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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성별:남성

출생:1809년 (물병자리)

사망:1865년

최근작
2019년 12월 <링컨이 쓴 365 말씀묵상>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켄터키 주(州) 출생.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독학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1834~1841년 일리노이 주의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847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하원의원직은 1기로 끝나고 변호사 생활로 돌아갔다. 1850년대를 통하여 노예문제가 전국적인 문제로 크게 고조되자 정계로 복귀하기로 결심하고, 1856년 노예반대를 표방하여 결성된 미국 공화당에 입당했다.
1858년 일리노이 주(州) 선출의 상원의원선거에 입후보하여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의 S. A. 더글러스와 치열한 논전을 전개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선거결과에서는 패하였으나, 7회에 걸친 공개토론으로 그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 받았다. 이 선거에서는 민주당 쪽에서 노예제 유지의 브리켄리지와 인민주권의 더글러스의 두 명의 후보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링컨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당선과 함께 남부 각 주는 잇달아 합중국을 이탈하여 남부연합국을 결성하였다. 1861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하자 링컨은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제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4월 섬터 요새에 대한 남군의 공격으로 마침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전황은 처음에는 북군에게 불리하였으나, 1862년 9월 남군이 수세로 몰린 때를 노려 노예제 폐지를 예고하고 외국의 남부연합국 승인을 저지함으로써, 북부와 해외여론을 자기편으로 유도하여 전황을 일거에 유리하게 전개하는 데 성공하였다.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국립묘지 설립 기념식 연설에서 유명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멸의 말을 남겼다. 전쟁 중인 1864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재선 전망이 불투명하였으나, U .S. 그랜트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승리가 계속된 것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전쟁이 종막에 가까워짐에 따라 관대한 조치를 베풀어 남부의 조기 연방 복귀를 바랐으나, 남군 항복 2일 후인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연극관람 중 남부인 배우 J. 부스에게 피격, 이튿날 아침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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