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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손홍규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5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

직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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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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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시대

언젠가부터 대수롭지 않은 믿음 하나를 지니게 되었다. 소설이란, 작은 이야기(小說)이듯이 또한 소설(小雪)이기도 하다는 걸. 한 겹 홑이불로 잔잔하게 내려도 세상 모두를 덮어주는 눈이 폭설(暴雪)보다 격정적이라는 걸. 가난한 집 시렁 위의 홑이불처럼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꺼내어 읽을 수 있는 게 소설이라는 걸. 그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게다. ㅡ그들에겐 타고난 능력이 있었고 지금도 그 능력을 후대에 물려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으면서도 악을 행하지 않았고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않으면서도 거짓을 볼 줄 알았다. ㅡ나는 한 걸음씩 늦게 눈길 위 그들의 발자국을 쫓아가는 소설가일 뿐이다.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 태초부터 주어진 질문을 어루만지듯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뭐라 말 못할 그 길 가야하고 가야만 할 길 어쩌면 끝내 갈 수 없는 길. 그 길에서 다시 넘어지고 서성거리겠지. 그런 날들이었고 그런 날들이겠지. 가만히 앉아 태초부터 주어진 질문에 대답하려 애쓰다 참으로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환대했음을 깨닫는다. 어쩌자고 살아왔는가 싶은데 어쩌자고 이리들 환대하시는가. 소설가라는 현실에 절망하고 의심하고 후회하면서도 이 길을 걸어가겠지. 소설을 깊이 사랑하는 자는 소설을 깊이 의심하고 증오하는 자임을 매번 깨달으면서. 그러겠지. 그래야 하겠지. 그럴 수밖에 없겠지. 고마운 이들이 너무 많아 가슴에 담아두련다. 미안한 이들도 너무 많아 가슴에 새겨두련다. 아짐찮다는 말,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 말. 유언처럼 아껴둔 이 말. - 수상 소감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드문드문 선 가로등 아래 놓인 목탄화 같은 골목을 걸었다.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괴물은 숲속에 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숲속에는 네가 잃어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이 있어. 잃어버린 걸 찾고 싶으면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 해. 그렇게 대답하고 나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아이는 무얼 잃어버렸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인 듯 아빠는 무얼 잃어버렸냐고 물었다. 나는 무얼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어서 숲으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봉섭이 가라사대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는 이유는, 더는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평생 손에서 일을 놓아보지 못한 부모님 역시 더는 일하지 않아도 좋을 날이 올 것이라 믿었으리라. 때로는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노예로 태어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처럼 외롭고 쓸쓸하여 눈을 감고 돌아누울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만큼 견디지 않는다면, 삶을 어찌 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누추한 삶을 선사한 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스스로 아름다워지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

사람의 신화

마술과 기적보다, 마술 같고 기적 같은 현실! 앞에서 마술과 기적을 조금 흉내냈을 뿐이라는 게 이 소설들의 마지막 주석이다. 이 흉내내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나는 모른다. 현실이 여전히 마술 같고 기적 같다면, 나는 그 마술의 배후와 기적의 이면을 찾는 데 여전히 골몰할 게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역사가 된 경우와는 달리 역사가 되고 있는 사람이나 사연을 다루었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간절함이 귀중했기에 나는 이런 생각에 의지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게 역사라면 우리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기억하는 건 소설이라고. 소설은 기억이다. 아름답고 비참했던 사람들이 어떤 세계를 꿈꾸었는지를 기억하는 가장 쓸쓸한 형식이다. 잠이 들면 그들은 내게 예언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이 소설은 가까스로 기억해 낸 이야기다.

이슬람 정육점

그리스와 터키에 가본 적이 없으나 매일처럼 그곳을 방문했다. 내게 그리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라이며 터키는 아지즈 네신의 나라이다.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그들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모국어로 씌어진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번역되기 이전 날것의 그리스어와 터키어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에 감탄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한숨을 쉬고 웃음을 터뜨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그리스와 터키를 알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들이 한 번쯤은 이곳을 방문했으리라는 사실을. 그들처럼 웃고 떠들고 눈물 흘리던 사람들이 다녀갔음을.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그들도 이곳에서 아파했음을. 하산과 야모스라는 이름은 전사자 명단에서 발견했다. 아니, 그 이름들이 나를 선택했다. 그들의 나라에서 가장 흔한 이름들이 가장 특별한 방식으로 내게 말해주었다.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통과의례 운운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저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할 일이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을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그냥 우리를 통과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역시 그 무엇도 무심하게 통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다. 통과의례란 없다. 비밀은 바로 여기에.

청년의사 장기려

소설을 쓰다 밤의 기슭에 이르면, 나는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곤 했다. 머릿속에는 오직 예수뿐인 장기려를 떠올리면, 그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예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느라 예수를 닮아버린 사내, 자신이 이미 예수를 닮은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격정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내. 대개의 종교인들이 숭배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것들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버린 이 사내를 기억한다는 건 어쩌면 하나의 고통이다. 그렇지만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통이기도 하다.

톰은 톰과 잤다

한 편의 소설을 쓰는 일은 눈을 뜬 채 지독한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해서 아직 동살이 잡히지 않은 새벽녘 나는 참 많이도 홀로 쓸쓸했다. 삶은 늘 그 시각에 머문 듯했고 소설은 언제나 멸망 직전이었다. 전멸하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였으나 무엇과 그토록 싸워왔는지 알 수가 없다. 고단하다. 사연이 담긴 말들을 주우며 살아온 지 여러 해 되었건만 돌아보면 거기에 내 사연은 없는 듯하다. 내 삶은 사연이 될 만큼 무르익지도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랜 세월 헛짚었다. 잃어버린 낱말은 추문이 되었고 간직해서는 안 될 추문을 무척이나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손 안에 남은 몇 개의 낱말들만이 내 문장이다. 몸을 둥글게 만 채 살아남은 기억들만이 내 글이다. 기억이 사라지는 날 나 또한 기꺼이 사라지겠다. 그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아무쪼록 어서 오시길. 「투명인간」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은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으나 이미 시인이다.「내가 잠든 사이」는 세 해 잇따라 구안와사를 앓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은 그해 여름을 잊을 수 없는 이들에게 바친다. 그이들은 충분히 아름다웠다.「불멸의 형식」「무한히 겹쳐진 미로」「증오의 기원」「톰은 톰과 잤다」는 그 시절을 살았던 문청들이 흔히 겪어야 했던 신화 같은 현실을 각색한 것이다.「얼굴 없는 세계」는 용산참사를 지켜보며 무력했던 나날들을 견디기 위해 썼다.「화요일의 강」은 선배 소설가들에 대한 오마주다. 소설집을 묶으려니 앞으로도 계속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맴돈다. 언제는 안 그랬던가. 앞으로도 고단하겠다. 책을 묶어주신 문학과지성사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해설을 써주신 김형중 선생에게도 감사드린다. 2012년 6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파르티잔 극장

사람으로 존재하길 두려워하는 사람이 간절히 바란다 해도 사람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변신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서글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변신이 무한한 가능성을 뜻하는 동시에 변신하지 않을 권리를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해서입니다. (…) 그들의 실패가 완전한 실패도 아니고 최종적인 실패도 아니듯이 당신의 실패가 당신만의 실패가 아닌 유서 깊은 실패이며 우리가 앞으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실패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무력하고 불행한 사랑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습니다. 전위도 없이 후위도 없이 홀로 일어섰다 홀로 멸망할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 그러므로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무수한 문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문장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으나 실패할 게 분명하며 언젠가 새로운 이야기가 될 당신의 순결한 반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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