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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손택수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0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담양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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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유심 2023.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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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시 1 : 알을 깨는 순간

모든 시인들은 일찍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강력한 향수와 부정적 현실에 대한 자각 속에서 시를 쓴다. 그렇기에 시는 자서전일 수밖에 없으며 고백과 성찰을 축으로 한 성장의 드라마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 문학에 ‘성장 시’는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성장 시’라는 틀로 시를 조명할 때 우리는 시적 성장통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더 정서적이고도 다채롭게 내면을 탐색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해서 ‘성장 시’라 명명되지 않은 시들을 ‘성장통’을 근거로 묶을 생각을 한 것은 세월호의 비극이 있고 난 뒤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시인들이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겪은 아픔이 어떻게 꽃으로 피어나는지를 그린 시들을 모아 청소년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나를 키우는 시 1 : 알을 깨는 순간

모든 시인들은 일찍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강력한 향수와 부정적 현실에 대한 자각 속에서 시를 쓴다. 그렇기에 시는 자서전일 수밖에 없으며 고백과 성찰을 축으로 한 성장의 드라마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 문학에 ‘성장 시’는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성장 시’라는 틀로 시를 조명할 때 우리는 시적 성장통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더 정서적이고도 다채롭게 내면을 탐색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해서 ‘성장 시’라 명명되지 않은 시들을 ‘성장통’을 근거로 묶을 생각을 한 것은 세월호의 비극이 있고 난 뒤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시인들이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겪은 아픔이 어떻게 꽃으로 피어나는지를 그린 시들을 모아 청소년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나를 키우는 시 2 : 날개가 돋는 찰나

모든 시인들은 일찍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강력한 향수와 부정적 현실에 대한 자각 속에서 시를 쓴다. 그렇기에 시는 자서전일 수밖에 없으며 고백과 성찰을 축으로 한 성장의 드라마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 문학에 ‘성장 시’는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성장 시’라는 틀로 시를 조명할 때 우리는 시적 성장통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더 정서적이고도 다채롭게 내면을 탐색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해서 ‘성장 시’라 명명되지 않은 시들을 ‘성장통’을 근거로 묶을 생각을 한 것은 세월호의 비극이 있고 난 뒤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시인들이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겪은 아픔이 어떻게 꽃으로 피어나는지를 그린 시들을 모아 청소년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나를 키우는 시 2 : 날개가 돋는 찰나

모든 시인들은 일찍이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강력한 향수와 부정적 현실에 대한 자각 속에서 시를 쓴다. 그렇기에 시는 자서전일 수밖에 없으며 고백과 성찰을 축으로 한 성장의 드라마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 문학에 ‘성장 시’는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성장 시’라는 틀로 시를 조명할 때 우리는 시적 성장통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더 정서적이고도 다채롭게 내면을 탐색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해서 ‘성장 시’라 명명되지 않은 시들을 ‘성장통’을 근거로 묶을 생각을 한 것은 세월호의 비극이 있고 난 뒤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한때 청소년이었던 시인들이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겪은 아픔이 어떻게 꽃으로 피어나는지를 그린 시들을 모아 청소년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나의 첫 소년

소년 시절 온통 나를 지배하고 있던 건 쓸모없는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가 이런 질문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점점 말수가 줄고 혼자 멍청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아이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통과해야 할 어떤 과도기나 결별해야 할 미성년의 시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청소년기야말로 인생에서 평생 풀어 가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시기가 아닌가.(제발 이때부터 벌써 돈벌이나 성공에 관한 질문에만 빠져 있지 않기를! 전혀 상품 가치가 없더라도 인간이 왜 인간인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강물과 모래와 바람을 돈 대신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있기를!) 청소년기는 그래서 통과해야 할 시기이면서 동시에 지향해야 할 푸름으로 가득 찬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내 안의 소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내 안의 소년에게로 끝없이 귀환하려 한다.

목련 전차

아버지가 그랬다 시란 쓸모없는 짓이라고. 어느날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기왕이면 시작했으니 최선을 다해보라고. 쓸모없는 짓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게 나의 슬픔이고 나를 버티게 한 힘이다.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바다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지만 정작 내가 바다에게 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바다를 떠난 뒤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자선어보>를 읽기 시작했다. 이백여 년 전 지상에서 추방당한 한 유배객의 삶을 추적하면서 나는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딘 자들이 어떻게 역사의 중심부로 귀환하는가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과정 중에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단순한 바다 백과사전이 아니라 실학과 천주교에 바탕한 민본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거위와 점등인의 별에서 스물다섯에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연극판을 기웃거리다가 철 지난 포스터처럼 뜯겨져서 거리를 떠돌아다닌 뒤의 일이었다. 상처투성이였다. 게다가 친구들은 졸업을 준비할 나이였으니 낙오병이라는 자괴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늦은 건 없어. 낙오한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도 있겠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나의 낙천주의는 경쟁을 외면하는 습관에서 온다. 남쪽 바닷가 소도시의 산골 마을에 짐을 푼 나는 무엇보다 만(灣)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교정으로 거느린 캠퍼스가 좋았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면 섬을 품은 바다를 산들이 어깨를 겯고 호수처럼 아늑하게 품어주었다. 그 바다가 바로 임화의 시 「현해탄」의 바다였다. 바다가 캠퍼스라면 소라와 게들, 말미잘과 교우 관계를 맺으며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병들어 남행한 임화처럼 나는 치자향이 좋던 가포와 장지연 열사의 유택이 있던 현동과 덕동 바닷가를 떠돌며 자취 생활을 하였다. 일부러 도시 외곽을 선택해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불편을 복으로 삼을 줄 아는 은자(隱者)의 후예라도 된 것처럼 은근한 긍지가 나를 제법 오똑하게 했다. 강의를 마치면 학교에서 야간 수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근로장학생’이라는 좀 멋쩍은 딱지가 붙은 나의 첫 임지는 대학원 건물이었다. 청소를 하시던 아주머니들이 퇴근을 하고 나면 아주머니들의 쉼터가 초소로 바뀌었다. 책상 하나와 목제 침상 그리고 낡은 갓등이 있는 오두막에서 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습작을 하였다. 혼자서 하는 습작에 진척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의 습작 방법이란 그저 더 많은 책을 읽고 좋은 시집을 만나면 필사해보는 것뿐이었다. 오른쪽 검지에 펜혹이 생길 때까지 필사를 하다 보면 뻐근해오는 어깨에 말의 근육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서로 길이가 다른 투수의 팔처럼 나는 글쓰기 신체로 몸을 바꾸는 변신의 고통을 달게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의 수더분한 선임들이었던 정문의 수위 아저씨들은 야경주독하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던지 출근과 동시에 수위실에 틀어박혀 소설책이나 파고 있는 나의 해태를 매번 눈감아주었다. 뜻밖에 내가 근무를 제대로 서나 안 서나 꼬장꼬장한 잣대를 들고 삼엄하게 감시한 선임은 따로 있었다. 학교 연못에 터를 잡은 그는 쉴 틈 없이 순찰을 돌았다. 도르래 소리 같기도 하고 마치 녹슨 철문을 열었다 닫을 때처럼 쇳소리가 나는 그의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는 진폭이 꽤나 커서 그가 바로 이 대학의 터줏대감임을 능히 알게 하였다. 하긴, 한밤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소리가 나면 득달같이 그 요란한 호각을 불며 출동하였으니 내 수위 업무의 태반은 그가 본 것이나 다름없다. 가을밤 창문 밖을 온몸으로 하얗게 프레시를 비추며 걷는 그를 보면 적이 안심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심지어 깊은 수면에 빠져 있을 때조차 하얗게 깨어 있을 줄 알았다. 경비를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나 해야 할까. 그 경이로운 수위 선임은 거위였다. 노을이 지면 나는 뒤뚱거리는 거위와 함께 저물어가는 교정에 가로등을 켰다. 멀리 섬들에도 접선 신호처럼 불이 들어오고 하늘에도 개밥바라기 별이 켜지면 나의 대학도 어느새 점등인의 별이 되었다. 새벽이면 서리에 으슬으슬 입술을 깨물고 떨고 있는 별들에게 이제 질 때가 되었다는 신호로 스위치를 내리기 위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때도 거위는 나와 함께였다. 가로등 스위치 오르내리는 소리를 따라 천체가 회전하는 것 같았을 때, 늦깎이 대학시절의 열패도, 실패로 얼룩진 습작기의 낭패와 가난도 조금은 견딜 만한 것으로 바뀌어갔을 것이다. 수위실에서 나는 짬이 날 때면 대학원생 선배들의 구두를 닦았다. 어느 명절 앞날이었다. 고향 내려갈 준비로 다들 어수선할 때, 식사를 마치고 수위실에 들른 같은 과 조교 선배의 깨어진 구두코가 보기 참 딱했다. 상처에 연고라도 바르듯이 코에 까무스름 구두약을 바르기 시작한 것이 마칠 때쯤 해서는 구두 전체가 유리처럼 반짝거렸다. 아마 내게 세탁 기술이라도 있었다면 구겨진 옷주름을 수평선처럼 좍 펴주고 싶었으리라. 그 이후부터 대학원생들의 구두가 수위실을 ‘구두 병원’으로 만들었다. 소문이 퍼져서 행정실 직원들의 구두까지 순번을 기다리는 일이 일어났다. 생수병을 오려 만든 내 저금통엔 슬며시 놓고 간 지폐들이 모여 한 학기 장학금이 되었다. 어느날 수위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가는 길에 가끔씩 부딪치던 행정실 직원이었다. 그는 오래 망설이던 말을 겨우 꺼내듯이 수줍게 점심을 같이 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그는 몇 년간 지켜보았는데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동생 같아서 그저 밥 한끼 사주고 싶었노라고 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내의 안경 너머에서 오는 그 깊은 눈빛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 눈빛 속엔 당시 내가 한창 빠져 있던 백석의 「고향」에서 보았던 온기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타향에서 혼자 앓아누워 있던 시인이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고 노래한 의원의 그 온기 말이다. 나 역시 그의 눈빛에서 떠나온 부모와 고향의 흙냄새를 마주하였으리라.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밥을 대접받았다. 그 ‘밥심’으로 시를 쓰고 책을 만들며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물론, 밤새 습작을 하던 나 대신 순찰을 돌던 그 극성스럽던 거위의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 2020년 봄 동탄 돌모루에서

선천성 그리움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습니다. 병가를 내볼까, 궁리를 해보지만 그도 녹녹치 않습니다. 주말을 기다려보지만 주말은 주말대로 이런 저런 소비를 하느라 녹초가 되기 십상입니다. 일뿐만 아니라 휴식으로부터도 소외된 삶을 꾸역꾸역 이어가는 게 당대 일상인들의 풍경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시를 읽습니다. 시는 일상의 시공간대에서 자신을 떼어내어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들여다보는 눈을 되찾아줍니다. 어떤 대상을 그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지극하게 바라보면 그 대상이 놀랍게도 들여다보는 자기 자신을 보여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지를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면, 시 읽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여행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행을 하는 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듯 시와의 만남을 통해 세계는 비로소 새로워집니다. 사물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그를 둘러싼 세계와 그간 잊고 지낸 ‘내’가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시를 읽는 시간은 하나의 사물에 시선을 비끄러맨 채 숨결을 고르게 다독이는 시간을 갖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붐비는 자신의 내부로 맑은 못물 같은 침묵이 흘러들어 오게 하는 시간 그 자체가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연못에 찌를 드리운 강태공처럼 나뭇잎 한 장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 제 마음도 따라 흔들리고,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의 여백에 넋을 잃고 있을 때 제 안에도 맑게 비질한 절 마당 같은 여백 한 장이 간신히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모인 시들이 당신을 향해 떠나는 여행으로의 초대장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엮은이의 말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혼자다 싶을 때 그 많은 잎들 다 어디 가고 혼자 떨고 있나 싶을 때 나무는 본다 비로소 공중으로 뻗어간 뼈를 하늘의 엽맥을 광대무변한 이 잎은 아무도 떼어갈 수 없다 2022년 10월

호랑이 발자국

그래도 나는 시의 힘을 믿는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 보잘것 없는 한 조각이나마 어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잘 숨어 있다가 무심코 지나가는 이의 굳은살을 한번쯤 찔러주길, 거울조각 주위의 어둠을 갑작스럽게 위험한 활기 속으로 몰아가주길 감히 바라보는 것이다. 시가 있는 곳은 언제나 환부였으니, 환부의 즐거움으로 환하게 욱신거리고 있었으니. 내 이름자 한가운데 집을 지어주신 강쟁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을 추억하며.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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