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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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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내가 행복했던 교회로 가주세요

이 신앙에세이는, 마음은 슬펐으니 예수님으로 충만했던 어느 7월의 기록이다. 그해 7월은 실패했지만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소설가로 등단해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하며 글을 쓰려고 했지만 내 손목을 꽉 잡고 계시는 하나님 때문에 제대로 된 소설 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고통 받을 때였다. 정말 숨기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썼다. 매일 하루의 삶을 원고지 스무 장씩 서른 장씩 한 달 동안 꾸밈없이 일기 쓰듯 써내려 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교회가 펄펄 살아있고 믿음도 펄펄 살아있고 교인들도 펄펄 살아있던 시절의 역사기록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런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람의 신부와 치즈케이크

충분히 살긴 살았는데 충분히 표현해 본 적이 드문 나는 요즘 우울하다. 소설을 쓰면 뭔 소리냐고 하고 산문을 쓰면 이 따위를 쓰냐고 한다. 솔직하게 쓰면 아슬아슬하다고 하고 열심히 쓰면 손목에 힘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다 들 왜 이러는 거람. 그 와중에, 심중에 굳게 잠겨 있어 도무지 고개를 못 내밀고 있는 나의 내밀한 경험의 베이스캠프는 늘 조난의 위험을 견디어 내고 있다. 누구는 설산을 잘도 넘어가는데 나는 베이스캠프의 천막이 날아갈까 봐 전전긍긍이다. 어딘가 꽂아야 할 깃발은 여전히 가슴 깊이 뜨겁게 품고 있는데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베이스캠프에서 (우라질)감성의 감마선을 어마무시하게 쏘아 올려 저 달무늬 얼룩진 금잔화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유라의 결혼식

죄송하다, 1985년생이 아니고 1958년생이어서. 여자 나이 마흔을 넘어서면 무슨 짓을 하면서 살까. 내가 옆에서 지켜본 중년 여인들은 여행을 가거나, 뒤늦게 취미 활동에 골몰하거나, 운 좋게 잡은 임시직에 아등바등 매달리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찜질방에서 감식초를 먹고 있었다. 나로 말한다면 아무래도 찜질방 쪽에 가깝겠다. 그녀들과 조금 다르다면, 그녀들의 수다를 엿들으며 그녀들의 가슴 허한 어떤 부분에 대하여 계속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것 정도? 그 '촉각'과, 내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나의 내면에 대한 의구심을 뒤섞어 10년 동안 소설을 썼다.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나도 첫줄을 기다리고 있다네 “분명히 언어로 쓰지만 언어로 쓸 수 없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거죠.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른 채 갈 수 있는 부분이, 어느 순간 자기 신뢰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 어느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눈물을 글썽이는 나의 표정은, 얼음 넣은 ‘화요’ 한 잔을 빈속에 마신 것처럼 말끔하게 좋았으리라. 차원은 물론 다르겠으나, 나 역시 언어로 쓰지만 언어로 쓸 수 없는 것을 향해 무모하게 달려가고 있었고,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른 채 가면서, 평생 불신과 신뢰의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는 마당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저 두 문장을 읽는 순간 ‘자기 신뢰’를 한 뼘쯤 득템하고 내 뺨 역시 발갛게 달아올랐으리라.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평생 못 쓰다 죽겠구나. 매일 밤마다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은 나를 들어주느라 뇌 용량이 꽉 차버리는 바람에 정작 제대로 된 소설 하나 못쓰고 살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다. 그리하여 소설책 언제 나오냐는 내 주변의 인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내가 소설인 줄 알아라. 문청들이 열병 앓는 신춘의 계절, 사는 게 하도 힘들어 (쓰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이번 까지만 응모하고 끝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열네 군데 신문사에 소설을 보냈는데 매일신문, 경남신문 두 군데서 당선 연락이 와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이후는 소설 못쓰는 병에 걸려 더 기절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 이건 실화인데, 신춘문예 소설 당선한 이듬해인가 심사위원 중 한 분께 “왜 나를 당선시켜 이 고생을 하게 만드느냐!”는 요지로, 한 문장은 열네 자 이하로 끊어 써야 한다는 세간의 조언을 말짱 무시한 채 저 길고 긴 만연체 문장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이제껏 쓴 소설, 쓰다만 소설 모두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썼지, 독자가 이런 소설 좋아할까, 이런 생각 1도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독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마당에 내가 쓰고 싶은 소설도 제대로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어차피 애독자가 있을 리도 없으므로) 독자까지 생각해서 소설을 쓸 여유가 없어서 그랬다. 그래서 이 소설이 두 번에 걸쳐 문학동네 최종심에도 오랐을 때, 이상하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했다. 실은 상당히 고마웠다. 아니, 눈물나게 고마웠다. 요즘 퇴고하면서 내 수준을 (뒤늦게, 이제야 겨우) 알게 된 건데, 그분들의 초월적인 안목(!)에 무한경배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책상 서랍 속에 묵혀있던 이 소설을 격려해주시고, 책 내라고 기금도 주신 경기문화재단에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마치 삶을 정리하는 기분이다. 1999년 2월 24일 생일 새벽, 내 생애 첫 소설을 완성하고 혼자 좋아 죽던 이래, 맨날 소설을 접어버릴까 말까 하면서 세월 다 보냈다. 오죽하면 내 블로그 이름이 <소설접기>다. 에잇, 진짜 쌩까버려야지 하면 꼭 어디선가 기를 살려주는 소식이 들려와서 실낱같은 ‘자기 신뢰’를 부여잡고 아등바등 살았다. 그러니 내일 일은 나도 모르겠다. 또 소설 못쓰겠다고 자빠질지, 이제야말로 내가 쓰고 싶었던 진정한 소설을 쓰리라 작심하고 달려들지. 그렇게 갈팡질팡하면서도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른 채, 분명 언어로 쓰지만 언어로 쓸 수 없는 것을 향해 달려가려고 주먹을 불끈 쥐고. 그렇게 오늘도 첫줄을 기다리고 있다. - 간헐적 슬픔이 역력한 자폐클럽에서 2023년 깊은 가을

하나님의 트렁크

시퍼렇게 살아 계시다는 나의 아버지 되신다는 하나님이 눈가가 짓무를 정도로 눈물을 흘리게 하시더니만 혼자 벽을 보고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끼게 하시더니만 끝없는 자폭의 시절을 그토록 오래 견디게 하시더니만 자꾸 엇나가는 내 발목을 잡고 안 보는 듯 보시면서도, 눈 하나 깜빡 안하시더니만 내가 웃는 꼴을 못 보시겠는지 고통으로 살을 저미게 하시더니만 (하나님이 정말 나의 아버지가 맞는 것일까? 친자 확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시청 민원실에라도 가봐야 하나?)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죄보따리, 짐보따리 들쳐 매고 서계셨다, 모처럼 인자한 웃음을 띠고. (하나님이 드디어 개과천선하신 것일까? 아니면 멀었던 내 눈이 그제야 떠진 것일까?) 그리하여 어쨌든 나는 자유! 이런 하나님을 사랑할까 말까, 가끔 삐치는 시늉을 하면서 하나님과 놀고 있다. 살짝 슬프지만 많이 기쁜 하루가, 어느 순간은 속 터지지만 많이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천국임을 알겠다. 나의 지나간 고통과 지나갈 고통을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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