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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올리버 스톤 (Oliver Stone)

본명:William Oliver Stone

성별:남성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946년, 뉴욕 (처녀자리)

직업:영화감독

기타:예일 대학 중퇴, 뉴욕 대학 졸업

데뷔작
1974년 <강탈>

최근작
2023년 4월 <알렉산더 (리마스터링)>

1946년 9월 15일 미국 뉴욕에서 주식중개인인 유대계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4년에 명문 예일 대학에 진학했으나, 이듬해 6월 교회의 모집 광고를 보고 중국인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자원봉사자로 베트남에 가면서 대학은 중퇴, 영어강사뿐만 아니라 상선의 선원생활도 하고 미군의 테니스 파트너를 하기도 하면서 떠돌았다. 미국에 돌아온 후 복학했으나 21살의 나이로 미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베트남 전선에 참전했다. 15개월 후 두번의 부상으로 얻은 무공 훈장을 갖고 제대했지만, 전쟁 후유증 때문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멕시코로 등지를 전전하다 귀국한 지 열흘만에 센디고에서 마약 소지혐의로 체포된다. 참전용사라는 것이 참작되어 부친이 보석금 2500 달러를 내고 석방된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뉴욕 대학 영화과에 입학, 마틴 스콜세지에게 영화를 배우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1974년 올리버 스톤은 캐나다에서 15만 달러 저예산 호러 영화인 <강탈 Seizure (또다른 제목은 지옥의 여왕 Queen Of Evil)>의 각본, 연출, 편집까지 직접 맡으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어느 소설가와 그의 가족, 친구들이 악령에 사로잡혀 미쳐가는 내용인 이 영화는 구성은 엉성하지만 스타일리스트적인 면모가 엿보여 소수 컬트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흥행에 참패한 그는 감독직을 포기하고 시나리오로 눈을 돌린다.

택시 운전사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시나리오를 썼지만 팔리지는 않았다. 1976년에는 <플래툰>의 시나리오를 완성하여 여러 영화사를 돌아 다녔으나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 바람에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중 콜럼비아사의 의뢰를 받아 알란 파커의 심각한 정치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각본을 써 1978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계속해서 존 밀리어스의 <코난 Conan: The Barbarian>(1981),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Scarface>(1983), 마이클 치미노의 <이어 오브 드래곤 Year of the Dragon> 등의 장르영화에 충실한 각본들을 쓰며 인기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1981년 그는 마이클 케인을 주연으로 사고로 한손을 잃은 만화가가 그 손이 저지르는 살인극에 휘말린다는 내용의 공포물 <악마의 손(The Hand)>을 감독했다가 최악의 혹평을 듣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그래서 다시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감독 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이미 완료가 되었던 <플래툰>의 시나리오는 각 영화사로 부터 거절당하기 바빴고 영화사로부터 정신 나간 감독으로 멸시를 받았으며 마이클 치미로가 <플래툰>의 제작을 맡겠다고 제안했을 때는 자포자기에 빠져서 집어치우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고 한다.

1985년, 올리버 스톤은 엘살바도르 내전에 얽혀들어간 저널리스트의 얘기 <살바도르>를 쓰고, 마이너 영화사인 헴데일 영화사에 의해 5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게 되었다.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살바도르>가 아카데미 2개부문 후보가 되는 등 올리버 스톤의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영화의 평판이 좋아지자 햄데일 영화사가 이듬해 <플래툰>을 600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만드는데 합의해 영화화가 실현되었다.

하지만 <플래툰>의 로케 장소인 필리핀이 아키노 암살로 내전 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는 하루 종일 CNN만 보면서 악몽을 되새기다 마침내 마르코스가 망명하게 되자 그는 혁명의 와중인 필리핀에서 혁명적인 월남전 영화의 촬영을 시작한다. 그는 참전 경험이 없는 배우들, 찰리 쉰, 톰 베린져, 윌리암 데포에게 총기 사용법과 정규 군대와 똑같은 훈련을 받도록 하면서 영화를 찍었다. 극중 찰리 쉰의 철모에 쓰여있는 '내가 죽거들랑 거꾸로 묻어주게, 온 세상이 내 엉덩이에 키스하겠끔'하는 문구는 올리버 스톤이 월남전 당시 쟈켓에 쓰고 다니던 내용이다. 그는 이 영화로 마침내 아카데미을 휩쓸었다. 무려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 감독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플래툰>을 문전박대했었던 헐리웃의 메이져 영화사들을 비웃어주었다.

<플래툰>의 대성공 이후에 그는 증군가의 내막을 파헤친 <월 스트리트>, 라디오 DJ를 두러싼 서스펜스 영화 <토크 라디오> 등으로 사회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작품은 그의 능력에 그릇이 너무 작았으며 <플래툰>의 영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두 작품에 그려진 현대의 도시는 온순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그는 1988년에 자신의 월남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을 찍겠다고 선언, 톰 크루즈가 시스터 보이같은 충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7월 4일생>을 찍었다. 맹목적인 애국심에 월남전에 뛰어들어섰다가 반신불수가 되 마침내 반전운동의 기수가 된 론 코빅의 자서전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두 번째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게 되며 거장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1990년 말, 그는 갑자기 60년대 락구룹 도어즈의 리더 짐모리슨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해서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 영화는 팝 아티스트들의 일대기를 그린 록콘롤 영화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데 그가 월남전 영화 이외에는 별로라는 비난들을 단번에 물리치게 되었다. < JFK>에서 그는 케네디 대통령이 델라스에서 암살된 뒤 사건을 수사를 맡은 게리슨 검사의 집요한 추적을 그려 92년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수상한다. 를 끝낸 그는 다시 월남전으로 돌아가 3부작의 마지막편 <하늘과 땅 Heaven & Earth>(1993)을 발표했다. 월남전 당시에 미군에게 학대를 받았던 월남 여성 닐리 핸스 리베의 회상록을 영화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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