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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어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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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부모님에게 꼭 해드리고 싶은 39가지>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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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시대’를 가리키는 나침반! 5년 전으로 기억합니다. 아는 선배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한 날. 먼저 도착한 그분이 그날따라 제법 두툼한 책 한 권을 읽고 있었습니다. 《품격경영》? 그전에 이런 제목은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궁금했습니다. “잠깐 봐도 되겠습니까.” 묻고는 목차를 훑었습니다. 목차를 위아래 오르락내리락 흘깃 보는 동안 ‘이건 무조건 사야 돼!’라는 외침이 일어났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 봐서 될 문제가 아니다 판단한 거지요. 묵중한 일갈에 둔중한 울림이 파고드는 팽팽한 긴장감은 쉽사리 떨쳐내기 힘들었습니다. 우리끼리 잘한다고 다독였지 누구 하나 “그건 아냐!”라고 따끔하게 일러주는 이가 없었던 때였습니다. 맞고 어긋나고 옳고 그르다는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소득지수가 좋아지면 자연스레 선진국이 되려니 믿었지 “그게 다가 아냐!”라고 그 누가 있어 말해 주었겠습니까. 그때 이후 동문선출판사의 신성대 사장이 꾸준히 펴낸 ‘품격경영’ 시리즈 책들을 탐독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이 아프다》, 《자기 가치를 높이는 럭셔리 매너》, 《태도적 가치》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 원초적 질문에 숨김없이 낱낱이 일러준 고해성사와도 같은 연작들입니다. 신성한 충격, 성경의 재발견 《품격경영》만 해도 그 무게감과 존재감은 큰데 실제 품격은 그 영역이 생각보다 더 너른 듯합니다. 기실 《성경》에 대해 국내에만도 연구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겁니다. 저처럼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성경》만큼은 곧잘 애독하는 분들도 적지않습니다. 《성경》이라는 경전을 두고 교인-비교인 따지는 일은 실없는 노릇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지요. 저자가 평소 ‘크리스천 매너’에 대해서도 강연 때 드물게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또다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줄 줄은 미처 상상 못했습니다. 이번에 안경환 와인대사와 함께 쓴 《크리스천 매너-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는 전 세계인의 베스트셀러 《성경》에서 ‘매너’의 원류를 찾고 있습니다. 고유명사이자 대명사인 《성경》 텍스트에서 매너의 옥구슬이 건져질 줄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우리에게 처음 기독교가 전파될 때 외국인 선교사들이 겪었을 고민을 떠올린다면 이제 우리가 해외에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뒤따르는 고충이 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우리에게 ‘왔을’ 때에는 그들이 어떻게 했으며 반대로 우리가 ‘갈’ 때에는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그 판단 근거를 확인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성경에서 찾은 매너 일부에서만 통용이 되고 일부에서는 쓰이지 않는다면 그걸 ‘매너’라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서구에선 왜 매너란 걸 알려주고 교육하는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요?”라는 즉문에 저자의 “우리에게 유교가 그렇듯 매너 역시도 그들의 몸속에는 오래 체화되었습니다.”라는 즉답이 주는 의미를 기억합니다. “고품격 매너는 상류층들만의 구별짓기 수단이자 생존 노하우여서 여간해서 공개하지도 가르쳐 주려고도 않습니다.” 사실 전 세계에 통용되더라도 모두가 매너를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직 ‘구하고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전수되는 매너의 속성을 이 책에서 조목조목 《성경》의 말씀을 들어 일러주고 있습니다. 또 현대의 여러 사례들도 예로 들어 그 원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선진국 진입 문턱에 서 있는 대한민국호가 《크리스천 매너》라는 선장을 만난 건 천재일우에 버금가는 행운입니다. 좌초하느냐 순항하느냐 기로에서 대양을 가로지를 방향감을 품도록 알려주는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타이타닉호에서 마지막을 함께하는 ‘신사’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염치가 아니라 ‘품격’임을. 영화 《벤허》에서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생존이 아니라 ‘태도’임을.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초막 생활하며 행한 모세의 ‘결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해방이 아니라 민족의 ‘비전’임을. 그렇게 가치의 잣대를 대고 보면 모든 것이 달리 보입니다. 보지 못했던 것이 보입니다. 예수 탄생 2천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성경》이 《크리스천 매너》를 앞세워 그 속뜻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으니 제대로 들으라고. 누구도 짚어주지 아니하니 가까이에서 보라고. 그렇지만 《크리스천 매너》를 충격으로만 삭이면 매너의 의미는 줄어듭니다. 《크리스천 매너》를 울림으로만 받아들이면 민족 비전은 축소됩니다.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발전시켜 저력으로 삼을 건지 여부는 《크리스천 매너》의 호소를 몸소 실천함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울부짖었듯 말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잃어버린 ‘태도적 가치’ 없던 걸 만들어낸 게 아닙니다. 모르던 걸 일러준 것뿐입니다. 남의 것이라고 무조건 무시하고 내 것이라고 귀하다는 게 아닙니다. 옛것이라고 버리고 새것이라고 무작정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잊었던 것을 깨우치고 되찾자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오래 깊이 잠든 숨은 ‘인자’를 찾아야 합니다. 더러 불편하고 더러 따끔하리만치 소리 높여 말하는 건 그만큼 절실하기에 그러리라 봅니다. 잠들면 잊히기 딱 좋습니다. 잠을 깨자면 호흡이 필요합니다. 우리 호흡에 걸맞은 ‘태도적 가치’. 항해에 쓰일 나침반으로 어떻게 되살려 쓸지 이제 제대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찾아야 할지를 《크리스천 매너》가 상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초행길에 안내자가 있다는 건 다행입니다. 여행길에 길동무가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행운처럼 왔지만 운명처럼 쓰일 책 《크리스천 매너》. 우리가 잠시 잃은 게 있었다면 곧바로 되찾으면 됩니다. 보다 나은 것이면 기꺼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쉽지 않으니 하자는 말이고, 누구라 돌리지도 말고 다름 아닌 우리가 하자는 겁니다. 뼈를 깎는 고통만큼은 아니어도 우리에게는 친절한 안내서가 주어졌습니다. 글로벌 무대를 향해서라도 우리 민족을 웅비시킬 비책으로서라도 《크리스천 매너》는 우리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빛의 갑옷’ 크리스천 매너 원문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시대에 따른 시각이 달라질 뿐입니다. 변질보다 변화를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음성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시대에 맞춘 호흡이 필요합니다. 강요보다 요청에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긴 안목으로 보자면 《성경》의 본질은 그대로입니다. 시공을 뛰어넘어 하나로 관통하는 ‘맥’을 찾아 짚고 가는 일입니다. ‘품격(dignity)’은 고상한 단어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단어입니다. 살아서 우리와 함께 ‘만들어’ 가야 제 몫을 하는 단어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미루거나 물러설 때가 아닙니다. 빠르게 바뀔수록 든든한 지주목이 필요합니다. 《크리스천 매너》는 우리에게 ‘가치의 시대’를 열어준 책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분명 이 민족을 ‘위대한 세대’로 이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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