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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본명:Francis Ford Coppola

성별:남성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939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양자리)

직업:영화감독

가족:아버지 카마인 코폴라(영화음악가), 딸 소피아 코폴라(배우/감독)

기타:UCLA 영화학과

데뷔작
1963년 <디멘시아 13>

최근작
2023년 4월 <빗속의 연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뉴욕 변두리에서 이탈리아계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는 관현악단 지휘자였다.(후에 아들이 감독으로 출세하자 영화음악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홉스틀러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다가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옮기면서 영화로 바꾸었다. 학생 시절에 이미 소형영화들을 감독했고, 미국 B급 영화의 대부 로저 코만(Roger Corman) 감독 밑에서 영화 실무를 배우며 소프트코어포르노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1963년 코먼이 프로듀서를 맡은 최초의 장편영화 <디멘시아 13 Dementia 13>을 만든다.

1966년 UCLA의 지원으로 부모의 과보호 아래 자라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넌, 이제 어른이야 You’re a Big Boy Now>로 감독 데뷔를 하고 2년 뒤 워너브러더스가 배급하면서 할리우드 메이저와 첫 인연을 맺는다.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만든 첫 영화 <피니언의 무지개 Finian’s Rainbow>(1968)와 억눌려 살다가 가출하는 여인의 이야기 <레인 피플 The Rain People>(1969)은 개인적 취향이 강한 소품이지만 깔끔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70년에는 <팻튼 대전차 군단(Patton)>의 각본을 맡아 에드먼드 H.노스와 함께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고, 마침내 71년 이탈리아계 마피아 패밀리의 흥망을 다룬 마리오 푸조의 베스트 셀러 <대부>의 연출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이 영화가 코폴라에게 맡겨진 것은 이탈리아계라는 것이 감안된 선택이었고, 코폴라는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연출을 맡았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대부>의 성공으로 엄청난 명예와 부를 쥐고 예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한시대와 마피아에 관한 웅장한 서사시’라는 비평적 찬사도 쏟아졌다.

2년 뒤에 만든 <대부 Ⅱ>는 오스카상 6개 부문을 석권하며 “1편보다 더 위대한 속편”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비할 수 없는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준 두 대작보다 그에게 더욱 명예로운 작품은 <대화 The Conversation>(1974)였다. 도청으로 먹고 사는 한 미국인의 창백하고 불안한 생활을 묘사한 이 영화는 “미국 대중영화와 유럽 예술영화의 좋은 점을 고루 가진 걸작”이라는 평가 속에 코폴라를 미국 예술영화의 기수로 부상시켰다.

상업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하늘을 찌를 듯했던 코폴라의 기세는 70년대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제작사 조에트로포사를 창립해 젊은 감독들의 제작을 도와주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졌고, <지옥의 묵시록 pocolypse Now>(1979)의 악몽을 거치면서 그의 예술적 에너지는 급격히 고갈되는 것처럼 보였다.

베트남전쟁의 경험을 그야말로 악몽으로 묘사한 <지옥의 묵시록>은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제작비 3천만달러를 들인 <지옥의 묵시록>은 촬영시한을 끝없이 어겨가며 필리핀 정글에서 1년을 보낸 코폴라와 제작진 전부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고 그들의 이상한 몰골은 매스컴의 화젯거리로 다루어졌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제작비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긴 했지만, 비평가들은 월남전을 장대한 스케일로 그리면서도 형이상학적인(정신분석 또는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이 영화가 가진 지나친 자기탐닉증에 비판적 언사를 보냈고, 코폴라도 이를 수긍했다.

80년대 들어 코폴라는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의 저편 One from the Heart>(1982) <럼블 피시 Rumble Fish> (1983) <아웃사이더 The Outsiders>(1983) <코튼 클럽 The Cotton Club>(1984) <페기 수 결혼하다 Peggy Sue Got Married>(1986) <병사의 낙원 Garden of Stone>(1987) <터커 Tucker: The Man and His Dream>(1988) 등을 내놓으며 쉼없이 작품활동을 했지만 어느 것도 70년대의 미학적 성취에도 상업적 성공에도 전혀 미치지 못했다.

90년에 야심적으로 공개한 <대부 3>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상당히 실망을 했다. 마치 70년대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 만든 <대부 Ⅲ>(1990)는 어설픈 안간힘이라는 비아냥만 받았다. 92년에 그는 원작에 충실한 정통파 공포영화를 목표로 호화 캐스팅을 동원해 <드라큐라>를 내놓는다. 팀 버튼의 고딕 미장센과 <샤이닝>의 공포를 결합하고 MTV적 속도감까지 불어넣으려 했으나 이 영화 역시 스타일과 주제의식이 어울리지 못하는 범작에 머물렀다.

4년 뒤에 내놓은 <잭 Jack>(1996) 역시 범상한 휴먼드라마였다. 다만 <레인메이커 The Rainmaker>(1997)는 정의감을 버리지 못하는 젊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단순한 드라마지만, 인물 묘사와 극의 리듬에서 대가다운 원숙함을 보여, 이후 코폴라의 행보를 주목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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