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엔 여러 감정이 들끓는데 그중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죄책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동안 나를 지배한 감정 중에서 죄책감이 가장 강력했다는 뜻이다. 사랑이 나쁜 짓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랑이라는 행위 자체가 어떤 결함을 포함하고 있고 그 결함을 체험하는 것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이다. 사랑 대신 삶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도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애인에게도 사는 동안 널 ‘가장’ 사랑했다는 말을 해줄 수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가장 사랑했던 순간들은 있었겠다. 그리고 순간에 대한 인정을 고백하는 이 말이 끝끝내 혼잣말로 남았으면 하는 내 마음만은 얼추 진심에 가까울 것이다.
오래전에 나는 죽음의 얼굴과 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죽음은 내게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한 단어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중 한 단어만이라도 알아들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내 삶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이 지금과는 아주 달랐을 겁니다. 죽음은 내 방에 머물면서, 내 침대맡에 서서 며칠을 지내다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서로를 보았을까요. 죽음은 내가 자신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까요. 아니면 그저 나한테 들키고야 만 것일까요. 그 때문인지, 나는 자주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궁금해하며 살았습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그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한 사람의 사인이 심장마비라면, 사는 동안 그를 죽도록 괴롭혔던 게 오로지 심장뿐이었을까? 우리의 사인은 우리의 삶입니다. 세상이 아프면 우리의 삶도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