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산자락에 깃들인 터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눈 뜨면 지천으로 일렁이는 푸나무들 속에서 바짓단에 풀물을 들이며 자랐습니다.
초록 멀미를 할 만큼 짙푸른 풀섶에서 자라면서도 그러나 그때는 몰랐습니다. 산에 들에 저희들끼리 퍼질러 앉아 질펀하게 피고는 또 그냥 그렇게 저희들끼리 지는 것들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꽃’ 하면 으레 장미거나 백합이거나 카네이션을 떠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회로 나와 살게 되면서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도시문명에 길들여지면서 그리고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또렷이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안의 속뜰에서 그것들이 푸른빛으로 자라고 있음을 말입니다.
그 푸른빛 풀꽃들이 일러주었습니다. 나대지 말 것, 치장하지 말 것, 단칸살림을 하되 단아와 절제를 잃지 말 것, 외롭고 쓸쓸한 자리가 가장 정결한 성소聖所임을 알 것, 다만 그 낮은 자리에서 조촐히, 다만 조촐히 나부낄 것…….
꾀죄죄하니 짧고 옹색한 제 시가 작디작은 풀꽃만큼의 울림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들 풀꽃에게서 배운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낮은 자리를 골라 푸르게 물들이고 그 위에 또 저마다의 빛깔을 골라 예쁘게 수를 놓을 줄 아는 풀꽃의 미학, 풀꽃의 시학을 앞으로도 내내 보듬고 뚜벅뚜벅 걷겠습니다. - 제1회 풀꽃문학상 수상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