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말 길이 꽉 막혀 버린 19세기의 전제주의적 러시아에서 러시아 문학, 특히 소설은 당대 러시아의 사회·정치적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연단이었다. 당대의 가혹한 현실에 대해서 발언하면서, 그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고자 했던 러시아의 소설은 자연스럽게 비판적인 정치적 음조를 띠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소설과 정치, 작가와 현실 권력은 늘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러시아 작가들의 운명이 거의 모두 비극적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시대의 형상과 중압'을 성실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던 뚜르게네프의 소설에는 19세기 러시아의 핵심적인 정치적 이념이나 정치적 환경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의미에서 뚜르게네프의 소설은 '정치소설'로 이름될 수 있고, 당대 러시아의 사회·정치적 연대기로 읽힐 수 있다.
나는 온갖 이념과 정치적, 문학적 편가르기가 판을 쳤던 당시의 러시아 상황에서 민감한 '사회·정치적인 문제가 찌꺼기 없이 완전히 예술로 승화되어 있는 뚜르게네프의 소설들이 어떻게 이념 비평의 희생이 되고 있는가에 주목하면서 뚜르게네프 주인공들의 전형성의 문제와 주인공들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분석하여 이른바 '뚜르게네프 리얼리즘의 승리'가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가를 밝혀 보고자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