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몸 질질 끌고 여기까지 왔다.
돌아보니 가파른 고개를 어찌 넘어왔나 싶다.
인생은 고행이라 하더니만
가야 할 길이 또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표제시를 제외한다면 모두 네 권의 시집에서 골랐다.
<아버지> 연작으로 이루어진 첫 시집과
<아버지> 연작의 연장으로 이루어진 서사시집을 보노라니
오랫동안 죽은 혼들과 교통하고 있는 ‘젊은 나’,
시적 형상화보다 의욕만을 앞세운 ‘서툰 나’가 새삼
다시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시선집을 출간하는
것으로 그 뜨거운 시절을 넘어서고자 한다.
악필로 유명한 내가 자필 시선집을 낸다고 하니
사람들이 웃는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하게 된 것이다.
부디, 이 무모한 나를 용서하시라.
어느 날 문득 시를 만났다. 시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스며들었다. 시인이라는 시시한 호칭 하나 부여한 뒤엔 요구도 많아졌다. 자신을 늘 돌아보라 하고, 작고 가난하고 외로운 것들 살뜰히 살피고 챙기며 걸어가라 한다. 단풍 들 나이에 와서야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은 바로 그 시를 만난 일이었음을. 그리하여 새삼 다짐한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지난 팔 년간 쓴 시를 모아 다섯 번째 시집을 낸다. 이 시집을 세상을 먼저 떠난 아버님과 아우에게 바친다. 내가 줄 게 이것뿐이어서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