제아무리 선의가 담긴 솔직함이라도 상대를 기만하거나 가르치려 했다면 관계는 이상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당근과 채찍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대화와 관계는 그래서 어렵다. 라포르 전략으로 의사소통에 노력을 기울여 보자. 그것은 나의 행복과 건강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무신론의 대표주자 리처드 도킨스가 종교에 대한 또 하나의 책으로 돌아왔다. 이번 책에서 역시 그는 단호한 어조로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무수히 많은 신 중 왜 당신이 믿는 신만이 옳은가? 성서들 사이의 모순된 내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왜 어떤 기적은 믿고 어떤 기적은 믿지 않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그는 성서와 신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의 이해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섭리에 신을 놓는 대신, '과학에서 용기를 찾자'고 말한다. <만들어진 신> 이후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이 무신론자의 생각은 더욱 명료하고 자신만만해졌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다시, 그림이다> 등의 예술 교양서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 마틴 게이퍼드가 예술의 세계로 떠났다.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을 만나기 위해 루마니아의 트르구지우로, 로니 혼의 '물 도서관'을 만나기 위해 아이슬란드의 스티키스홀뮈르로,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지추 미술관'을 만나기 위해 일본의 나오시마로, 대진의 '춘산적취도'의 그 산을 보기 위해 중국의 황산으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의 대화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수 천 킬로미터의 거리와 비포장도로와 끝없는 줄서기, 무모할 정도로 집요한 이 여행의 목적은 오직 아름다움 그 자체.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떠나는 긴 여행"(15쪽)은 "목표가 무엇이든 그것만 생각하게"하고, "그 결과로 배우게 되고", "출발할 때와 똑같은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만든다.
선사시대의 예술이 머무는 크로마뇽 동굴부터 도발적이며 현대적인 회화 작품을 발표해온 제니 새빌의
미술관 사치 갤러리까지,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부터 인도의 타밀나두주의 사원까지, 여행은 아름다움의 장르와 시대와 풍경을 넘나들며 이어진다. 7월의 로마의 더위와 끝없는 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감상하며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목덜미의 쥐, 이 모든 감각의 경험 역시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방법의 하나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꼭 우리처럼 어설픈 여행자인 마틴 게이퍼드는 기차를 놓치고,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카르티에브레송과의 식사를 놓치고 후회를 남긴다. 그러나 이 어설픈 여행자가 아름다움의 의미를 발견하고 풍경에 마음을 여는 순간, 그 모든 아쉬움 못잖은 뭉클한 감동이 밀려든다. "여행의 고통 또한 경험의 일부."(16쪽) 우리는 다시 여행을, 예술을 꿈꾼다. 이 책에 대한 커커스 리뷰의 말처럼 "당신은 책을 덮는 순간 여행을 꿈꿀 것이다."
제나는 울지 않는다. 울면 엄마가 다시 중국으로 보내버릴 수도 있으니까. 단 한 번도 아빠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장'에게 옛날처럼 보낼 버릴 테니까. 아니면 보육원으로 보낼 수도 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4년간 말 못 할 고생을 겪으며 제나를 낳은 제나의 엄마는 대한민국 땅에서 제나와 동생 미나를 키우고 있다.
열두 살이 겪기엔 너무나 힘든 일이 많다. 자신을 버릴까 봐 매일 두려움에 떠는 제나. '북한 애'라는 말을 들을까 봐 잔뜩 경계를 세운 제나. 그 누구도 따뜻하게 제나를 제나 그 자체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누더기라고 부르는 반 친구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어린이는 쑥쑥 자란다. "누더기의 다른 말 같은 모자이크." 어느새 자신을 모자이크라 부른다. "누더기는 거지 같은데 모자이크는 교회의 창문 같다." 알록달록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빛으로 반짝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