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김동환

최근작
2024년 10월 <대종교 항일투쟁 인물사전>

김동환

서울 출생으로 오랜 기간 (사)국학연구소에 몸담고 활동하였으며, 대학에서 대종교독립운동사와 국학 이론을 강의하였다. 주요 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국학과 민족주의』(공저, 2019), 『배달의 역사, 새 길을 열다』(공동편역, 2020), 『독립운동가 희산 김승학의 행적과 이상국가 건설방략』(공저, 2020), 『총을 든 역사학자 김승학-그 삶과 사상』(2021), 『임오교변』(공저, 2022), 『김교헌의 생애와 역사인식』(2023) 외 다수가 있다.  

대표작
모두보기
저자의 말

<김교헌의 생애와 역사인식> - 2023년 12월  더보기

역사는 나와 우리를 위한 변명이다. 사관은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으로, 역사가의 눈이 무엇보다 소중한 이유가 된다. 주인 됨을 버리면 기준과 척도를 잴 수 없다. 슬기를 잃어버리면 구차함과 억측이 진실을 가리게 된다. 바로 봄을 망각하면 가식과 협잡으로 인해 사실을 정관(正觀)할 수가 없다. 불안돈목(佛眼豚目)이란 성어가 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의미다. 이 이치대로라면, 노예의 눈으로는 주인의 역사를 만들 수 없고 주인의 눈에서는 결코 노예의 역사가 나올 수 없다. 신채호가 “아국(我國)을 망(亡)하는 자는 정론(政論)도 아니며, 학제(學制)도 아니오, 기백년래(幾百年來) 망필(妄筆)을 휘(揮)한 노사가(奴史家)가 시(是)라”고 한탄한 말도 주목된다. 주인의 눈을 저버린 노예의 사필을 일갈(一喝)한 것이다. 우리가 현전하는 사서에 많은 안타까움을 갖는 것도 노예의 사필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언급되는 대부분의 사가들이 유교사관에 젖은 유학자들이다. 정통을 강조하고 난신적자(亂臣賊子)를 여지없이 매도하는 성리학적 유교사관을 담고 있다. 이러한 춘추필법(春秋筆法)은 의리(義理)와 대의명분(大義名分), 그리고 중화주의에 따른 정통성 등이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조선의 대간(大諫)과 사관(史官)의 활동 역시 당연히 유교의 실천을 위한 것으로, 이들의 활동은 곧 유교사관의 체계화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중화적 사대주의사관이 일제강점기 식민주의역사관으로 연결되며 온존하였다는 점이다. 노예의 집단 속에 주인만 바뀐 꼴이 되었다. 다시금 주인의 눈을 잃어버린 아픔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문득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기록된 「한상국(韓相國)의 농사」를 떠올려 본다. 상국 한응인(韓應寅)이라는 농사의 ‘어설픈 이’가 벼[稻]와 강아지풀[]를 구별하지 못해 벼를 다 뽑아버리고 농사꾼인 양 우쭐해하는 이야기다. 혹여 슬기로 보는 눈을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학이 이런 것은 아닐까. 역사의 ‘어설픈 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기록한답시고 남의 다리를 긁어준 것은 아닌지 궁금키도 하다. 신채호가 “조선사를 지은 기왕의 조선의 사가(史家)들은 매양 조선의 ‘혹’을 베고 조선사를 지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네들이 쓴 안경이 너무 철면(凸面)인 고로, 조선의 눈이나 귀나 코나 머리 같은 것을 ‘혹’이라 하여 베어 버리고, 어디서 무수한 ‘혹’을 가져다가 붙이었다.…(중략)…조선인이 읽는 조선사나 외국인이 아는 조선사는 모두 ‘혹’ 붙은 조선사요 올바른 조선사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통해, 우리의 얼굴과 혹도 구별 못하는 사가들을 비판한 것과 동일한 교훈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역사는 소외와 위축의 역사로 흘러왔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서(史書)의 수난과 더불어 흔들린 신교(神敎, 단군신앙)의 쇠퇴와 맞물린다. 탄압 속에 사라진 서적도 대부분이 신교서적들이다. 남아서 천대받는 서적도 하나같이 신교사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뒤집혀진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정사(正邪)가 전도(顚倒)되고 주객(主客)이 역전된 삶이 우리의 역사적 삶이었다. 혹과 강아지풀인 외래사관에 의해 얼굴과 벼인 신교사관이 압살당해 온 경험이다. 역사에서 올바로 보는 안목도 묻어둘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과학성이니 합리성이니 보편성이니 하는 허울 속에, 바로 보는 눈을 잃어버린 지 퍽이나 오래되었다. 전통사회에서는 중국적인 것이 과학적·합리적·보편적인 가치요, 근대 이후로는 제국주의적 잣대가 바로 그러한 가치였다. 우리는 늘 변두리 의식 속에서 빌붙어 사는 것에 길들어져 왔을 뿐이다. 바로 보아야 할 역사의 눈 역시 사팔뜨기가 된 원인이다. 근대에 들어 이러한 올바른 역사의 눈을 뜨게 해 준 인물이 김교헌이다. 그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환골탈태하였다. 중화적 지식인에서 신교적 역사가로, 지체 높은 사대부에서 독립투사의 길로 인생을 바꿨다. 그의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의 계기는 대종교와의 만남이었다. 그 정신 속에 잉태된 저술들이 『단조사고((檀祖事攷)』·『신단실기(神檀實記)』·『신단민사(神檀民史)』·『배달족역사(倍達族歷史)』 등의 역사서들이다. 그의 역사인식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기반한 민족적·신교적 가치를 일깨워 주었고, 특히 신교사관과 남북조사관, 부여정통론 등의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시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김교헌의 역사서술은 독립운동 현장에서 정신적 교본으로써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그의 저술은 독립군들 사이에 국사교과서로서 널리 읽혔고 신흥무관학교 등 간도의 민족학교에서 교재로 쓰이기도 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과서로 사용되면서 역사인식 고양에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나아가 그의 역사인식은 개인적 관심을 넘어 민족주의역사학 성립에도 중요한 바탕으로 작용했다. 김두봉이나 백순, 그리고 안재홍 등이, ‘사마천을 능가하는 역사가’, ‘대한민국 역사학의 종장(宗匠)’, ‘일본의 대학자도 견줄 수 없는 학자’라고 존경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는 김교헌이 서거한 지 꼭 100주기가 되는 해다. 그러나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생애나 역사인식에 대한 평가 작업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벌써 정리·평가되었어야 할 사안이었음에도 모두들 방기한 상태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구조적 모순과도 무관치 않을 듯하다. 늦었으나 일천한 지식을 무릅쓰고 이 책을 펴내는 이유다. 현학들의 질정(叱正)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본 것은 간단하다. 김교헌 연구의 단초를 던지고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2023년 12월 30일 홍천 서곡리 상구재(商丘齋)에서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