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이든 예나 지금이나 선정성에 매몰되어 작품의 진정한 의미와 작가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사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가 굉장한 독서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동시대 철학자들의 저작, 종교, 자연학, 윤리,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여행기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드의 독서는 광범위했다. 그는 시, 희곡, 여행기, 철학 콩트, 단편 소설, 장편 철학 소설 등에서 자신의 문학을 실험하여 최적의 문학 장르를 찾으려고 했다. 사드가 추구했던 문학은 모든 장르에 걸쳐 자신이 읽은 책, 특히 동시대 철학자들의 여러 사상을 비교하고 각 사상에 숨겨진 반윤리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일이었다.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은 사드가 공화 정부의 공포정치 희생양으로 사형수가 되었다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으로 출옥한 경험, 즉 대학살의 피비린내를 몸소 체험하고 집필한 작품이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신봉한 자유와 평등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은 공화 정부가 공화국 국민을 압제하고 학살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계몽철학에 의문을 제기했던 터에 사드는 공화국 정부가 이념적 기초로 삼은 모든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모순으로 점철된 돌망세와 생탕주의 입을 통해 검증하고 방탕아들의 기괴한 행위를 통해 철학자들의 사상이 내포하는 반윤리적이고 폭력적인 면을 독자들에게 폭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