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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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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백 년간의 프로젝트 (1351-1450)>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군맹평상' 세종의 정치를 말하고 쓴다는 것은 어쩌면 장님 코끼리 그리기일 수도 있겠다. 여러 명의 장님들이 거대한 코끼리를 제한된 시간 동안 만져보고 그려보면 어떻게 될까. 긴 코를 만져본 사람은 길다란 대롱을 그릴 것이며, 단단한 상아를 만진 사람은 길쭉한 뿔을 그릴 것이다. 우람한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커다란 통나무를, 평평한 배를 만진 사람은 널따란 벽면을 그리고, 커다란 귀를 만진 사람은 세모모양의 개떡을 하나 그릴지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사건과 다양한 이야기들, 그리고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실록 속의 복합구조'를 하나하나 탐색하면서 그려본 나의 세종 그림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세종학 개론

머리말 1. “요임금과 순임금의 지혜는 먼저 해야 할 일[先務]을 미리 한 것에 있다. 오늘날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겠는가?” 재위 초반인 1426년에 세종이 전설적인 최고 지도자 요순(堯舜)의 일하는 법을 과거 시험 문제로 출제하면서 한 질문이다. 그에 따르면 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려는 일이 ‘급무(急務)’인가 ‘선무(先務)’인가를 깊이 헤아리는 자세이고, ‘마땅히 힘써야 할 일’ 즉 선무를 빨리할 줄 아는 실행력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대한민국으로 가져와 보면 어떨까? 지금 대한민국 지도자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선무는 무엇일까?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도산 안창호가 유길준의 뜻을 계승, “사(士)를 양성하는 단체라는 뜻”으로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면서 한 말이다. 안창호가 청년 문제를 민족의 선무로 보고 인재 교육을 중시한 것은 기본적으로 나이 많은 기성 인물을 변화시키는 일이 지극히 어렵다고 보았고, 또 “지금 나무를 심지 않으면 나중에 결실 거두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창호는 ‘20세기의 세종’이라고 할 만큼 세종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청년을 끔찍이 아낀 점이다. 세종이 즉위한 지 4개월 만에(1418년 12월) 집현전을 설치하고, 젊은 인재들과 국가의 미래를 의논하며 준비한 것처럼, 안창호는 평양 대성 학교를 열고(1907년) 흥사단을 창설하였다(1913년). “정치란 국민 각자가 저마다의 밥벌이를 가능하게 만들고, 유쾌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생각한 안창호는 이상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곳을 생생지락(生生之樂), 즉 세종이 말한 ‘일터가 즐거운 나라’로 가꿔 나갈 것을 강조했다. 세종과 안창호가 비슷한 또 다른 점은 ‘준비’를 매우 강조한 점이다. 세종은 즉위 초의 상왕 체제, 즉 부왕 태종이 군사권과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 집현전을 세우고 성균관을 개혁하여 인재를 기르고 미래를 준비했다. 집현전 학사들에게 사가독서제라는 독서휴가제를 실시해 능력을 배양케 한 것은 유명하다. 성균관 유생들의 숙소를 온돌 시설로 바꾸고 목욕탕을 만들게 하는가 하면, 의사를 상근하게 하는 등 복지 시설을 대폭 확충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인재는 정치를 잘하게 하는 본원이요, 학교는 사람을 만드는 터전”인 만큼 나라에서 인재를 흥기시키고 양성하는[興起作成]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안창호 역시 ‘인물 없음을 한 하지 말고, 먼저 인물 되기에 힘쓰라’고 강조한 리더였다. 그는 청년들에게 헛된 꿈을 쫓아다니기보다는 자기 실력을 쌓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3·1운동을 겪으면서 곧 독립이 될 것처럼 흥분하여 봉기를 주장하던 “지도자들이 다 낙심하여 물러앉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안창호는 “이것은 무계획하게 동(動)하던 자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기초와 재목이 없이 집부터 지으려 하고, 자본도 없이 영업 광고부터 내려 하던 자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2. 이 책을 저술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인물이 세종과 안창호였다. 두 분만큼 청년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들에게 희망 주는 일을 실천에 옮긴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선무가 청년 일자리 해결이라는 데는 정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그런데 세종과 안창호가 강조한 것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그래서 먼저 해야 할 일[先務]은 그 청년들을 유능한 인재로 준비시키는 일이다. 일터에 나아갔을 때 제대로 맡은 임무를 수행해 낼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인성과 창의력을 갖춘 인재로 키워내는 일이 더 급하고도 중요하다. 필자가 2014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여주대학교로 직장을 옮긴 것은 정태경 당시 여주대학교 총장님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우리 대학은 ‘자유 시민 육성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데, 세종이야말로 백성들에게 문자와 시간을 주어서 ‘자유로운’ 개개인으로 일어서게 하려던 분이 아니었느냐?”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실제로 훈민정음 창제나 해시계 물시계 프로젝트에서 보듯이 세종은 문자 권력과 시간 권력을 백성들에게 주어서 스스로 일어서도록 하려 했던 분이었다. “세종 영릉에서 최(最)단거리인 우리 대학에서 600여 년을 앞서간 세종의 뜻을 제대로 공부시키고 졸업시켜 청년들에게도 세종 리더십이 도움 된다는 것을 보여 주자.”는 정 총장님의 열정 어린 말씀이 나를 감동시켰다. 여주라는 경기도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인구 10만여 명의 소도시에서 세종 이야기가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550여 년간 세종 영릉을 지키며 살아온 여주 시민들이 ‘세종 덕분에 지역이 잘 산다.’고 말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2014년 가을 학기부터 2019년 1학기까지 1만여 명의 여주대학교 학생들이 ‘세종 리더십’ 과목을 수강했다. 수업은 세종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세종 스토리텔링)과, 한글 디자인 실습, 세종 유적지 답사 등으로 이뤄져 있다. 청년들이 장차 큰 인재로 자라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되는 인성을 함양하는 데 수업의 초점을 맞췄다. 즉 세종과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를 존중하면서도 겸손하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성실하게 자기가 맡은 일을 완수해 냈는지(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말하는 용기를 가졌는지를 수많은 사례를 통해 배운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졸업 후 직장 생활하면서 세종을 생각하며 더 잘 참아내고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연락을 들을 때다. S 호텔 입사 면접 때, “대학 때 들은 인상적인 과목을 얘기해 보라.”는 물음에 “세종대왕 이야기를 말한 것이 도움 됐습니다.”라는 푸드과 학생 소식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그 졸업생은 지금도 S 호텔 주방 풍경을 SNS로 실시간으로 보내주곤 한다.). 수업 시간에 세종 이야기 2~3개 들려주고, 학생들에게 나와서 배운 얘기를 말해 보라고 하는 게 우리의 수업 방식인데, 학생들은 보통 15개 정도 이야기를 줄줄 외워서, 친구나 가족들에게 들려주는 연습을 한 학기 내내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사이에 우리들 속에 잠재해 있는 세종 리더십, 즉 ‘내 안의 세종(Sejong-in-us)’을 발견하게 하는 게 우리 수업의 목표이다. 3. 이 책은 필자의 《길라잡이 세종 리더십》이라는 강의 교재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수업 진행을 위해서 세종 이야기를 개조식으로 정리한 그 책은 보기에 편한 점도 있었지만, 교수의 설명 없이 독자 스스로 읽어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세종학의 의미’나 ‘세종의 인성’ 부분 등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이번에 새로 넣었다. 책 제목을 ‘세종학 개론’이라 이름 붙인 것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대학이나 기업 또는 사회에서 여러 차원에서 세종을 배우는데-가령 세종평생학습 네트워크(ifsejong.com)에서는 ‘세종학 입문’ → ‘세종스토리텔러 과정’ → ‘세종 리더십 마스터 양성 과정’ 등을 체계적으로 학습한다.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을 종합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교재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었다. ‘일러두기’에서 밝혔듯이, 이 책의 내용은 그동안 필자가 집필한 《세종이라면》이나 《세종의 적솔력》을 비롯해, 국어학이나 역사학 등 각계 전문가들의 연구 성과를 집약한 것이다. 그래야 세종학 ‘개론’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특징의 하나는 많은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관심 갖고 있는 세종과 오늘날 기업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각 장의 말미에 넣은 점이다. 세종 이야기가 6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살아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토론을 통해 발견하게 하기 위함이다. 끝으로 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청년들, 특히 젊은 직장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내용을 추리고, 기업 사례를 뽑아 주신 홍성근 대표님과 송재혁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세종교원양성과정을 거쳐 각자의 전공(문학, 디자인, 성악, 도자기, 피아노, 건축, 경영학 등)과 세종을 연결해서 강의를 해 주시는 여주대학교 ‘세종 교수’님들께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교수와 직원들 사이를 매개하고 언행의 준거로서 세종이 있다는 것이 대학 사회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실감하곤 한다. 무엇보다 세종 리더십을 전교생이 배울 수 있도록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리고, 또 ‘추천사’까지 써 주신 정태경 부총장님께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무더위 속에서도 마다하지 않고 신속히 도움을 주신 세종평생학습 네트워크의 한상기 부원장님과 김진희 담당, 그리고 한국형리더십개발원의 강주희 책임연구원께도 머리 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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