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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박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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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그가 내린 곳>

그가 내린 곳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첫 문장을 여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한번 열린 문장들은 막힘없이 술술 써졌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지척의 광장에서 울려오는 함성 소리에 아랑곳없이 혼자 사무실에 남아 소설을 썼던 시절이었다. 문단에 이름을 올리고 나서는 접하는 모든 것이 소설감으로 보였다. 흔히들 말하는 ‘그분이 오신 날’이 종종 찾아와, 그런 날은 밤새워 소설 한 편을 뚝딱 써내곤 했다. 원고 청탁이 없어도 제법 성실하게 소설을 썼다. 그 시절에는 소설가를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 올리는 연출가라고 생각했다. 첫 소설집을 냈을 때, 소설이 너무 쉽게 잘 읽히는 거 아닌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읽은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내 소설이 어렵다니, 참 이해가 안 되는군. 지인들을 만나면 나는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내 소설이 쉽지는 않다고 했다. 드문드문 소설을 발표하고 언제부턴가 나는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다. 어떤 것은 내 스스로 ‘중지’라는 판결을 내렸고, 어떤 것은 첫 단락을 넘기지 못했으며, 또 다른 것은 분량은 넘치는데 하나로 꿰지 못했다. 소설을 쓰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여러 이유들을 생각해보았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눈치를 보고 있는 거지. 이제야 소설이 뭔지 알게 된 거야 등등 자타가 내리는 흔한 위로 같은 결론을 곱씹는 동안 세월은 어김없이 지나갔다. 두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겨우, 간신히, 다행히,라는 수식을 붙여야 마땅할 소설집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건 첫 소설집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분에 넘치는 걱정을 한다. 누구든 책을 내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하지만, 정작 작가가 책을 내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현실이라는 말에 손이 멈춘다. 어쩌면 삭제 키를 눌러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이 소설집에 대한 변명이, 우리는 어떻게든 연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이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그나마 덜 부끄러울 것 같다. 소설집을 내주신 문지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중지한 원고를 꺼내보아야겠다. 2017년 2월 박혜상

새들이 서 있다

2006년 봄 이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팔자 늘어진 것’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이었다. 더 들어줄 수가 없어 울컥 심정을 토로하면 엄살이 심하다고 쥐어박히곤 했다. 책이 나온다니 그동안의 억울함을 조금 벗은 것도 같다. 부족하고, 넘치고, 서툰 이야기들이다. 염치 불구하고 첫 작품집이라는 것에 기대어 부족한 대로 묶었다. 분명 다음 작품들은 나아질 것이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왜 네 글에는 사랑이 없니? 그 말에, 요즘 누가 사랑 따위를 쓰냐고 대꾸했는데, 문득 ‘사랑 따위’가 내 글의 문제이자 해결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짝들이 보고 싶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들을 성실하게 들어주던 단짝들. 그들은 마치 지들끼리 순번이라도 매겨놓은 듯, 차례차례 내 곁에서 사라졌다. 내 이야기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 조는 아직 곁에 남아 있다. 그 까닭을 듣고 싶다. 이제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다. 고맙다. 남편. 신인문학상에 뽑아주시고, 지면을 주시고, 책을 내주신 문학과지성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글쓰기와 평생 마주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를 숙인다. 십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느라 출발이 늦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뗀다. 견딘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온 시간은 고작 4년도 되지 않는다. 무엇을 견디었을까. 생각해보니 부끄럽게도 내가 견뎌낸 것은 쓰지 않은 게으름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세월이 남아 있다. 조금 더 힘을 내보겠다. 여태껏 만지작거리던 열정과 허무, 양면의 동전을 버리고 성실만으로 채워진 동전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어두어야겠다. 어지간해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적어도 변한 척이라도 해봐야겠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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