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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현기영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1년, 대한민국 제주

직업:소설가

가족:아내가 시인 양정자

최근작
2023년 9월 <[큰글자도서] 제주도우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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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나의 절망은 과연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을까? 너무 과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운동권은 나를 향해 모든 역량을 모아 싸워야 할 때 희망을 버리고 있다고, 배신이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패배를 사랑하고 절망을 은밀히 즐기는 마조히스트라고 매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을 말하면서 낙관론을 펼치려면 나 같은 비관주의자의 목소리도 조금은 경청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비관론은 적어도 우리의 타격대상이 얼마나 완강한 철벽인가를 일깨워준다.

마지막 테우리

오래간만에 창작집을 내면서, 나는 기쁜 만큼이나 부끄러운 심정이 절실하다. 나이 오십줄에 들어서 얻은 만득(晩得)의 자식인지라 기쁜 마음이 각별하면서도, 생산이 부실했던 지난날의 나태가 새삼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87년 6월항쟁 무렵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7년 세월 동안 내가 생산해낸 것이라곤 장편 하나 외에 이 창작집에 실린 내용이 전부이고 보니 나의 무능과 나태가 이다지도 심한가, 스스로 아연해질 뿐이다. 취옹(醉翁)의 뜻이 어찌 취하는 데에만 있었을까만, 글쓰기를 이처럼 등한히했으니, 아무래도 나의 음주벽은 도를 지나쳤나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난 80년대처럼 쟁점 많아 술맛 좋고 술벗 좋던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폭정은 폭음을 유발해냈으니 술이 아니라면 나같이 심약한 자가 어떻게 폭정 속에서 그나마라도 심폐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는, 어쭙잖은 글쓰기보다는 격정의 음주행위가 곧 싸움이라고 엉뚱한 자기합리화가 생기기도 했다. 싸움과 이념이 술과 잘 어울리던 시절, 나의 짧은 생애에서 그 십여년의 격정시대는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 틀림없다. 그 시절, 취기 도도하여 더욱 아름답게 빛나던 얼굴의 글벗들이여, 부디 그 시대정신으로 여전히 건재하기를! 우리를 서로 매개해준 그 독한 소주도 우리가 오래 사귄 벗이고, 그래서 차마 저버릴 수 없는 바에야, 수리술술 달래면서 사귀어야지, 다시는 문필행위가 음주행위에 압도당하는 일은 없어야 되지 않겠는가. (1994년 6월)

바다와 술잔

그래서 집을 짓거나 소설을 쓰거나 간에 완성된 다음에는 반드시 쓰다 남은 여분의 것, 혹은 잘려나간 자투리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것들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나중에 작지만 아름답고 유용한 다른 물건들로 가공되어진다. 소설가인 나의 경우에 그것들은 더러 다음 소설의 소재로 쓰여지기도 하고, 더러는 에세이 형식으로 가공되어지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 중 절반쯤이 그렇게 해서 쓰여진 것이다.

변방에 우짖는 새

초판 30년 만에 이 소설의 개정판을 얻게 된 지금, 나의 기쁨은 자못 크다. 서슬 푸른 군부독재의 억압 속에서 태어났던 이 소설은 그 때문에 일부 독자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기도 했다. 80년대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변혁의 갈망으로 몸부림친 역사의 시대였다. 소설집 『순이삼촌』의 내용 때문에 군부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했던 나는 4?3을 더이상 정면으로 다루기가 두려워서 공동체의 보다 더 먼 과거인 이재수란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의 결과가 이 소설이다. 이것은 제주 민중과 천주교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 충돌 사건을 다룬 소설이어서 불에 덴 자 부지깽이만 봐도 놀란다고, 이 소설 발표로 또다시 필화를 입지 않을까, 나는 적이 걱정이 되었었다. 혹시 교인들이 반발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단 한번의 항의도 받지 않았다. 항의는커녕, 오히려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국교회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하는 교인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명동성당의 마당극패가 이 소설의 주인공 이재수를 메시아로 삼아 마당극을 만들겠다면서 나에게 조언을 구해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2000년의 대희년을 맞은 한국 교회가 심포지엄을 열어 그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였다. 그 뜻깊은 자리에 이 어리석은 필자를 토론자로 초대까지 해주었으니, 얼마나 크나큰 너그러움이었던가! 1987년의 6월, 민중항쟁의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이 소설이 연극화되어 무대에 올랐을 때, 문공부(지금의 문화부)가 죽창의 날카로운 끝을 자르고 이재수의 이마에 두른 붉은 머리띠를 떼라고 압력을 가했던 일, 6월항쟁이 끝난 직후 그 연극이 재공연되었을 때, 대통령 후보 노태우 씨가 재야 예술계에 추파를 던지면서 극장을 찾아왔던 일도 생각난다. 이 소설은 1999년에 「이재수의 난」이란 이름의 영화로 각색되어 상연되기도 했지만, 관객의 호응은 기대한 만큼 높지 않았다. 그때 이미 역사의 시대가 저물어버린 탓이었을 것이다. 이제 역사는 민중 삶의 현장에서 뒷전으로 멀리 밀려나고 말았다. ‘역사의 종언’을 예언했던 후꾸야마는 축복으로서의 종언을 말했지만, 과연 그러할까? 역사는 넓은 의미에서 인류가 추구해온 보편적 진리로서의 역사를 포함한다고 하는데, 역사가 실종된 우리의 삶은 영혼은 없고 육체만 있는 삶은 아닌지? 역사가 실종되어버린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판독할 수 없다. 개정판 발간으로 나에게 큰 기쁨을 준 창비에 깊이 감사한다. 5월의 싱그러운 신록을 바라보면서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노경에 접어들면서 나는 이전과는 좀 다른 삶을 꿈꾸게 되었다. 노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다. 이전 것들에 너무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흔쾌히 포기해버리는 것, 욕망의 크기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포기하는 대신 얻는 것은 자유이다. 그 자유가 내 몸과 정신을 정갈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전보다 오히려 젊어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얼굴은 주름 잡혔지만 심장만은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 그러한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다.

순이삼촌

5년 전 등단하던 해에 얻어걸린 십이지장궤양은 나에게 퍽 상징적인 뜻이 있다. 공복 때마다 고양이발톱으로 위벽을 살살 긁어대는 듯한 통증이 오는데, 나는 항상 이 공복상태가 두렵다. 하다못해 물배라도 채워야 그럭저럭 견뎌낸다. 이 공복에 대한 공포는 창작작업에도 나타난다. 글쓰고 있지 않은 시간은 나에게 굶주린 공복상태처럼 느껴져 공연히 괴롭고 안절부절 스스로를 주체 못한다. 써야지, 써야지 하고 항상 맘속으로 벼르면서도 글 한줄 쓰기가 어렵다. 아니, 글쓰는 것 자체가 두렵다. 백지에 대한 공포. 쓰는 게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 군색한 핑계를 둘러대며 허구한 날 술 마시기가 일쑤다. 자연히 술은 궤양을 헐어뜨려 공복의 통증을 더욱 심하게 만들 뿐이다. 이렇게 백지에 대한 공포랄지, 결백증이랄지, 아니면 어쭙잖은 핑계랄지 하는 것 때문에 그동안 쓴 글이 20편도 못 넘는 과작이 되어버렸다. 작품의 질은 둘째치고 우선 작품수가 너무 적은 데 낯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제 첫 창작집의 출간을 계기로 좀더 분발하여야 하겠다는 결심이다. 노력부족으로 잠깐 명멸하다가 스러져버리는 미완의 작가로 전락하지는 말아야 하겠다. 그리고 아직 미지수인 나를 격려하는 뜻에서 첫 창작집의 출간을 선선히 맡아준 창작과비평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1979년 10월 24일)

지상에 숟가락 하나

이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 나는 무척 설레었고 행복했습니다. 잊혀진 내 유년의 기억을 좇아 찾아가는 그 시간 여행에서 나는 지난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살아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를 키운 것은 부모님만이 아닙니다. 제주의 자연, 유년의 친구들, 중학 시절의 독서, 이런 것들이 나를 성장시키는데 큰 몫을 했고, 내 문학을 결정지은 토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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