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싱숭생숭한 계절입니다. 땡땡이 치고 싶은 계절, 말썽부리고 싶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김행숙의 사춘기는 조금 위험합니다. '한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투명인간이었다. 선일여자고등학교 복도에서 뿌연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이런 공상으로 뭔가를 견디곤 했다. 만약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라고 적은 시인의 말대로 사춘기의 화자는 불만족스럽고, 이 불만족스러움은 시가 됩니다. 바른말 고운말을 하지 않는, 다소 거북스럽고 선정적이게 들릴 수 있는 위악적인 말을 하는 시의 화자는 별안간 뺨을 맞기도 하고, 상대방을 너무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까불대는 풀처럼 명랑'(55쪽)해지기도 합니다. 강풍 부는 봄의 풀잎처럼, '무지의 힘으로 으으으 달릴 뿐'(뒤표지 시인의 말)인 애처롭고 독보적인 김행숙의 습한 사춘기를 소개합니다.
노래하는 시
19쪽
아이들의 악몽은 모퉁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자동차 같아서 피하기가 어려워요. 자동차가 통과해 갔는데 내가 어떻게 콩나물을 사고 두부를 사겠어요? _「울지 않는 아이」
35쪽
이 공장에서 흘러나간 구름이 당신의 검은 머리를 끈질기게 벗겨낸다. 구름은 쉬지 않는다. 한 줌의 머리카락이 매일 저녁 푸른빛이 되어 어디론가 흩어졌다. _「에코」
43쪽
영원히 여자들 품에 안긴 여자애이기를 원했어요. 나는 그녀들의 얘기를 귀에 꽂고 다녔어요. 내 입에서 그녀들이 흘러나와 _「여자들의 품」
50쪽
나는 거대한 여자다. 인간적인 차원의 부피가 아니다. 나는 거의 물이다. 내게 기댄다면 나는 잠시 튜브다. _「당신의 악몽 1」
57쪽
나는 바닥을 드러낸 채 그의 침대에서 너무 오래 기생했다 두께 없는 얄팍한 사랑을 원고지 구기듯이 했네 나는 썼지만 _「문은 안에서 잠근다」
59쪽
완벽한 심장을 생각하는군. 내가 자네 심장인데, 여자에게 자네는 재미없는 책이었을 뿐이네. 남자가 웃기 시작했다. _「三日間」
다음 계절 시집은 5/1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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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서성진, 서효인, 이다혜, 정은숙, 진은영, 하미나, 황인찬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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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김남주, 안희연, 이다혜, 조해진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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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김민정 지음 / 문학동네 김혼비, 서효인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