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아감벤은 1942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1965년에 시몬느 베이유의 정치사상 연구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과 1968년에 프랑스 남부 토르에서 열린 하이데거의 세미나(각각 헤라클레이토스와 헤겔이 주제였다)에 참석했다. 1970년에 첫 저서인 『내용 없는 인간』이라는 미학서를 출간했고, 1974~1975년에는 런던의 바르부르크 연구소 도서관에서 연구하며 서구 문화에 나타난 말과 환영을 다루는 『스탄체』를 집필했다. 이탈리아에 돌아온 아감벤은 1978년부터 이탈리아판 발터 벤야민 전집을 기획했으며,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벤야민의 미간행 수고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1986~1993년에 파리 국제 철학 학교 프로그램 디렉터로 지내며 당대 프랑스 철학자들(자크 데리다, 장–뤽 낭시 등)과 교류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호모 사케르』 연작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조르조 아감벤의 궁극적인 화두는 다음과 같다. ‘나는 말한다’, ‘나는 산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물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도입한 이후 서구 철학사를 지배한 인간에 대한 정의(언어를 가진 동물, 폴리스적 동물)와 존재 및 운동에 대한 규정(잠재태와 현실태)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아감벤은 이 규정들이 목소리와 말, 동물과 인간, 잠재성과 현실성의 구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에서 배제되면서 포함되는 것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서구 존재론의 토대를 의문에 부친다. 서구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식 문제 틀을 전개하기 위해 아감벤이 내세우는 개념은 언어 경험 혹은 유아기, 삶–의–형태, (비)잠재성의 잠재성이다. 아감벤은 하이데거의 세미나에 참여한 뒤 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고, 발터 벤야민 전집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근본 물음들을 형성했으며, 언어 문제와 관련해서는 로만 야콥슨이나 에밀 방브니스트의 연구를 수용했고, 생명 정치나 철학적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미셸 푸코의 영향을 받았다.
조르조 아감벤을 이해하려면 『호모 사케르』 연작부터 읽기를 권한다. 그 연작이 동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는 만큼, 우리는 사전 지식 없이 그에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감벤의 철학적 물음들을 현실로부터 고립시키지 않고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작의 일환으로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I), 『예외상태』(II-1), 『왕국과 영광』(II-2), 『언어의 성사』(II-3), 『하느님의 사업』(II-5),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III), 『극빈』(IV-1)이 출간되었고, 마지막 권인 『신체의 사용』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 아감벤은 주권 권력이 법질서를 스스로 중단하고 예외상태를 만듦으로써 법적 권리를 상실한 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메커니즘을 다룬다. 9.11 이후 미국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각종 예외 조치들이 시행되고 관타나모 수용소에 강제 구금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그의 책은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아감벤은 법학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호모 사케르(homo sacer) ?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죽여도 되는 신성한 생명 ? 라는 수수께끼 같은 정식에 사로잡혔다. 호모 사케르는 그를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기에 인간의 법으로부터 예외라는 형태를 취하며, 희생물로 바칠 수 없기에 신의 법이나 제의로부터 예외의 자리에 있다. 예외의 어원(바깥에서 포획하다)대로, 호모 사케르는 세속적 영역과 종교적 영역으로부터 배제됨으로써 포함된다. 주권 권력의 기본적 토대는 주권자가 예외상태에서 법을 중지시킴으로써, 다시 말해 주권 스스로를 법의 바깥에 놓고 법과 관련을 맺으면서 호모 사케르를 붙드는 행위에 있다. 주권자와 호모 사케르가 마주치는 이 역설적 공간은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 구별되지 않는 공간이며 이는 정치가 신학의 요소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호모 사케르』 연작의 제목들에서 알 수 있듯 아감벤은 서구 정치의 정치 신학적 토대를 파헤치고 해체하기 위해 애쓴다.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을 보충하는 계보학적 연구인 『예외상태』에서 아감벤은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칼 슈미트)”라는 구절의 의미를 고찰한다. 예외상태 혹은 비상사태를 공포하고, 적법하게 법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행위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각국에서 어떤 법률들을 통해 준비되고 시행되었는지, 그 상태에서 법의 힘은 어떻게 되며, 법과 법의 부재(아노미)는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 오늘날 이 예외상태가 상례가 되어 통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면 이러한 변화가 오늘날 야기한 결과는 무엇인지 등이 이 책의 탐구 대상이다. 아감벤이 각별히 주목한 예외적 공간(법이 중단되고 벌거벗은 생명이 주권과 마주치는 공간)은 나치의 집중 수용소였다. 무젤만이라 일컬어진 철저히 ‘비인격화되고 탈주체화된’ 유대인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가스실에 끌려 들어가 산화됨으로써 자신이 체험한 것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그들로부터 ‘남은 것’은 무엇인지,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 무젤만의 위치에서 증언을 하는 증인들이 말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가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이 던지는 물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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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말마따나 방법에 관한 성찰이 연구 실천에 뒤따르는 것이라면, 우리도 아감벤의 방법론이 적용된 연구 결과(『호모 사케르』 연작)를 일별하고서 방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택해도 좋을 것이다. 『유아기와 역사』와 『사물의 표시』는 조르조 아감벤의 철학 ‘프로그램’과 ‘방법론’을 담고 있다. 특히 『유아기와 역사』의 프랑스어판 서문으로 작성된 「언어 경험/실험」은 그가 자신의 사유의 동기를 고백한 글이므로 한 문장씩 곱씹으며 읽을 필요가 있다. 「유아기와 역사 ? 경험의 파괴에 관한 시론」은 『유아기와 역사』의 핵심 논문이다. 거기서 아감벤은 벤야민의 「경험과 빈곤」을 좇아 오늘날 우리가 진부한 일상 속에서 경험을 만들고 전달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진단한 뒤, 서구에서 ‘경험’이 어떻게 인식되며 의심의 대상이 되어 왔는지를 추적한다. 특히 근대에 들어 경험과 인식의 토대로 가정되는 생각하는 주체(데카르트의 ‘에고 코기토’)란 ‘나는 생각한다’고 말하는 언어의 주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아감벤의 주장이다. 따라서 경험과 주체를 묻기 전에 ‘나는 말한다’가 무슨 뜻인지를 밝히는 것이 과제가 된다. 이 말하는 주체는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어야 하는 것인바, 인간이 언어 활동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 거기에서 은폐되고 박탈된 ‘말 없는 경험(유아기)’이란 무엇인지 아감벤은 묻는다. 이는 인간이 항상 이미 로고스(말)를 가진 동물이라는 전통적 규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문제의식과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 아감벤이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 규정이 과연 자연적인 것인지 묻게 되는 것 사이에 놓인 유비 관계에 주목하자. 또 한 편의 중요 논문인 「시간과 역사」에서 아감벤은 진정한 혁명의 본래적 과제가 세계를 변화시키기에 앞서 시간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순환적이든 선형적이든) 순간들로 이루어진 연속이라는 전통적 시간관념과 결별한 새로운 시간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 그 예로 끊어진 선(그노시즘), 카이로스(스토아 철학), 지금?시간(벤야민) 등이 소환된다. 시간의 중지 혹은 질적 변화를 내세우는 아감벤의 메시아주의 혹은 파국론이 이후의 저작에서 어떻게 발전하는지 살펴보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호모 사케르』 연작은 경탄 못지않게 많은 오해를 낳았다. 사람들은 과연 국가들이 실제로 예외상태를 선포하고 있는지, 우리가 수용소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반문했다. 세간의 오해를 교정하기 위해 아감벤은 자신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물의 표시』다. 거기서 아감벤은 패러다임, 표시, 철학적 고고학이라는 세 가지 방법론적 개념이 본인의 저술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해명한다. 아감벤은 자신이 다룬 여러 형상들을 역사 서술의 대상이 아니라 패러다임으로 다루었다고 밝힌다. 개별 역사 현상들이 범례의 자리로 비껴나면서 그 현상이 속한 전체를 이해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관건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희랍이나 로마의 고전 문헌과 법전에 대한 독해, 성경과 교회사에 대한 문헌학적 분석이 과거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것임을, 사라져 가는 과거의 빛을 포착하는 고고학이야말로 동시대에 진입하기 위한 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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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도래하는 공동체』, 『목적 없는 수단』, 『남겨진 시간』을 읽어 보길 바란다. 이 저서들은 서구 정치 철학의 주요 범주들이나 개념들을 철저히 다시 사유하고자 하는 조르조 아감벤의 문제 틀과 긍정적 대안을 동시에 담고 있다. 연대기순으로 보면 『도래하는 공동체』와 『목적 없는 수단』을 『호모 사케르』 연작보다 먼저 읽는 것이 옳다. 전자는 아감벤의 본격적인 정치 철학 저술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고, 후자는 『호모 사케르』 연작을 준비하는 ‘실험실’로 일컬어지는 책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두 책은 테제와 그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논변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잠언풍의 단편이나 당시의 정황에 대한 시론 형태의 글이다. 이런 문체는 독자의 흥미를 자아내고 각자의 사유를 촉발시킨다는 장점이 있으나, 저자에 대한 섣부른 오해를 낳기도 쉽다. 따라서 실증적 역사 현상에 뿌리를 두고 문헌학적 독해를 통해 개념을 펼치는 아감벤의 주저들을 읽은 다음 위의 책들을 읽는다면 오해도 줄일 수 있거니와 아감벤의 사유를 더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 없는 수단』은 『호모 사케르』 연작에서 다룰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 난민, 인권, 수용소, 경찰의 형상 속에 진입한 주권 등을 예고한다. 독자는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걸프 전쟁이 지성계에 던진 충격 속에서 아감벤이 이 책을 썼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아감벤은 오늘날 일반 의지나 인민 주권이 의미를 상실했고, 행정과 경제에 의한 통치에 지배받게 되었다고 진단하며, 주권자와 통치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도래하는 공동체』에서 아감벤은 새로운 정치 철학의 밑돌을 놓는다. 보편과 특수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임의적 특이성(예컨대 국적, 인종, 성별, 종교 등과 같은 속성을 초월한 존재)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 본질과 실존이라는 존재론적 구분에서 벗어나 자신의 양태와 습성이라는 윤리적 범주에 의거한 정치,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에토스가 전면에 나서는 대표/재현될 수 없는 공간,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의 이행에 붙들린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을 잠재성(비잠재성)’에 머무는 능력에 바탕을 둔 존재 등. 여기서도 아감벤은 서구의 존재론/형이상학의 바탕에 놓인 이분법을 넘어서며 대립되는 범주들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 상태(공통적인 것과 고유한 것, 능동과 수동이 하나가 되는 상태)를 사유한다. 그리고 이것이 노정하는 정치는 그 어떤 주체도 정체성도 요구하지 않기에 철저히 비국가적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도래하는 사유는 국가의 종언과 역사의 종언을 동시에 사유해야 한다. 앞서 추천한 두 저서는 전자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다. 『남겨진 시간』은 사도 바울의 텍스트를 한 줄씩 읽으면서 역사의 종언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독해는 정치적인 것, 역사적 시간의 패러다임으로서 메시아적인 것을 사고하기 위한 것 ? 예컨대 발터 벤야민의 ‘지금?시간’은 사도 바울로의 ‘지금 시간(ho nyn kairos)’의 번역/인용이다 ? 이요, 역사 유물론을 돕는 신학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사도 바울로가 제기한 물음, 즉 메시아적 삶이란 무엇인가? 메시아적 시간 속에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와 관련해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은 곧 우리의 물음이기도 하다는 것이 아감벤의 생각이다. 이 물음에 답하며 아감벤이 내어놓는 개념들(사용, 무능력, 마치 ~이 아닌 것처럼, 카이로스, 무위 등)은 『호모 사케르』 연작의 마지막 권에서 제시될 대안을 선취한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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