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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경제경영/자기계발

이름:박현주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8년, 광주광역시 (천칭자리)

직업:제2금융인

기타:1983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최근작
2007년 8월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박현주

현 미래에셋 회장. 대학시절, '자본시장'의 매력에 빠져 스물일곱 살에 투자자문회사 '내외증권연구소'를 설립했다. 증권계에 입문한 지 4년 6개월 만인 서른둘의 나이에 동원증권 최연소 지점장으로 발탁된 후 연이어 약정고 전국 1위를 달성했다.'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정진해야 한다'는 인생철학에 따라 금융계 입문 후 10년 동안 한 우물을 파다가, 돈에 대한 타고난 직관과 경험을 살려 지난 1997년, 11년간의 증권사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해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박회장은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두세 걸음 앞선 미래 분석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놀라운 성공 신화를 창조했다. 코스닥 열풍이 몰아치기 2년여 전, 일찌감치 벤처기업에 눈을 돌려 막대한 수익을 거뒀고, 1998년 12월에는 국내 최초로 뮤추얼펀드를 도입해 주식시장에 간접투자 돌풍을 일으켰다. 1999년 12월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하면서는 업계의 비난과 우려를 뚫고 파격적인 위탁수수료 인하를 단행, 단숨에 약정 순위 6~7위 증권사로 도약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2000년 3월, 박회장은 또 한번의 '파격'을 시도한다. 창업 후 받은 개인 성과급 75억원을 쾌척, '박현주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박회장은 재단이사장은 물론 이사진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음으로써 재계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리고 98년, 국내 최초의 폐쇄형 뮤추얼 펀드 '박현주 1호'가 대성공을 거두며, 금융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차별화된 전략과 원칙중심의 투자,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을 바탕으로 자본금 100억으로 시작해 창업 10년 만에 전체운용자산 70조에 이르는 초유의 성장을 달성했다.
그런 박회장이 2001년 2월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오르자 증권업계는 또 한번 술렁거렸다. 같은 해 11월, 본업에 복귀하면서는 "박현주가 떴으니 증시도 뜰 것"이라는 소문이 시장을 휩쓸었다. 이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업계를 넘어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1970년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그랬듯 2000년대 샐러리맨의 우상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노하우를 배우고 조언을 듣고 싶어하는 최고의 투자전문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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