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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1988년 데뷔작 <키친>에 이어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다. 열아홉 혹은 스물의 여름, 경계에 선 아이들의 눈부신 여름을 특유의 발랄하고 가벼운 필치로 써내려갔다.
병약한 체질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죽음의 그늘에 한쪽 발을 담그고 살아온 츠구미. 누구보다 아름답고 영리하지만 허약한 신체에 갇힌 그녀는, '정말이지 밉살스럽고 괴팍한' 말괄량이로 자란다. 그녀의 사촌 마리아는 그런 츠구미 곁을 지키며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함께 성장해간다.
바나나의 다른 작품들처럼, 마냥 밝아보이는 세계 한편에 죽음의 그늘이 자리해 있다. 마음속에 잠들어있는 끈적한 감정을 내보이지 않은 채, 자기 안의 빛과 어둠을 스스로 떠받치려 애쓰는 영혼의 위태로움. 삶과 죽음-빛과 어두움의 선명한 대비 덕분에 이야기는 더욱더 반짝반짝 빛나고 아스라한 느낌으로 가득찬다.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하늘빛 바다를 배경으로,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만남과 이별, 성장의 이야기이다. '피할 수는 없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은' 헤어짐. 이별마저도 아프지 않게 느껴지는 다정한 어루만짐.
생애 가장 빛나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스며온다. 지금 내 눈앞에 있지만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무엇과, 그에서 비롯되는 작은 불안감. 예민한 감각으로 우리 사이에 떠도는 소소한 감정들을 잡아내는 바나나의 재능이 살아있는 책이다. - 박하영(2003-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