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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류성룡

출생:1542년

사망:1607년

최근작
2019년 10월 <초판본 징비록 (패브릭 양장 에디션)>

류성룡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군사 업무를 관장하는 전시 재상이었다. 임진왜란이 이후 영의정 자리에서 물러나 전쟁을 회고하며 반성하는 의미로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유성룡은 1542년 10월 1일 경상도 의성현 사촌리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호는 서애(西厓),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4세부터 글을 읽고 14세에는 향시에 합격하는 등 명석한 두뇌를 지녔던 그는 일찍이 많은 시험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지냈다. 21세에 퇴계 이황에게 가르침을 받고 23세에 생원 회시 1등, 진사시 3등으로 급제하여 이듬해에 성균관에 입학했다. 25세에는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면서 병조좌랑, 이조좌랑, 홍문관 부제학,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의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에는 영의정에 임명되었다가 파직되지만 다시 도체찰사의 자리에 올라 조선의 내정과 군사 상황을 총괄하였다. 이순신 장군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유성룡은 왜란에 대비하여 이순신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등용하여 왜란으로 인한 국가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힘썼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난 1598년, 북인의 탄핵으로 영의정에서 파직당하고 이듬해에 고향인 하회마을로 낙향하였다. 이후 조정에서 다시 벼슬을 내렸으나 저술에만 힘썼으며, 이후 병산서원에 위패가 모셔졌다. 그가 저술한 임진왜란 회고록인 『징비록』은 당시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실제적인 묘사와 기록이 담겨있다. 더불어 지난 실책을 반성하고 후일을 대비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어 가치가 높은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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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2007년 5월  더보기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어, 지난날의 일을 생각하니 그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용신할 수가 없다. 이에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 임진년부터 무술년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대강 기술하니 이것이 얼마 가량 되었고, 또 장,계,소,차자,문이와 잡록을 그 뒤에 부록했다. 비록 보잘것없지만 모두 그 당시의 사적이므로 버리지 않고 두어서, 이것으로 내가 시골에 살면서도 성심으로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나의 간절한 뜻을 나타내고, 또 어리석은 신하가 나라에 보잡하지 못한 죄를 나타내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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