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딜레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신의 언어와 맞닥뜨리며 시작됐다. 창조와 창작! 신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불가피하게 펼쳐놓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직업의 특성상 인간의 언어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작가가 신의 언어 앞에서 얼마나 헤매었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글을 쓰고 글을 가르치면서,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단어가 필요할까를 생각했다. 그런데 수천 년 동안 시대와 가치 판단이 아무리 변해도, 그 책은 한정된 언어로 그토록 수많은 사람을 구원했으니 어찌 저항할 수 있었으랴.
상상의 칼날 위에서 추는 춤
만져보지 못한, 만져보고 싶은, 곧 만질 수 있으리라고 믿는 머리칼과의 접촉. 아직은 소유되지 않은, 하지만 소유하고 싶은, 앞으로 소유되리라고 믿는 사람과의 입맞춤, 그 상상의 열정.
그리워하는 상대방을 내 마음껏 불러내듯, 지금 이 시간에 나는 누구에게 불려나가 푸른 바람결 같은 부드러운 손길로 애무받고 있을까! 아니면 누구에게 불려나가 미움받고, 저주받고 이미 살해되어 있는 것일까! 상상의 어깨 위에 기대고 있는 나, 혹은 살해되어 부패되어 누워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인가, 아닌가?
첫 만남에서 부끄러움을 타게 만드는 사람 앞에서는 끝없이 부끄러움을 타듯이.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멈출 수 없는 상상의 형벌, 상상의 중독성. 시공간을 초월한 그 숨막히는 만남 뒤에 되돌아온 현실. 그 여전히 변함없는 무감각성. 내가 불러냈건 그가 불러냈건 우리는 같은 상상의 침대에 들어 있었는데 이렇게 타인처럼 시선 한 번 없이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그 따로 나 따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이 끝없는 어긋남, 정말 상상은 무죄이고 현실은 유죄란 말인가?
밀실! 저주하고 사랑하고 위선을 벗어버리는 그 상상의 밀실! 도덕의 잣대를 분지르며 마음껏 놀아나는 정신적 방탕. 제도와 권력이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 강한 반동으로 치솟는 그 욕망의 탄력. 페로의 동화 속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두꺼비와 살모사들처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갈망들의 범벅.
분류하고 규칙을 만들고 서열 세우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제도권 밖. 아웃사이더. 비사회. 하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사회의 시선이 감시하고 있는 그 밀실,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제러미 벤덤의 판옵티콘!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칭 수 있다는 철없는 상상은!
독일에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프랑스에는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영국에는 리차드슨의 <파멜라> 등 세계적인 서간체 작품이 있다. 작가의 개인편지를 문학 장르로 인정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서간체 작품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근대와 현대에 걸쳐 작품 속에 편지가 삽입된 형태이거나, 고백체에 가까운 중단편에 머물러 있어 다음성적(多音聲的) 서간체 장편소설이 없다.
나는 소위 우리나라 최초의 서간체 장편소설을 쓰는 데 몰두했다. '한 바람둥이 남자가 낭송한 가짜 연애 편지에 수많은 여성들이 가슴을 다치고, 결국 그 편지 때문에 일어나는 기묘한 독살사건'에 얽힌 플롯을 수십 편의 편지로 엮어가기 시작했다. 17세기와 21세기의 시간적 경계와 한국과 프랑스라는 공간적 경계를 가로지르며, 나는 자유 분망한 내 세상의 건축에 힘을 쏟아 부었다.
세종대왕 시절에 세 명의 세자빈이 있었다. 경복궁 동쪽의 자선당에서 세자와 차례로 부부의 연을 맺었던 세자빈 김씨, 세자빈 봉씨, 세자빈 권씨이다. 앞의 두 세자빈은 궐에서 쫓겨나 폐빈이 되었고, 세 번째 세자빈은 원손을 낳자마자 하루 만에 숨을 거두었다. 이 소설은 두 번째 폐세자빈 봉씨에 시선을 돌린 것인데, 그가 쫓겨난 진짜 이유를 세종은 “지극히 추잡한 일”이라 하여 교지에 적지도 못하게 했다. 하지만 강직했던 조선시대의 사관들은 이 추잡한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남겨 놓았을 뿐만 아니라, 왕이 교지에 남기지도 못하게 했다는 사실까지 적어 놓고 있다.
세자빈 봉씨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이 소설이 그 “지극히 추잡한 일”에 집착한 것은 아니다. 실제 이 소설은 세자빈 봉씨가 폐위되고도 12년 뒤인 1448년 세종30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세종 30년이면 훈민정음을 완성한지 5년째 되는 해로 세종의 왕후 심씨가 이미 죽었고, 더구나 세 세자빈과 생별 혹은 사별한 세자(나중에 문종)가 더 이상 세자빈을 맞이하려 하지 않아 내명부의 최고 자리들이 비어있던 특이한 상황이다. 세종 30년은 세자빈 권씨가 남겨놓은 원손인 이홍위가 왕세손(나중에 단종)으로 책봉된 해이기도하다. 그래, 이 소설은 궁궐에서 외로운 말년을 보내면서도 끝까지 훈민정음을 붙들고 있었던 세종대왕의 당시 상황을 극적인 상상으로 엮어본 것이다. ('작가의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