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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종교/역학

이름:관징 (寬淨)

국적:아시아 > 중국

출생:1924년, 푸졘성 푸졘현 한쟝구 장볜진 황양촌 (게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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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극락과 염불>

관징(寬淨)

관징(寬淨) 스님은 1924년 7월 14일 중국 푸졘성(福建省) 푸졘현(浦田縣) 한쟝구(涵江區) 장볜진(庄邊鎭) 황양촌(黃洋村)에서 태어났다. 1931(7살)년 푸졘성(福建省) 카이핑사(開平寺)로 출가해서 1941(17살)년 광둥성(廣東省) 난화사(南華寺)에서 쉬윈(虛雲) 화상을 스승으로 구족계를 받았다.
1957(34살)년 윈쥐산(雲居山)에서 조동종(허운 화상은 정법안장에는 洞雲宗이라 썼다) 47대 쉬윈(虛雲)ㆍ꾸옌(古嚴) 화상으로부터 48대 관징(寬淨) 푸씽(復興) 선사에게 전하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받았다. 1962(39살)년 이후 껑디핑사(坑底坪寺)ㆍ수이롄사(水聯寺)ㆍ셴포사(仙佛寺) 당가(當家)를 지냈고 마이셰옌사(麥斜岩寺)의 주지를 맡아 수행에 전념하였다.
1966(43살)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홍위병에 의해 강제환속(還俗)되었으나 2달 뒤 다시 잠적하여 동굴에서 수행에 몰두하던 중, 다음 해인 1967(44살)년 10월 25일 관세음보살님의 인도를 받아 서녘 극락세계로 떠나게 된다. 이어서 극락세계의 9품 연꽃의 여러 경계를 참관하고 돌아오니 1974(51살)년 4월 8일이었다. 하늘나라와 극락을 하루쯤 다녀온 것처럼 느꼈는데 실제로
돌아와 보니 6년 5개월이란 세월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1979(56살)년 중국이 대외개방을 시작하며 종교 활동을 허가하자 다시 절로 돌아와 카이핑사(開平寺)ㆍ마이셰사(麥斜寺)ㆍ산휘사(三會寺) 주지를 지냈다. 푸졘성 셴여우현(仙遊縣) 산휘사(三會寺) 주지로 있을 때, 늘 하루나 이틀씩 선정에 들곤 하였는데, 1980(57살)년 12월 23일부터 29일까지 6일 반 동안 선정에 들어 주위를 놀라게 한 이야기는 지금도 스님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이 때 귀의한 제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1982(59살)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Mahayana Temple(大乘寺), 샌프란시스코의 Norras Temple(諾那寺), 로스엔젤리스의 Pho Da Son Quan Am Bo Tat Tu(普陀山 觀音菩薩寺)와 Prajna Buddhist Mission(般岩修德善堂) 같은 절에서 행각승으로 있으면서 불법을 폈다. 미국에서 설법한 내용을 바탕으로 극락 다녀온 이야기를 『붇다나라와의 별난 인연(佛國奇緣)』이란 책으로 내고, 극락 가는 수행인 『정토선 원리(淨土禪精義)』의 출간을 준비하며 미국 신도들의 수행을 이끌었다.
1984(61살)년 미국으로 건너간지 2년 만에 미국 제자 와이콴(慧群, LA 관음보살사 주지) 스님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당시 불교 재건 상황을 파악한 뒤 본격적인 사찰 복원불사를 시작한다. 관징 스님은 미국 영주권을 20년 이상 가지고 있었지만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살면서 17곳의 사찰을 직접 다시 세우거나 증축을 도왔다(仙游縣 : 天馬寺, 麥斜岩寺, 善果巖寺, 滴水巖寺, 香山寺, 西方寺, 三會寺, 仙門寺. 永春縣 : 淸泉巖寺 허운 화상 사리탑. 德化縣 : 靈鷲巖寺, 彌勒大殿, 觀音巖. 永泰縣 : 仙佛寺). 관징 스님이 관계된 절은 모두 가난하고 스님들도 공부를 못한 분들이라, 관징 스님은 이런 분들에게 3개월 속성과정으로 불교 기초와 법회 방식을 가르쳐 절에 머물도록 하여, 대부분이 문맹인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불교를 생활화하도록 해 주었다. 실제로 그런 시골의 조그마한 절이나 농부들이 관징 스님을 살아있는 붇다(活佛)라고 하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붇다가 아니라 요즈음 말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불사였다. 이와 같은 불사는 모두 미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에 다니며 직접 모은 성금으로 이룩한 것이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수많은 절에서 지도하고, 수많은 절을 새로 세우거나 수리했지만 어느 한 절에 적을 두고 계속 머문 적이 없었다. 늘 스스로를 ‘구름처럼 떠도는 중(雲遊僧)’이라 부르며, 필요한 곳에 가서 필요한 것을 도와주었다. 필요에 따라 어떤 절 주지라고 한 적은 있으나 불사가 끝나면 그 절을 현지의 스님에게 넘기고, 또다시 구름처럼 거침없이 미국으로, 싱가포르로, 홍콩으로, 한국으로 돌아다니며 행각승 노릇을 이어갔다.
미국으로 건너가 터를 잡은 5년 뒤 1987년, 싱가포르 강연을 바탕으로 『극락세계 여행기(極樂世界遊記)』, 『정토선 윈리(淨土禪精義)』란 책이 발간되어 본격적으로 대만, 홍콩, 싱가포르, 중국, 한국에 퍼지게 된다. 이 두 책이 퍼지면서 관징 스님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관세음보살의 영험으로 극락을 다녀와 쓴 여행기는 극락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가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지침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극락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계속 중국 본토에 남아 있던 스님들이 쓴 책 가운데 이처럼 커다란 반향과 논란이 있었던 것은 없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따로 출판한 『극락 가는 사람들』 5~6마당 참조)
중화권의 이와 같은 평가는 『극락세계 여행기(極樂世界遊記)』에만 집중되어 있고,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극락에 가는 수행법을 상세하게 다룬 『정토선 원리(淨土禪精義)』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최근에는 조금씩 소개는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토선을 수행하는 단체도 생기고 실제로 『정토선 원리(淨土禪精義)』에 나온 수행법에 따라 수행하여 수행법의 고갱이(核心)라고 할 수 있는 자성염불(自性念佛)을 이룬 사람도 많이 생겨났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사실이었다. 이것은 1997년 한국 불교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뒤 2004년까지 8년간 모두 16차례에 걸쳐 한국에 와서 전국 여러 곳에서 100회가 넘게 정토선 염불이 극락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과 그 구체적인 방법을 강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007년 음력 6월 19일(양력 8월 1일) 푸졘성(福建省) 셴여우현(仙遊縣) 산휘사(三會寺)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세속 나이 83살(한국 나이 84살), 출가 나이(法臘) 76살이었다. 셴먼사(仙門寺)에서 다비할 때, 89알(顆)의 사리가 나왔는데 현재 중국, 대만, 한국에서 제자들이 모시고 있다. (관징 스님 일대기 『극락과 정토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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