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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곽재식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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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곽재식의 한국사 괴물 수사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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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신라 공주 해적전

일본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장보고의 전성기가 끝날 무렵 신라에서 온 해적들 때문에 일본인들이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가 몇차례 나온다. 훗날 일본에서 온 해적들을 흔히 왜구라고 불렀던 것처럼, 역으로 신라에서 온 이 해적들을 일본에서는 삼한 지역, 즉 한반도 지역에서 온 해적들이라고 해서 ‘한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이 기록을 조사하면서 신라 말을 배경으로 한 해적들에 얽힌 모험담이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다행히 한번도 마감을 어기는 일 없이 무사히 연재를 마치고 지금 이렇게 단행본 출간을 앞두며 마지막 문장을 쓰게 되다니, 처음 시작하던 불안한 마음을 돌이켜보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유쾌하게 써서 홀가분하게 마무리한 소설인 만큼, 읽고 계신 독자께도 즐거운 이야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0년 청권사에서

[큰글자도서] 채널을 돌리다가

이 책은 SF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SF는 내가 읽고 쓰기 좋아하는 분야이고, 경력도 조금은 쌓아 놓은 분야이다. 마침 요즘은 한국에서 SF가 주목을 받고 있는지라, SF 영화를 통해 SF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다는 발상도 괜찮게 들리는 듯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너무 적적하거나 이상하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만큼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 때도 있고, 뭘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가 싶어 막막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이 책이 옆에서 같이 영화를 봐주는 친구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가장 무서운 예언 사건

이 책의 전체 내용과 결말은 지금 나에게도 미래의 일이며, 나는 도대체 그게 어떤 이야기일지 현재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책을 집어 들고 있는 여러분 입장에서는 그 내용이 이다음 페이지부터 이어지는 남은 부분에 이미 완성되어 붙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은 지금부터 열심히 남은 글을 써서 마무리 지어야만 하는 내 입장에서는 무척 부럽다.

ㅁㅇㅇㅅ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나 싶은 날, 숨을 한번 돌리기에는 이런 이야기도 괜찮지 않나. 인생을 살다 보면, 오늘은 왜 이렇게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는 거지,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참고로 나는 거의 매일이 그렇다. 일상생활의 작은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고, 동시에 한번 걱정도 한 적 없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일이 어긋나서 골칫거리가 된다. 그러면서 마음속 한편에 갖고 있던 큰 근심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꾸준히 노력하면 잘 될지도 모른다고 품고 있던 꿈에 다가가고 있는 느낌도 아니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아침에 면도를 하다가 베여서 턱에 상처가 났는데, 그러고 나서 출근길 버스를 타려고 카드를 대었더니 카드가 잘 인식이 되지 않아 갑자기 천 원짜리 현금을 구하려고 부산을 떨게 된다. 뛰어다니다 보니 문득 어깻죽지가 아파 오는 것이 느껴지고, 나는 어깨뼈가 좋지 않아 언젠가 큰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몸에 큰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걱정이 휘몰아친다. 그런데 그런 날이라고 해서 내가 최근에 낸 소설책이 잘 팔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에는 상황이 더 좋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2012년쯤에는 더욱 사정이 안 좋았다. 그러고 보니, 2012년이면 벌써 거의 10년 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도 답답한 느낌을 더 묵직하게 만든다. 2012년 무렵, 나는 거의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작가였다. 그런 사람을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보통 신춘문예 같은 행사에서 당선이 되거나 무슨 공모전에서 입상하여 상금을 받으면 등단을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여 그 이후로는 계속 작가라고 불러주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적도 없었다. 내가 기성 문단의 질서를 거부했기 때문에 원고를 투고하지 않았다고 하면 나름대로 멋이라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공모전이나 신춘문예에 열심히 응모했지만 떨어졌다. 다 떨어졌다. 그런 공모전의 심사평을 읽어보면 “누구누구의 소설도 좋았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지만 아쉽게도 이러저러해서 당선작으로는 다른 소설을 뽑았다” 같은 언급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런 평에 언급되어 본 적도 없다. 그냥 전망이 없는 작가였다. 그나마 어찌어찌 가끔 여러 작가의 단편 소설들을 묶어서 책을 낸다는 기획이 있으면, 가끔 그런 기획에 끼어 10명의 작가가 단편 한 편씩을 서서 내는 책에 한 토막으로 참여하는 정도가 작가로 활동하며 돈을 버는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그나마 2012년 무렵에는 그런 일조차 거진 끊어졌다. 나는 너무 답답해서, 자선 단체 같은 곳에서 내는 책자에 “재능기부로 글을 써주실 분을 찾습니다”라는 공고들을 찾아서 공짜로라도 좋으니 내 글을 실어주면 좋겠다고 연락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나에게 회신을 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뭔가가 무척 쓸모가 없다고 할 때 쓰는 한국어 표현 중에 “거저 줘도 안 가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그 무렵 내 신세였다. 얼마나 절필을 하고 싶었겠는가? 그때에도 세상에 SNS라는 것은 있었다. 나는 SNS에 “재능이란 무엇일까. 나는 재능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문단의 높은 벽과 예술로 살기 어려운 자본주의 사회의 차가움이 내 의지의 숨통을 갑갑하게 잠식한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글을 써 올리면서 “이제 저는 더 이상은 소설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끝을 맺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러면, 인터넷에서 친한 사람들 서너 명 정도는 “아, 곽재식님 글 그래도 재미있었는데. 절필하지 마시죠.” 뭐 이런 글을 올리지 않을까, 그러면 위로가 될까, 어떤 기분일까, 뭐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껏 작가로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때 그런 절필 선언을 올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지금도 누가 나에게 작가로 사는 삶이나 글쓰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때 내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절필한다”고 괜히 SNS 같은 곳에서 거창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글을 쓰기 싫으면 그냥 슬며시 안 쓰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글 쓰는 것을 멈추었다가도, 만약 자기가 정말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 글을 쓰면 된다. 어느 날 글 쓰고 싶다는 의지가 갑자기 자발적으로 생기는 그런 좋은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려야 한다. 그런데 만약 쓸데없이 괜히 몇 마디 동정이나 위로를 받고 싶어서 “절필합니다” 같은 글을 그에 앞서 여기저기 올리고 다녔다면, 좋은 때를 만나도 다시 글쓰기 민망해진다. 그러면 글쓰기가 곧 귀찮아지고 싫어진다. 소중한 의욕은 흩어진다. 나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절필한다고 했다가 혹시라도 먼 미래에 또 소설 쓰고 싶어지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만약을 대비해서 겉으로는 말을 안 하고, 대신 그냥 슬며시 소설을 더 이상 안 쓰고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고 불과 며칠이 지나자 그래도 소설을 쓰는 게 더 재미있고 보람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보는 사람도 없고 돈도 안 되는 소설을 써서 어쩐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그냥 생각나는 이야기를 생각나는 그대로 거침없이 바로 소설로 확 써서 부담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단편란에 올려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사연으로 2012년 7월 처음 올리기 시작한 것이 이미영 사장과 김양식 이사라는 사람이 우주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돈 되는 일을 하려고 한다는 소설 시리즈였다. 그러니까, 이 소설 시리즈는 소설 쓰기 싫었을 때, 그래도 뭐라도 써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헤매다가, 그러니 뭐든 써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된 이야기다. 이때만 해도, 한국 SF는 뭐가 문제다, 한국 SF는 이렇게 가야 한다, 무슨 SF가 진정한 SF다 등등의 말을 길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좀 많았다. 한국 SF는 하드 SF가 없다거나, 한국 SF는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소프트함이 부족하다거나, 한국 SF는 아이디어만 던질 뿐 문학적인 치장이 없다거나, 한국 SF에는 과학적인 통찰력이 없다거나, 한국 SF에는 S는 있지만 F는 없다거나, 한국 SF에는 S는 없고 F만 있다거나, 한국 SF에는 한국이 없다거나, 한국 SF는 너무 한국적이기만 하다거나,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나름대로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였겠지만, 나는 그냥 그런 것 저런 것 다 무시하고 가끔 정말 소설 쓰기 싫을 때는, 생각나는 대로 확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마는 SF를 써볼 수도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독 미영과 양식 이야기 시리즈에는 황당한 내용이 많고, 내용이 흘러가는 방향도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처음부터 계획 없이 쓰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소설의 질도 들쭉날쭉하다. 내가 봐도 한심해 보이는 소설도 여러 편이다. 전체적으로 무슨 거대한 구상이 있는 시리즈도 아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편이나, 세 번째 편쯤 되어서 공개하려고 했던, “두 사람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세웠던 목적”이라는 소재는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소설들을 쓰면서, 나는 계속 소설 쓰는 것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여전히 책도 별로 안 팔리는 작가이고 여태껏 무슨 대단한 평가를 받는 작가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작가인데, 왜냐면, 나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이 안 팔리고 글을 잘 못 쓰는 작가 인생의 늪지대를 헤치고 나아갈 때, 내가 던져서 어디인가 걸리면 그래도 붙잡고 한 발씩 나갈 수 있던 밧줄 같았던 소설들이 바로 미영과 양식이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소설들은 그중에서도 읽을 만하고 괜찮아 보이는 것들을 골라 엮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이야기 속에서 당장 회사가 망할 것 같아서 겁에 질리고 힘이 빠지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우주 끝까지 날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러다 보면, 두 사람은 신비로운 행성을 구경하며 놀라운 모험을 하게 될 때도 있고, 가끔의 삶의 의미와 보람에 대해 돌아보는 짧은 순간을 갖기도 한다.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나 싶은 날, 숨을 한번 돌리기에는 그런 이야기도 괜찮지 않나 싶다. 짧게 써서 얼른 끝내야지 하고 쓴 작가의 말이 괜히 구구하게 길어졌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그런 느낌으로 쓴 글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이 책의 소설들을 돌아본다면, 또 색다른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2021년, 교보문고 앞 햄버거 가게에서

사설탐정사의 밤

작가들은 필생의 과업을 저마다 하나씩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는 것 같다면, 자주 떠올리지만 실행에는 잘 옮기지 않게 되는 집필 계획을 거의 대부분 갖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내가 언젠가 이런 소설은 한번 써보겠다, 그런 것 써보면 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싶은 구상을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뜻이다. ‘역사상 참 놀라운 사건이었던 그 사건을 소재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인간 군상을 다룬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면 참 재미있을 텐데’라든가, ‘그때 가봤던 그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기막힌 사랑 이야기를 써보면 멋지겠지’라든가 하는 생각이 흔한 예시다. 일전에 글쓰기 방법론을 다룬 산문집 나는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북스피어, 2019)이라는 책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때도 했던 이야기인데 그런 필생의 과업 같은 구상일수록 의외로 실천에 옮기게 되기란 쉽지 않다. 한번 꼭 써보고 싶은 소설이라고 마음속에서 긴 시간 품고 있었던 이야기인 만큼, 멋지게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훌륭한 글을 긴 분량으로 담아내려면 많은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그만한 여유가 있는 때는 잘 다가오지 않는다. 또 작가라 해도 항상 훌륭한 글, 아주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욕심에 걸맞은 준비를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언젠가 시일이 지난 후에, 여유가 충분할 때 쓰자고 미루게 되기 쉽다.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자면 이렇게 설명해볼 수도 있다. 이런 부류의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이야기일수록 잠깐잠깐 상상 속의 훌륭한 소설을 구상하는 것이 너무 달콤하다. 그에 비해 실제로 글을 써나가는 것은 피곤한 작업이다. 공상으로 ‘이런 글 써보면 좋겠지’ 하는 시간의 즐거움과 실제 글 쓰는 어려움의 차이가 너무 크기에, 공상만 하게 되고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가 나는 그런 거창한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영영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멀리 보면 그런 날이 올 가능성이야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시기일까? 그 역시 의심스러운 문제다. 필생의 과업, 꼭 써보고 싶은 소설일수록, 너무 꿈만 꾸지 말고 당장 한번 써 보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그게 답이 아닌가 싶었다. 고민해볼수록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작가 생활을 몇 년 하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지혜를 얻었다. 완벽한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완벽한 글을 쓸 수는 없다. 일단 그때그때 최선을 다 해서 쓰고, 좀 마음에 안 들면 다음번에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완벽의 경지를 애초에 노리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필생의 과업이라고 해서 꼭 엄청난 결심을 하면서 오래오래 때를 기다리며 그런 글을 쓰게 될 날을 상상만 할 이유가 없다. 일단 지금 한번 열심히 써보고, 나중에 시간 나면 더 좋게 또 써보면 될 일이다. 나에게도 이렇게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었던 ‘언젠가 한번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해적 모험담이었다. 특히 나는 한국의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해적 모험담을 쓰면 개성이 있을 거라는 공상을 오랫동안 해왔다. 결국 나는 해적 소설을 몇 편 썼는데, 단편으로, 장편으로, 인터넷 오디오 소설로 세 가지 정도를 완성했다. 모두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몇몇 대목은 내가 보기에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1940년대 흑백 누아르 영화 분위기를 담아낸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1940년대, 1950년대에 나온 옛날 흑백영화 중에 범죄를 다룬 이야기들을 보면 그 시기에 유행했던 탐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들이 여럿 있다. 특히 하드보일드 탐정이라고 하는, 도시의 뒷골목을 쓸쓸히 헤매다가 가끔 범죄자들과 껄렁한 싸움에 엮이기도 하는데, 그런 싸움에서도 두려움보다는 피곤함을 먼저 느끼는 탐정들이 나오는 이야기다. 이런 영화에서는 고독하고 과묵한 탐정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람이 또 이상한 비유법으로 가득한 독백, 내레이션을 읊조리는 장면을 무척 많이 보여준다. 나는 이 점이 또 굉장히 운치 있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도시의 밤거리 풍경이 대조가 강한 흑백 화면으로 잡혀 있고, 묘한 재즈 트럼펫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탐정 역할을 맡은 주연배우가 내레이션으로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는 까닭은 사랑에 빠진 멍청이들이 내는 우는 소리가 밤마다 노래처럼 거리에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깔린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배경을 한국으로 하여 독자에게 가깝게 와 닿을 수 있도록 펼쳐보되, 실제 이런 이야기들이 유행했던 1940년대라는 시대는 그대로 살리면 개성이 강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940년대 후반, 광복 후 대한민국 제1공화국 정부가 생긴 뒤에 혼란스러웠던 여러 가지 도시 풍경을 범죄소설 소재와 결합하면 인상적이면서도 진지한 생각을 같이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구상을 나는 몇 년 동안이나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을까? 몇 년이나 실제로 글 쓰는 것을 미뤄왔을까? 다행히 실행에 옮길 기회가 그리 늦지 않게 찾아왔다. 2015년에 『미스테리아』라는 미스터리 전문 잡지가 창간되면서, 나에게 소설 원고를 청탁해온 것이다. 나는 어떤 추리소설을 쓸까, 생각해보다가 이때다 싶었다. 더는 미루지 않고 1940년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는 옛날 흑 백영화 시대의 필름누아르, 하드보일드 탐정 이야기라는 구성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쓴 추리소설이 『미스테리아』 2호에 실린 「범인이 탐정을 수사하다」라는 단편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2호 이후로, 소설, 기획 기사, 서평, 옛날 실화 사건에 관한 이야기 등등 지금까지 한 호도 빼놓지 않고 『미스테리아』에 꾸준히 글을 기고하고 있다. 나는 흔히 SF 작가로 소개되는 편이고, 나 역시 SF 단편, 장편을 가장 많이 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잡지, 문예지 지면에 청탁을 받고 실린 소설 중에서는 이상하게 다른 어떤 장르보다 추리소설을 쓴 것이 가장 많다. 나 자신도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지금도 추리를 다룬 영화를 즐겨 보는지라, 돌아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사설탐정사의 밤』이 잡지에 실렸던 내 추리소설 단편을 전부 모아놓은 것이다. 필생의 과업으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커다란 꿈이 있는데, 거기에 한 작가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조금씩 도전해보았는지, 그 애쓴 기록이 남아 있는 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유일하게 빠져 있는 추리 단편은 1940년대 대한민국이 배경인 탐정소설이 아니라 현대를 배경으로 쓴, 탐정이 나오지 않는 소설 한 편이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또 비슷한 소설끼리 묶어낼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책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3년 아산에서

신라 공주 해적전

일본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장보고의 전성기가 끝날 무렵 신라에서 온 해적들 때문에 일본인들이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가 몇차례 나온다. 훗날 일본에서 온 해적들을 흔히 왜구라고 불렀던 것처럼, 역으로 신라에서 온 이 해적들을 일본에서는 삼한 지역, 즉 한반도 지역에서 온 해적들이라고 해서 ‘한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이 기록을 조사하면서 신라 말을 배경으로 한 해적들에 얽힌 모험담이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다행히 한번도 마감을 어기는 일 없이 무사히 연재를 마치고 지금 이렇게 단행본 출간을 앞두며 마지막 문장을 쓰게 되다니, 처음 시작하던 불안한 마음을 돌이켜보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유쾌하게 써서 홀가분하게 마무리한 소설인 만큼, 읽고 계신 독자께도 즐거운 이야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0년 청권사에서

역적전

이번 이야기는 2011년부터 드문드문 써오고 있는 광개토왕 무렵을 다룬 여러 편의 단편, 중편에 이어서 쓴 것이다. 2011년 6월에 <패려稗麗>라는 제목으로 고구려군에게 공격당하는 거란족의 이야기를 쓴 것이 그 시작이었는데, 그 뒤에 일곱 편의 이야기를 썼고, 이번 이야기는 그 여덟 번째가 되는 셈이다. 전체가 열 편 정도가 되도록 이야기들을 쓰는 것이 첫 번째 단편을 쓸 때의 계획이었는데, 이번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내용이 하나의 장편소설이 될 만큼 풍부해져서, 한 권의 책으로 따로 펴내 본 것이다. 이번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보다 긴 내용인 만큼, 가능한 한 쉽고 간단한 말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쓰되, 내용의 형식이나 문체에는 예스러운 재미가 어느 정도 있도록 『금오신화』나 『옥루몽』과 같은 조선 시대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로 꾸며 보려고 했다.

우리의 신호가 닿지 않는 곳으로

★ 오우무아무아는 실제로 2017년에 태양계 바깥에서 발견된 물체다. 도대체 정말로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돌덩이였을까? 아니면 외계인이 보낸 커다란 로켓이었을까?

은하행성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

소설의 내용은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맡아 하는 조그마한 회사의 직원들이 이상한 행성들을 하나둘 방문하며 모험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회사의 사장과 직원인 이미영과 김양식인데, 나는 그 전부터 두 사람이 겪는 모험담을 SF 단편으로 이곳저곳에 실었던 적이 있었다. 다채로운 소재를 다루는 잡지 속 소설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울릴 것 같아서, 나는 『독서평설』의 소설 시리즈에도 두 사람을 그대로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렇게 해서, 1년 만에 12달의 연재 분량에 맞춰 12개의 행성을 탐험하는 ‘12행성 모험기’가 완성되었다.

지상 최대의 내기

이 책은 내가 시중에 출간하는 여섯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벌써 출간한 책이 이렇게 쌓이게 되었나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어 돌아보는 가운데, 이 책에 실린 소설을 쓰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본다.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 가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다가 소설 쓸 단서를 얻는다.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라는 책을 쓸 때 나는 어떻게 음악, 그림, 사진을 소설로 만들 수 있는지 내 나름대로 쓰는 수법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은 실제로 그렇게 소설을 쓴 사례다. 지금도 종종 글쓰기에 대한 강연이나 강의를 하게 되면 이 소설을 예시로 설명할 때가 있다. 한편 이 단편은 ‘웹진 거울’ 2018년 3월호를 통해 공개했는데 지금까지 ‘웹진 거울’에 공개한 내 소설 중에 단시간 내에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소설이기도 하다. ‘웹진 거울’ 서버가 몇 번씩 접속불능이 될 정도였다. 이 시기가 ‘웹진 거울’ 서버가 조금 불안할 때이기는 했지만. 덕택에 《과학기술의 일상사》라는 책에서 과학과 SF의 관계를 따져 보는 대목에 예시로 이 소설이 인용되기도 했다. <지상 최대의 내기> 2018년 6월호 ‘웹진 거울’을 통해 공개한 단편이다. 나는 몇 년 전까지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한동안 그런 이야기를 드물게 쓴 듯싶어서 오래간만에 다시 예전에 자주 쓰던 소설처럼 소설을 하나 써보겠다고 작심을 해서 쓴 소설이다. 그래서 딱히 뭘 쓰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없이 시작해서 어떻게든 이야기와 갈등을 짜내서 소설을 엮고 끼워 맞춰 가면서 돌탑을 쌓거나 공사를 하듯이 쓴 소설이다. 그런데도 일단 써나가기 시작하니 점차 소설을 쓰는 흥이 붙어서 초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훨씬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고, 결과도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요즘 소설을 쓰기 힘들거나 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래도 마감을 맞추려면 당장 뭐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쓰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로봇 살 돈 모으기> VOD 서비스의 무료 영화만 찾아다니다 보면, 이걸 볼까, 저걸 볼까, 저건 나중에 한번은 볼 테니까 즐겨찾기 표시만 해 놓자, 그런 식으로 메뉴만 한참 고르다가 한 30분 시간을 보내는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모자라서 결국 아무 영화도 못 보고 메뉴만 보다 말게 되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을 언젠가 소설로 써보자고 메모해 둔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소재를 내 일상생활과는 많이 다른 배경에서 한번 풀어 본 것이 이 소설이다. 나는 《토끼의 아리아》에 실린 <로봇복지법 위반>과 같이 비슷비슷한 배경에서 로봇을 소재로 하는 소설을 몇 편 썼다. “로봇 시리즈”라고 할 만한 것인데, 이 소설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웹진 거울’ 2018년 11월호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체육대회 묵시록> 소행성 충돌에 대한 짧은 특집 소설을 써 달라는 잡지 《과학동아》의 의뢰를 받아 쓴 소설이다. 갑작스레 뭘 써야 할지 쓸 것이 생각나지 않아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의 속편으로 썼는데, 전편의 주인공이었던 김 박사가 직장을 옮겨 공공기관 쪽 연구소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잡지에 실리면서 삽화도 같이 실렸기 때문에, 김 박사와 그 동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도 볼 수 있게 되어 더 재미있었다. <다람쥐전자 SF팀의 대리와 팀장> 첩보 소설 같은 것을 보다 보면 어떤 나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24시간 그 나라 텔레비전 보는 것이 직업인 정부 요원이 나온다. 어느 나라 대사관에서 잠깐 일한 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실제로도 그 비슷한 직업이 있기는 있는 것 같다. 나는 예전에 그런 직업을 갖고 일하면서도 공무원 호봉을 그대로 받고 연금도 쌓인다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SF물로 옮겨 본 것이 이 단편이다. 빠르게 써 나가느라 생각나는 대로 SF 작가들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그러다 보니 평소 훌륭한 글을 쓰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김이환 작가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의 이름을 빠뜨린 점은 무척 아쉽다. ‘웹진 거울’ 2019년 1월호를 통해 공개되었다. <치카우> 잡지 《과학동아》에서 2010년대 중반 몇 년 동안 꼬박꼬박 SF 단편을 실었던 시기가 있었다. 원고료를 꼬박꼬박 주는 SF 매체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대단히 고마운 기획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작년인가부터 그 지면이 없어진 것이 무척 아쉽다. 과학과 관련된 매체가 있다면 꼭 잡지가 아니라도 어디서든 월간 SF 지면 하나 정도는 만들면 좋지 않겠나 지금도 나는 항상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작가들 중에는 비교적 늦게 섭외된 편이었는데, 이 단편도 다른 작가의 소설들과 함께 《과학동아》에 실린 것이다. <2백세 시대 대응을 위한 8차 산업혁명 기술 기반 컷 앤 세이브 시스템 개발 제안서> SF 단편이나 공포 단편 중에는 일기장이나 보고서 형태로 되어 있는 소설이 종종 있다. SF 단편 중에는 약간 웃긴 풍자물 느낌의 논문 형태로 된 소설도 없지는 않다. 나도 그런 소설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저런 소설을 보다 보니 실제로 현장에서 과학 연구자들이 쓰는 여러 가지 글 중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웃고 웃기는 것은 제안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안서 형태로 되어 있는 SF 단편을 언젠가는 한번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한번 해 본 것이 이 소설이다. ‘웹진 거울’ 2018년 8월호를 통해 공개되었다. <종속선언서> ‘웹진 거울’ 2017년 11월호를 통해 공개되었다. 소설이 아니라 각본이나 희곡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런 만큼 TV 단막극이나 단편 영화로 꾸몄을 때 어떻게 연출하면 좋을지 나름대로 상상도 하고 있었던 이야기다. 인공지능 컴퓨터 쪽에 해당하는 목소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 연기하게 하고 사람 얼굴 대신 컴퓨터 모습이나 컴퓨터 화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한다. 썩 괜찮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면 실제 컴퓨터로 합성한 목소리에 배역을 맡기면 더욱 재밌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 쪽에 해당하는 배역은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대사 하나씩만 맡아서 수십 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면서 맡는 것으로 한다. 제작비를 많이 쓸 수 있다면 모든 대사를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로 해도 재밌을 것 같다. <납량특집 프로그램의 공포> ‘웹진 거울’ 2017년 7월호를 통해 공개된 소설이다. 나는 트위터에서 《140자 소설》이라는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트위터의 트윗 하나 안에서 소설 같은 이야기 하나를 해 보려고 하는 계정이다. 반응이 괜찮아 일전에 《140자 소설》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따로 출간된 적도 있었다. 나는 가끔 이 《140자 소설》의 내용 중 하나를 단편 소설이나 심지어 장편 소설로 고쳐 쓸 때가 있는데, <납량특집 프로그램의 공포>도 거기에 해당한다. <멧돼지의 어깨 두드리기> 창비의 문예지인 《문학3》에서 청탁을 받아서 쓴 소설이다. 《문학3》는 SF가 무엇인지 소개한다는 느낌의 소설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정통 SF 느낌이 많이 나는 소설을 써보려고 했다. 이 단편에서 이야기의 초반과 중반은 마음에 들고, 멧돼지가 탈출해서 내달리는 절정 장면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말은 너무 아쉽다. 읽을 때마다 결말을 뭔가 다른 걸로 바꾸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학3》에는 이 소설을 읽은 어느 학교 고등학생들이 감상을 말하며 토론한 내용이 같이 실려 있는데, 이 학생들이 말한 내용 중의 하나를 어떻게 살려서 결말로 꾸며 넣으면 차라리 더 상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중에 이 소설을 다시 살펴보면서 정말로 그 비슷하게 고쳐볼까 고민도 했는데, 내 생각이 아닌 생각을 끼워 넣자니 그것도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처음 쓴 그대로 두었다. <종말 안내문> ‘웹진 거울’ 2017년 10월호를 통해 공개된 소설이다. 나는 이미영이라는 사장과 김양식이라는 직원 두 사람이 회사 하나를 창업해서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모험을 한다는 단편 소설 시리즈를 쓴 적이 있다. 독자들로부터 대충 “미영과 양식 시리즈” 정도로 불리고 있는 시리즈인데, 지금도 한 해에 한두 편씩은 꼬박꼬박 써 나가고 있다. <종말 안내문>은 미영과 양식 시리즈에 한두 번 언급된 악당들의 발상을 한번 거칠 것 없이 끝까지 밀어붙여서 써본 소설이다. 중반 정도 쓸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잘해서 미영과 양식 시리즈로 엮어 보려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이야기를 밀고 나가다 보니 다른 이야기랑 엮을 여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별도의 단편으로 남겨 두었다.

지상 최대의 내기 (동네책방 에디션)

이 책은 내가 시중에 출간하는 여섯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벌써 출간한 책이 이렇게 쌓이게 되었나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어 돌아보는 가운데, 이 책에 실린 소설을 쓰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본다.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 가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다가 소설 쓸 단서를 얻는다.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라는 책을 쓸 때 나는 어떻게 음악, 그림, 사진을 소설로 만들 수 있는지 내 나름대로 쓰는 수법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은 실제로 그렇게 소설을 쓴 사례다. 지금도 종종 글쓰기에 대한 강연이나 강의를 하게 되면 이 소설을 예시로 설명할 때가 있다. 한편 이 단편은 ‘웹진 거울’ 2018년 3월호를 통해 공개했는데 지금까지 ‘웹진 거울’에 공개한 내 소설 중에 단시간 내에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소설이기도 하다. ‘웹진 거울’ 서버가 몇 번씩 접속불능이 될 정도였다. 이 시기가 ‘웹진 거울’ 서버가 조금 불안할 때이기는 했지만. 덕택에 《과학기술의 일상사》라는 책에서 과학과 SF의 관계를 따져 보는 대목에 예시로 이 소설이 인용되기도 했다. <지상 최대의 내기> 2018년 6월호 ‘웹진 거울’을 통해 공개한 단편이다. 나는 몇 년 전까지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한동안 그런 이야기를 드물게 쓴 듯싶어서 오래간만에 다시 예전에 자주 쓰던 소설처럼 소설을 하나 써보겠다고 작심을 해서 쓴 소설이다. 그래서 딱히 뭘 쓰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없이 시작해서 어떻게든 이야기와 갈등을 짜내서 소설을 엮고 끼워 맞춰 가면서 돌탑을 쌓거나 공사를 하듯이 쓴 소설이다. 그런데도 일단 써나가기 시작하니 점차 소설을 쓰는 흥이 붙어서 초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훨씬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고, 결과도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요즘 소설을 쓰기 힘들거나 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래도 마감을 맞추려면 당장 뭐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소설을 쓰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로봇 살 돈 모으기> VOD 서비스의 무료 영화만 찾아다니다 보면, 이걸 볼까, 저걸 볼까, 저건 나중에 한번은 볼 테니까 즐겨찾기 표시만 해 놓자, 그런 식으로 메뉴만 한참 고르다가 한 30분 시간을 보내는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모자라서 결국 아무 영화도 못 보고 메뉴만 보다 말게 되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을 언젠가 소설로 써보자고 메모해 둔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소재를 내 일상생활과는 많이 다른 배경에서 한번 풀어 본 것이 이 소설이다. 나는 《토끼의 아리아》에 실린 <로봇복지법 위반>과 같이 비슷비슷한 배경에서 로봇을 소재로 하는 소설을 몇 편 썼다. “로봇 시리즈”라고 할 만한 것인데, 이 소설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웹진 거울’ 2018년 11월호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체육대회 묵시록> 소행성 충돌에 대한 짧은 특집 소설을 써 달라는 잡지 《과학동아》의 의뢰를 받아 쓴 소설이다. 갑작스레 뭘 써야 할지 쓸 것이 생각나지 않아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의 속편으로 썼는데, 전편의 주인공이었던 김 박사가 직장을 옮겨 공공기관 쪽 연구소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잡지에 실리면서 삽화도 같이 실렸기 때문에, 김 박사와 그 동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도 볼 수 있게 되어 더 재미있었다. <다람쥐전자 SF팀의 대리와 팀장> 첩보 소설 같은 것을 보다 보면 어떤 나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24시간 그 나라 텔레비전 보는 것이 직업인 정부 요원이 나온다. 어느 나라 대사관에서 잠깐 일한 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실제로도 그 비슷한 직업이 있기는 있는 것 같다. 나는 예전에 그런 직업을 갖고 일하면서도 공무원 호봉을 그대로 받고 연금도 쌓인다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SF물로 옮겨 본 것이 이 단편이다. 빠르게 써 나가느라 생각나는 대로 SF 작가들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그러다 보니 평소 훌륭한 글을 쓰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던 김이환 작가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의 이름을 빠뜨린 점은 무척 아쉽다. ‘웹진 거울’ 2019년 1월호를 통해 공개되었다. <치카우> 잡지 《과학동아》에서 2010년대 중반 몇 년 동안 꼬박꼬박 SF 단편을 실었던 시기가 있었다. 원고료를 꼬박꼬박 주는 SF 매체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대단히 고마운 기획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작년인가부터 그 지면이 없어진 것이 무척 아쉽다. 과학과 관련된 매체가 있다면 꼭 잡지가 아니라도 어디서든 월간 SF 지면 하나 정도는 만들면 좋지 않겠나 지금도 나는 항상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작가들 중에는 비교적 늦게 섭외된 편이었는데, 이 단편도 다른 작가의 소설들과 함께 《과학동아》에 실린 것이다. <2백세 시대 대응을 위한 8차 산업혁명 기술 기반 컷 앤 세이브 시스템 개발 제안서> SF 단편이나 공포 단편 중에는 일기장이나 보고서 형태로 되어 있는 소설이 종종 있다. SF 단편 중에는 약간 웃긴 풍자물 느낌의 논문 형태로 된 소설도 없지는 않다. 나도 그런 소설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저런 소설을 보다 보니 실제로 현장에서 과학 연구자들이 쓰는 여러 가지 글 중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웃고 웃기는 것은 제안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안서 형태로 되어 있는 SF 단편을 언젠가는 한번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한번 해 본 것이 이 소설이다. ‘웹진 거울’ 2018년 8월호를 통해 공개되었다. <종속선언서> ‘웹진 거울’ 2017년 11월호를 통해 공개되었다. 소설이 아니라 각본이나 희곡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런 만큼 TV 단막극이나 단편 영화로 꾸몄을 때 어떻게 연출하면 좋을지 나름대로 상상도 하고 있었던 이야기다. 인공지능 컴퓨터 쪽에 해당하는 목소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 연기하게 하고 사람 얼굴 대신 컴퓨터 모습이나 컴퓨터 화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한다. 썩 괜찮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면 실제 컴퓨터로 합성한 목소리에 배역을 맡기면 더욱 재밌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 쪽에 해당하는 배역은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대사 하나씩만 맡아서 수십 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면서 맡는 것으로 한다. 제작비를 많이 쓸 수 있다면 모든 대사를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로 해도 재밌을 것 같다. <납량특집 프로그램의 공포> ‘웹진 거울’ 2017년 7월호를 통해 공개된 소설이다. 나는 트위터에서 《140자 소설》이라는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트위터의 트윗 하나 안에서 소설 같은 이야기 하나를 해 보려고 하는 계정이다. 반응이 괜찮아 일전에 《140자 소설》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따로 출간된 적도 있었다. 나는 가끔 이 《140자 소설》의 내용 중 하나를 단편 소설이나 심지어 장편 소설로 고쳐 쓸 때가 있는데, <납량특집 프로그램의 공포>도 거기에 해당한다. <멧돼지의 어깨 두드리기> 창비의 문예지인 《문학3》에서 청탁을 받아서 쓴 소설이다. 《문학3》는 SF가 무엇인지 소개한다는 느낌의 소설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정통 SF 느낌이 많이 나는 소설을 써보려고 했다. 이 단편에서 이야기의 초반과 중반은 마음에 들고, 멧돼지가 탈출해서 내달리는 절정 장면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말은 너무 아쉽다. 읽을 때마다 결말을 뭔가 다른 걸로 바꾸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학3》에는 이 소설을 읽은 어느 학교 고등학생들이 감상을 말하며 토론한 내용이 같이 실려 있는데, 이 학생들이 말한 내용 중의 하나를 어떻게 살려서 결말로 꾸며 넣으면 차라리 더 상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중에 이 소설을 다시 살펴보면서 정말로 그 비슷하게 고쳐볼까 고민도 했는데, 내 생각이 아닌 생각을 끼워 넣자니 그것도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처음 쓴 그대로 두었다. <종말 안내문> ‘웹진 거울’ 2017년 10월호를 통해 공개된 소설이다. 나는 이미영이라는 사장과 김양식이라는 직원 두 사람이 회사 하나를 창업해서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모험을 한다는 단편 소설 시리즈를 쓴 적이 있다. 독자들로부터 대충 “미영과 양식 시리즈” 정도로 불리고 있는 시리즈인데, 지금도 한 해에 한두 편씩은 꼬박꼬박 써 나가고 있다. <종말 안내문>은 미영과 양식 시리즈에 한두 번 언급된 악당들의 발상을 한번 거칠 것 없이 끝까지 밀어붙여서 써본 소설이다. 중반 정도 쓸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잘해서 미영과 양식 시리즈로 엮어 보려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이야기를 밀고 나가다 보니 다른 이야기랑 엮을 여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별도의 단편으로 남겨 두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이 책은 SF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SF는 내가 읽고 쓰기 좋아하는 분야이고, 경력도 조금은 쌓아 놓은 분야이다. 마침 요즘은 한국에서 SF가 주목을 받고 있는지라, SF 영화를 통해 SF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다는 발상도 괜찮게 들리는 듯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너무 적적하거나 이상하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만큼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 때도 있고, 뭘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가 싶어 막막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이 책이 옆에서 같이 영화를 봐주는 친구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판다 정신

이 책은 풍경이 멋진 산길을 걷거나,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며 드는 생각들을 다룬 책과 비슷하다. 산길을 걸으며 산봉우리의 바위가 중생대에 생성된 화강암이라는 생각만 하는 것도 아니고, 공원을 산책할 때 길가에 피어 있는 풀이 쌍떡잎식물인가 외떡잎식물인가만 따지지 않듯이, 자연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감정을 연결하며 퍼져 나가는 아늑한 글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 그렇게 해서 쓴 책이니, 독자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산길을 건너다가 우연히 판다를 만날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거나, 공원을 판다와 함께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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