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정식 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아버지 제임스 밀의 주도면밀한 가정 교육을 통해 라틴어와 그리스어, 기하학과 자연 과학, 시학과 역사 등을 공부했다. 벤담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그에게 공리주의 사상을 주입했고, 밀은 1822년에 『공리주의자 협회』라는 독서 토론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1823년 『동인도 회사』에 점원으로 입사하여 1858년에 은퇴했으며, 1865년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잠시 정치 일선에 몸담기도 했다. 『논리의 체계』, 『정치 경제의 원칙』, 『자유론』, 『공리주의』, 『여성의 종속』 등의 대표 저술을 출판했다. 이외에도 민주주의, 노예제, 제국주의, 여성의 권리,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근대 시민 사회의 주요 쟁점에 대해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당대 유력한 지식인과 수백 통의 서한을 주고받았다. 이 저술과 서한은 1963~1991년에 총 서른세 권으로 출간된 『존 스튜어트 밀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자를 자처했으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쾌락만이 인간이 목적으로 추구할 만한 유일한 것이라는 공리주의의 핵심 명제를 수용한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통해 높은 학문적 의의와 대중성을 모두 획득했다. 벤담이 대체로 정치와 법률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주목하는 외면적이고 등가적인 행복에 밀착했던 반면, 그는 개인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주목하는 내면적이고 위계적인 행복의 가치에 밀착한다. 인간이 느끼는 쾌락에 우열 혹은 위계가 있을 수 있는가? 어떤 특정한 종류의 쾌락이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더 바람직하거나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밀은 자존심, 자유, 개인적 독립성, 지적 호기심 등이 인간적 품위의 바탕인 동시에 진정한 행복(쾌락)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적 품위를 지켜 주는 쾌락, 즉 개인의 독립성과 극대화된 자유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최대 행복을 실현하는 길이다. 밀의 사상은 19세기에도 유럽 사회에 잔존하던 전통적 질서의 억압에서 벗어나 개별성을 쟁취하려 했던 근대적 개인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대변한다.
벤담 공리주의의 정수는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이하 『서론』)에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사상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단정적 표현과 만난다. “인간은 쾌락과 고통의 노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실로 얼마나 복잡한 심리를 가진 동물인가? 그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벤담은 쾌락과 고통이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복은 그저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이려는 안간힘을 통해 얻어지고, 인간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궁극적 기준도 그 행동이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바에 달려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많은 독자들은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인간이 쾌락과 고통의 노예라는 말도 그렇고, 인간의 행복이 고작 쾌락과 고통의 플러스마이너스일 뿐이라는 생각도 영 탐탁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서론』은 연속적이고 긴밀히 연결된 세 부분, 즉 공리주의 원칙에 대한 해설(1~4장),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분석(5~12장), 형벌에 대한 이론(13~17장)으로 구성된다. 백미는 단연 두 번째 부분이다. 벤담은 쾌락과 고통의 수많은 종류와 그 각각에 대응하는 인간의 욕망, 인간의 감수성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상황, 인간의 행동을 자극하는 동기와 성향 전반을 살피면서 인간의 본성 혹은 기본 심리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실망감은 다소 줄어들 것이다. 그에게도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동물이 아니며, 그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특히 법률과 제도를 통해 인간의 최대 행복을 도모해야 할 입법자나 정책 결정자는 인간의 본성 혹은 기본 심리에 대한 엄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쩌면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라기보다는 입법자나 정책 결정자를 위한 지침서의 성격을 가진다. 그럼에도 공리주의 원조로서의 가치는 불변한다. 기본적으로 공리주의자는 인간이 무수한 원천에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모든 쾌락이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고 말한 공리주의자는 드물다. 『공리주의』에서 존 스튜어트 밀이 의도한 것 중 하나는, “일부 무지한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하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오해는 쾌락의 양만을 중시하는 공리주의로는 쾌락의 질적 우열과 인간적 품위를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오해를 반박하는 맥락에서 나온 유명한 구절이 “만족스러워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이다. 앞 문장은 쾌락의 추구에서 인간적 품위의 중요성을, 뒤 문장은 육체적 혹은 저급한 쾌락에 대한 정신적 혹은 고상한 쾌락의 우월함을 함축한다. 밀은 옳고 그름의 궁극적 판단 기준에 대한 오랜 소모적 논쟁을 해소할 최선의 대안으로서 벤담의 공리주의를 계승하지만, 인간적 품위와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 정신적 쾌락에 집중함으로써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다. 벤담의 『서론』과 밀의 『공리주의』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공통적 본성과 옳고 그름에 대한 동일한 판단 기준을 설파하면서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논의를 전개한다. 분명 밀의 『공리주의』는 폭넓은 대중에게 공리주의를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든 공로가 있다. 그러나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둘 사이의 명백한 대척점과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찾아보고, 누가 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진실에 가까이 근접했는가를 따져 보는 과정은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
벤담의 공리주의는 개인보다는 사회 전체의 최대 행복(이익) 산출과 이에 부합하는 사회 체계의 구축을 근본 목표로 삼는다. 이런 공리주의는 현실에서 어떤 제도와 법률을 탄생시킬까? 일부 학자들은 『파놉티콘』을 벤담의 공리주의를 현실 문제에 적용한 전형적인 사례로 꼽는다. 파놉티콘의 구상은 벤담의 원전보다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1975년)을 통해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벤담의 『파놉티콘』은 범죄자 수감 시설에 대한 계획이다. 전반부는 그것의 목적과 건축에 대한 설명이고, 후반부는 운영과 관리 방식에 대한 설명이다. 이런 수감 시설의 계획이 공리주의의 구현, 즉 사회 전체의 최대 행복의 산출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벤담이 생각한 감옥은 단순히 범죄자들의 자유를 박탈하여 죄를 응징하는 곳이 아니라, 그들이 근대인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요컨대 산업 혁명과 더불어 발흥한 자본주의적 노동 시장으로 복귀하여 건전한 삶을 다시 영위할 수 있도록 교화하는 곳이다. 이런 시설의 운영에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파놉티콘은 이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 경제적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도모한 최적의 모델로 제안된 것이다. 푸코의 분석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은 파놉티콘을 단지 효율적 감시와 통제의 모델로만 인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의 운영과 관리에서 벤담이 강조한 것은 수감자들의 이익, 즉 그들의 쾌락과 고통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파놉티콘의 구상에서 그의 진의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일체의 선입견이나 기존 지식을 배제하고 접근해야 한다. 벤담과 밀은 모두 ‘고전적 공리주의자’로 분류되지만, 그들에 대한 학자와 대중의 인식은 천양지차다. 범죄자 수감 시설의 구상일 뿐임에도, 『파놉티콘』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감시’와 ‘통제’라는 관념과 단단히 결부시켰다. 이에 반해 『자유론』은 밀의 공리주의를 ‘자유’와 ‘개별성’이라는 관념과 결부시켰고, 그를 근대 자유주의의 아이콘으로 부상시켰다. 물론 이런 인식의 차이가 그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에서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유론』의 테제는 사람은 각자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예외적 상황, 즉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자가 자신의 생각과 취향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설정할 수 있는 개인은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인 이념이다. 그러나 뼛속까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얼마나 될까? 또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에 대한 요구는 때로는 사회 전체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지 않을까? 달리 말해서, 밀의 자유주의는 사회 전체의 최대 행복 산출을 근본 목표로 삼는 공리주의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일부 학자들은 밀이 진정 공리주의자인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마땅히 이런 물음과 의혹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자유론』의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
존 스튜어트 밀은 근대적 개인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려는 마음, 요컨대 자유주의와 공리주의를 결합한다. 이런 결합은 기존 정치 체제와 사회 제도의 중대한 변화에 대한 요구를 함축한다. 『대의정부론』에서 밀은 ‘이상적 정치 체제’ 혹은 ‘좋은 정부’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어떤 정부가 좋은 정부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실은 『자유론』에 이미 들어있다. 인간 행복의 궁극적 기준은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각자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기준의 충족은 당연히 좋은 정부의 필요조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부를 좋은 정부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형태의 정부 혹은 정치 체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밀은 주권 혹은 최고 권력이 국가 구성원 전체에 귀속되는 것을 이상적 정치 체제의 본질적 조건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런 체제를 순수한 의미의 민주주의라고 불렀으며, 지금껏 사람들이 민주주의라고 여겨 왔던 정치 체제는 실상 전체 인민 중 다수파의 이익만을 편드는 ‘특권 정부’에 불과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밀이 『자유론』에서 ‘다수의 횡포’를 비판하는 맥락에도 이미 들어 있다. 『대의정부론』에서도 그는 소수자의 발언권을 강조한다. 참된 민주주의는 소수가 다수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체제이다. 말하자면 『대의정부론』은 『자유론』에서 펼쳐진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의 결합을 정치 체제에 적용한 결과물인 셈이다. 『대의정부론』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밀이 제안하는 정치 체제 혹은 정부의 형태를 오늘날 우리의 정치 체제 혹은 정부와 비교하면서 더 나은 점과 그렇지 못한 점을 따져 보는 것이다. 밀이 생각한 좋은 정부는 “모든 인민이 참여하는 정부”이다. 모든 인민에는 당연히 여성도 포함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여성 참정권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영국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한 것은 1928년이며, 이때 여권 운동가들은 밀이 여성 참정권의 보장을 위해 바친 노력을 잊지 않았다. 『여성의 종속』에서 그는 관습의 억압으로부터 여성의 해방을 역설했을 뿐만 아니라, 하원 의원으로서 보통 선거의 도입을 담은 ‘1867년 개혁 법안’을 지지했고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기 위하여 수정안까지 제출하는 실천적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은 현실에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여성의 해방에 대한 밀의 생각은 일관적이었다. 『대의정부론』에서도,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평등한 보호와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생각도 물론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의 결합의 당연한 결과물이다. 동등한 정치 참여와 교육 기회는 여성들이 자유를 확보하고 그들의 개별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다. 동시에 그것은 공리주의적 목적, 즉 여성들 자신의 더 많은 행복과 인류 전체의 더 많은 행복을 보장한다. 그러나 밀의 생각에서도 시대적 한계와 선입견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종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역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여성은 주로 가사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한계와 선입견을 당시와 오늘의 시각에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그와 같은 한계와 선입견을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발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지향한 성 평등과 오늘날 여권 운동이 지향하는 성 평등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면서 읽지 않는다면, 『여성의 종속』은 어쩌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