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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예술

이름:이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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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이토록 끌리는 영화>

이동기

커피를 사랑하는 영화 칼럼니스트. 커피는 원두의 종류도 중요하지만, 그라인더의 굵기나 원두 추출 시간, 온도 등 바리스타의 조율에 따라 단맛과 쓴맛, 신맛 심지어 탄맛까지 동시에 자아낼 수 있다. 영화도 이와 비슷하다. 어떻게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는 이가 어떻게 읽고 해석하며 받아들이냐에 따라 내용에 담긴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영화는 재미있고 그만큼 다가오는 바가 늘 새롭다. 그게 영화를 보고 읽고 해석하며 많은 이에게 설명하고 다니는 이유다. 제3회 모두를 위한 기독교 영화제에서 영화평론 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그때 그 영화처럼>, <다시, 영화를 읽는 시간>, <오늘도 두 번째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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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오늘도 두 번째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 2022년 6월  더보기

두 번째 하루를 견뎌내며 청춘이 있었다. 책가방을 잔뜩 짊어 메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워크맨을 들으며 지하철을 타곤 했던 그때가 있었다. 언젠가 늦은 퇴근길,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혼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은 적이 있다. 문득 주변의 소음 없이 오로지 음악 소리만이 내 귀를 감싼 채 그렇게 멜로디에 집중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해도 과거를 마음껏 끌어올 수는 없다. 학창 시절 귀가 빠지도록 들었던 소니 WM-FX707이 그리워 검색을 해보니 자료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조그만 워크맨 하나에 기뻐 날뛰던 그때 그 청춘의 한 자락이 어느 날 갑자기 그리워지는 것. 그래서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렇게 인기를 끌었나 보다. 어른이 되고, 못 되고의 차이는 아마도 선택에서 나오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엔 그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모든 게 자신의 선택에 기인해서다. 그런데, 이 ‘선택’이라는 게 참 무섭다. 메릴 스트립이 주연을 맡은 〈소피의 선택〉(1982)이라는 영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던 아들과 딸, 두 아이의 엄마가 나치 장교의 협박에 못 이겨 둘 중 한 아이를 사지(死地)로 내모는 선택을 한다. 비극으로 끝나버린 그녀의 선택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삶에서 선택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1993년 TV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 소개된 ‘TV인생극장’에서 개그맨 이휘재는 매주 주먹을 꽉 쥐고 “그래, 결심했어.”를 열심히 외쳐댔다. 그가 선택한 인생은 어떤 결정이었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선택의 순간이 인생의 방향을 바꿨을지언정, 그 결과가 긍정과 부정, 혹은 선과 악으로 완전히 구분되지는 않았던 탓이다. 나는 소피의 그 선택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관객에게 전하는 건 단지 한 여인의 삶의 슬픈 색깔을 이해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녀의 삶을 진심으로 존중해달라는 목소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생은 이리저리 흐르는 선택의 반복이고, 이 연속된 흐름 속에서 우리는 결말이 나뉘는 경우의 수를 마구 늘려 간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더욱 존중받아 마땅하다. 슬픔이 더해질수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삶에 있어 선택은, 이처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항상 무언가를 얻고 배운다. 하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건 언제나 거창하고 무거운 것만은 아니다. 시시하고 재미없는 그저 단순한 이야기에 불과할지라도 이를 통해 우리는 여러 색깔의 삶이 오가고 마주하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게 영화를 읽어내는 친절하고 정확한 해석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를 통해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정답은 없다. 단지 인생을 풀어가는 해답만 존재할 뿐이다. 각자가 흩뜨려 놓은 가지각색의 색깔 속에서 굳이 우위를 점하고자 노력하는 게 더 앳된 어리석음으로 드러나는 이유다. 그녀의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내게 있어 청춘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런 것 같다. 단지 지나간 추억을 끄집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택한 선택과 그 선택이 주는 삶의 무게, 여기에 덧대어진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다. 혹자는 세상을 등에 대고 비겁한 처사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고, 또 누군가는 과거보다 미래를 얘기하는 자를 가까이하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청춘은 서랍 속 고이 모셔둔 옛 일기장이나 낡은 사진첩과도 같다. 이렇듯 어릴 적 좋아했던 비엔나 아이스크림이 떠올라 사진 한 번 찾아보곤, 정말 맛있었는데 하며 군침을 삼키는 그런 거다. 어쩌면 오늘도 그 청춘이 그리워 여전히 두 번째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찾는 이들의 두 번째 하루에도 그 청춘의 흔적이 깊숙이 새겨지기를…. 이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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