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픈 사람이다. 이유 없이 슬픈 사람이다. 그 어떤 시절도 사람도 내가 슬픈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슬픔에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아주 많은 슬픔이 이유 없는 채로 우리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갈 곳 잃은 슬픔들이 매일매일 산책한다.
그리고 당신 또한 슬픈 사람일 것이다. 이유 없이 슬픈 사람일 것이다. 우리 바깥세상의 가깝고 먼 일들을 보면서 자주 퇴출당한 듯한 기분을 느끼고, 그리하여 모두와 영원히 불화할 것만 같단 생각에 또 괴로워하는. 나로 인해 울다가도 세상의 울분 소리가 들려오면 또 정신이 혼미해지는. 삶이, 삶이 너무 길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