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경험한 자들과 우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전쟁을 직접 겪으면 깨닫게 되리라는 조언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의 공통점은 자명하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갈 시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만약 전쟁이 없는 시대를 살았더라면,
그레이스 M. 조의 어머니 ‘군자’는 기지촌을 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악명 높은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시골의 양계장에서 닭을 기르며 늙어갔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 수백만 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대서양을 건너는 대이동이 없었다면 스페인 독감의 전파력은 다소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에곤 실레는 조금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고트프리트 벤 역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모두 군의관으로 참전하는 곤혹스러운 삶을 살지 않았으리라. 뉴욕 거리를 헤매던 브레히트는 슬픈 시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난징에 파병되지 않았으므로 하루키의 소설은 덜 우울했을 것이다. 당신과 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저성장과 혐오의 시대, 심각한 기후 변화의 시대에 살아가기를 스스로 선택한 자는 없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말처럼 모든 인간은 외설의 산물이자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자각할수록 그들의 선택과 고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지금 세계는 다시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 가자 지구에서도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만해협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지난해 9·19 군사 협정이 파기됐다. 어느 때보다도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시기에 전쟁을 겪은 자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사이의 믿음을 파괴한다. 무수한 전쟁을 겪은 인류의 역사가 그 증거다. 그래서 전쟁을 논할 때면 자연스럽게 과거로 눈을 돌리게 된다.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 학살과 파괴의 풍경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전쟁을 뉴스와 게임처럼 소비하면서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결핍에 채우고자 이미지의 생산과 소진을 반복한다. 기억과 서사가 데이터로 전락한 시대에 전쟁이라는 비극을 통과한 자들의 삶과 텍스트는 고통을 사유하는 법을 알려준다.
한국전쟁의 참상과 의미, 원인과 전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문학에서도 한국전쟁에 관한 작품들은 이미 ‘분단문학’이라는 영역을 형성할 정도로 많다. 이 책은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을 마주한 외국인들의 상황, 그들의 텍스트에 한국전쟁이 어떤 식으로 기록되었는가를 살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전쟁은 많은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놓았고 그들도 숱한 청년들을 잃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참극은 여러 나라에서 주로 국가적인 프로파간다로 활용되거나 쉽게 잊혔다.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의 상처를 다룬 책은 많지만, 적대국이나 다른 참전국들의 아픔을 응시하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무엇보다도 전쟁의 당사자인 우리가 가장 큰 피해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전이었던 한국전쟁으로 타국의 청년들도 큰 고통을 겪었고, 이 전쟁으로 여러 국가들의 운명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