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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021
  • 휴먼카인드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은이), 조현욱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유발 하라리 추천! 인간은 과연 이기적인가?"

    오랜 역사를 가진 논쟁,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에 대답하는 또 하나의 도발적인 책이다. 우선 인간 본성이 왜 중요한가 질문하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이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았으니 짚고 넘어가야겠다. 플라시보 효과와 같은 선상, 반대편엔 '노시보 효과'가 자리하고 있다. 부정적 믿음이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뜻한다. <이기적 유전자>가 전 세계에 날린 홈런으로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통념이 형성되어 있는 이 세계에서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 믿음이 자기 예언적 결과를 가져올 것을 염려한다. 악하지 않은 이들이 서로가 악하다는 믿음으로 인해 재앙을 만든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래서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들을 하나하나 팩트체크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 후 폐허 속에서 사람들은 약탈이나 살인을 일삼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유머를 곁들인 일상을 이어갔다는 것, 훈련된 군인들 중 상당수가 실제 전투에서 인간에게 결코 총을 쏘지 못했다는 것,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고전 <파리대왕>과 비슷한 실제 사례를 찾아냈으나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며 지냈다는 것 등 꼭 맞는 반례들은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기존의 주장이 무너질 때까지 흔들어댄다. 책이 제시하는 촘촘한 근거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의 뇌는 부정성에 깊이 반응하기에, 좋고 선한 것을 믿는 이는 마음씨 좋다는 말은 들어도 명석하단 평가는 받기 어렵다. 부정성에 대한 믿음이 지배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라는 통념 아래에서 홀로 인간의 선함을 조용히 믿고 있던 이들에게 이 책은 기댈 언덕이 되어줄 것이다. "인간은 연대와 상호작용을 갈망하는 존재이다.", "위기의 순간, 인간은 선한 본성에 압도당한다!"와 같은 문장에서 통쾌한 안도감을 얻어 가길 바란다.

  • 내가 되는 꿈
    최진영 (지은이) | 현대문학 | 2021년 2월 "최진영 소설, 모욕이 아닌 내가 되는 꿈"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게 되며 태희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라게 되었다.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희는 어쩐지 애도와 대면하지 못한다. 태희는 대신 모든 걸 미루고만 있다. 회사 일도, 친구 생일 축하도, 산부인과 진료도, 김선우와 헤어지는 일도. 내 시간이되 내 것이 아닌 시간을 되짚으며 태희는 그 시간에 아직 머물러 있을 나를 만나기로 한다. 자신을 두고 싸우던 엄마와 아빠, 자기들에게 안전한 질문만 하던(35쪽) 어른들. 아이들을 차별하던 선생님, 일기에는 쓸 수 없는 '선생님이 뽀뽀하라고 했어요'라는 말. "어떤 일을 겪고 한참 지난 뒤에야 그때 내가 느껴야 했던 건 부끄러움도 자책도 아닌 모욕감이었다고"(90쪽) 되짚는 시간들. 그 시간이 지나야 나는 내가 될 수 있다.

    고통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 고통에게 결코 꺾이지 않던 여성들의 이야기. <이제야 언니에게>,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의 소설로 우리는 최진영을 기억한다. <내가 되는 꿈>을 꾸는 이들은 편지를 주고 받고, 일기를 쓴다. "말은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져도 글자는 남"(86쪽)는다. 쓴다는 일은 그 어느 시간에 아직 머물러 있는 나를, 모욕당하고 잊힌 나를 그대로 바라보고 기억하는 일. "괴팍한 불안이 혼자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고 소설을 쓸 수 있다. 쓰다 보면 견딜 수 있다"(작가의 말)라고 말하는 단단함과 함께 주먹을 꼭 쥐어본다.

  • 마지막 몰입
    짐 퀵 (지은이), 김미정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1년 2월 "우리 뇌의 최고 속도가 궁금하다!"

    영어도 못하면서 무슨 유학이래. 난 내성적이라 잘 안 될 거야. 꿈을 이루기엔 나이가 너무 들어 버렸어. 이 두꺼운 책을 언제 읽는담? 무슨 수로 돈을 모으지? 우리는 타인이나 자신이 부여한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며 매일을 산다.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믿음은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를 하는 상황을 낳는다. 흐름이 답답한 고속도로에 올라탄 기분이랄까. 최고 속도를 지키며 1차로를 정속 주행 중인 차량의 모습, 혹은 속도 제한이 걸린 화물차가 다른 화물차를 추월한답시고 나란히 달리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우리의 뇌가 놓인 상황이 바로 그렇다.

    이제 장소를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으로 옮길 차례다. 그곳은 평소엔 실감할 수 없었던 엄청난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주인공은 우리의 차가 아닌 뇌다. 세계적 브레인 코치인 저자는 뇌의 잠재력을 폭발시킬 '학습 방법의 학습'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의식적으로 기쁘고 즐겁고 호기심 가득한 상태를 유지하는 긍정의 마인드셋, 'FASTER'로 명명한 여섯 가지 학습 기법 등 '가속 학습'을 위한 여러 방법들을 소개한다. "자신의 한계를 자꾸 생각하면 한계는 유지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말과 함께.

  • 왜소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은이), 이혁재 (옮긴이) | 재인 | 2021년 1월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계 뒷이야기를 파헤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대환장 웃음 시리즈' 4권으로 돌아왔다. 미스터리에 집중하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1995년 시리즈 첫권 <괴소 소설>을 발표하며 유머 소설 장르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그의 사회파 미스터리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꿰뚫는 비판이라면, 그의 유머 소설 시리즈는 부조리를 극대화하여 웃음을 유발한 후에 남은 씁쓸한 뒷맛을 곱씹어보게 하는, 더욱 신랄한 비판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제목의 '왜소'는 '비뚤어진 웃음'. 냉소나 쓴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의미한다. 소설은 ‘규에이 출판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열두 편의 연작으로 담았다.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만들어 소개하고 싶다는 신입 편집자의 초심을 닳게 만드는 베스트셀러 숭배 문화, 편집자와 작가 사이의 어렵고도 미묘한 관계, 출판사 내 문예지 담당팀의 고초, 신설되는 문학상을 둘러싼 출판사와 작가의 암투 등, 출판계 내부의 시선으로 한 권의 책 뒤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파헤쳐 풍자했다.

3.52021
  • 휴먼 네트워크
    매슈 O. 잭슨 (지은이), 박선진 (옮긴이) | 바다출판사 | 2021년 2월 "네트워크로 분석하는 인간사"

    인스타그램의 제패 이후 잠잠하던 SNS 시장에 파격적으로 등장한 클럽하우스는 꽤나 시끌시끌한 말들을 몰고 다녔다. 이 SNS의 자극적인 마케팅 포인트는 알다시피 '초대권'을 받아야만 입장할 수 있다는 것. 당근 마켓엔 초대권을 100만 원에 내놓은 게시글이 올라와 화제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클럽하우스에 빨리 입성하고자 한 이유가 단지 새로운 문물을 향한 열망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간 여러 SNS 들에서 먼저 터를 잡은 사람들이 인플루언서가 되어가는 모습은 새로운 판에서 재빨리 승기를 잡아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모종의 가르침이었다. 역사상 네트워크는 언제나 중요했다. 그렇지만 SNS가 인간사의 모세혈관까지 침투한 지금 시대만큼 개개인이 그 중요성을 뚜렷이 인식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복잡하게 얽힌 이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총량이 커져가는 지금, 시의적절한 책이 나왔다.

    왜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은 그리 큰 영향력을 가지는가, 왜 많은 학부모들은 대치동과 목동 모임에 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가, 왜 팔로워와 좋아요, 구독자 수를 늘리려 애쓰는가. 인간 네트워크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이 책은 실증적인 데이터와 네트워크 모형으로 답한다. 네트워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인간 네트워크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영향력이 서로 다른 이유, 인간의 동종 선호 성향, 전염병과 금융위기가 퍼지는 형태, 불평등이 복지 정책만으로 좁혀지지 않는 원인 등 여러 주제에 대해 논리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경제 이론에 더해 사회심리적 측면까지 고려한 분석은 흥미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인간 관계가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지 호기심을 가져본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정재승 교수는 "인간 사회 네트워크에 관심 있는 당신이 단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을 집어야 한다."라며 강력 추천했다.

  •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허새로미 (지은이) | 봄알람 | 2021년 2월 ""가족을 떠난 뒤 비로소 삶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가족이잖아." "남는 건 가족뿐이다." 이 흔한 말 대신, "가족을 떠난 뒤 비로소 삶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하는 한 여성이 있다. 남동생과는 다른 말을 들으며, 다른 일을 겪으며 살아온 30여 년의 삶. 딸이 겪는 가족은 아들이 겪는 가족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에 가족을 떠났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을 펴낸 저자 허새로미는 봄알람 출판사에서 새롭게 기획한 에세이 시리즈 '출구 총서'의 첫 책을 통해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일상의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기 위해 원가족과 단절한 뒤 비로소 진짜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한 담담한 기록이다. 혼자가 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수많은 벽 앞에서 스스로 출구를 찾아 선택한 삶이 어떠한지, 소중한 개와 함께하는 삶은 어떤 의미인지, 삶의 의미와 힘이 되어주는 여성들과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등 다부진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 세트 - 전2권
    김학렬 (지은이) | 한빛비즈 | 2021년 3월 "부동산의 미래에 교양을 더하다"

    유명 저자의 부동산 책을 받아 들면 가장 먼저 내가 사는 지역이 있는지부터 살피게 된다. 투자나 이사를 고려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도 아닌 경기도에 살면서 말이다. 처음엔 직업병인가 했지만 의외로 많은 지인들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우리 동네는 집값 안 오르는 것만 빼면 살기엔 너무 좋은 동네'라고. 그러니 책에 소개되면 괜히 뿌듯하고 없으면 왠지 서운하다. 그런 관점에서만 보자면 이 책에 섭섭해할 독자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8곳, 인천 포함 경기권 32개의 시/군 중 6곳만 소개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어느 부동산 책에나 언급되는 강남, 용산, 판교 등을 말하지 않고, 분당, 일산, 광명 등 신도시 이슈를 과감히 덜어 낸 것은 역시 최고의 입지 전문가다운 면모랄까. 결과적으로 책은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지역에 오롯이 집중한 모습이다. 한 동네의 역사적 배경부터 거주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특색과 분위기 그리고 개발 이슈와 호재까지, 이 책은 내 집 마련이나 부동산 투자의 관점을 넘어 상식과 교양으로 알아 두면 좋은 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다. 살기 좋은 동네가 이렇게나 많다니.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선택지를 손에 쥐게 되었다. 우리 동네가 될지도 모르는 그곳을 찾아, 미래지도를 펼쳐 본다.

  •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천선란, 박해울, 박문영, 오정연, 이루카 (지은이) | 허블 | 2021년 3월 "우리를 담기엔 이 별이 너무 좁아서"

    1908년 3월 8일,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미국의 노동자들이 궐기했다. 1975년 UN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그리고 2021년, 상상력을 펼치기에 지구가 너무 좁은 다섯 명의 여성 작가가 행성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함께 엮었다. 여성과 우주가 만난 SF 앤솔러지. 한국과학문학상 등을 수상한 천선란, 박해울, 박문영, 오정연, 이루카가 함께한다.

    휴머노이드 기술로 설계된 '양로행성'에서 노년의 삶을 평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가급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노년을 보내길 바라는 현재의 내겐 오정연의 <남십자자리>라는 소설이 특히 인상깊게 읽혔다. 결혼, 사별, 양육 등을 거친 후 마지막 직업인 육아 도우미까지 무사히 완수한 할머니 '해리'는 적절한 심사를 거쳐 '양로행성'으로 이주한다. 한편 해리가 육아 도우미일 때 기른 아이인 여성 노동자 '미아'는 이제 양로행성 휴머노이드 유지보수 관리 팀장이 되었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메인보드가 고장난 PC와 같은 취급을 받아도 되는가, 내가 사랑하는 '해리'가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가,를 두고 '미아'는 윤리적 딜레마에 부딪친다. 부추를 쫑쫑쫑 양파를 쫑쫑. 해리의 만두 레시피가 미아에게 전수되고. 달, 달, 무슨 달, 미아 같이 예쁜 달, 하며 함께 부르던 노래가 선명하다. 이 효율적이지 않고 아름다운 기억은 사라져도 되는 걸까. 이 다정한 유닛은 '품위 있는 선택'으로 이 어려운 질문에 대답한다. 어디서든 여성 그 자신으로 존재할 멋있는 여성들을 상상하는 빛나는 이야기가 질문을 던진다.

3.92021
  • 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은이) | 토스트 | 2021년 3월 ""결혼은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다""


    임경선 작가는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다종의 에세이를 성실하게 지어왔다. 그리고, 펴낸 에세이마다 작가만의 분명한 색깔과 메시지를 담았다. <엄마와 연애할 때>에서는 결혼을 망설이고, 출산을 걱정하고, 육아에 지쳐있는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가장 임경선다운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정한 구원>에서는 리스본에서 보낸 한 시절을 추억하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딸에 대한 사랑을 들려주었다. 앞선 두 권처럼 가족에 관한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새롭게 펴낸다. 이번 새 책은 20년간 함께 살아온 '그'와의 결혼생활에 관한 기록이다.

    만난 지 3주 만의 청혼, 석 달간의 연애, 그리고 20년간의 결혼생활. 과연 작가에게 결혼이란, 결혼생활이란 어떤 의미일까. <평범한 결혼생활>에서 결혼생활이란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사는 일'이며, 결혼이란 '불안정'의 상징이라는 허심탄회한 그의 대답을 듣는다. 이 책은 결혼에 관한 교훈이나 지침 같은 건 없다. 부부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들려주지도 않는다. 결혼과 결혼생활을 둘러싼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한 삶의 이야기이자, 단맛과 쓴맛과 신맛을 모두 담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 절대 배신하지 않는 공부의 기술
    이상욱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2월 "노력의 가성비를 높여라!"

    운일까 노력의 결실일까. 아니면 다른 요인 때문일까. 무엇이 성공을 부르는 핵심 요인인지에 대한 물음은 인류가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여겨진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실패를 훌훌 털어 버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은 노력해도 안 되더라는 좌절과 배신감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성공한 사람이 들려주는 노력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럼에도 노력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가 있다. 현직 의사이자 랜선 공부 멘토로 활약 중인 저자 '긍정에너지토리파'다.

    문제는 그 노력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간의 노력이 적절하고 효율적이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노력의 가성비를 높일 것을 주문하며, '1/4/7/14 공부법' 등 자신이 오랜 공부 끝에 터득한 공부의 기술들을 아낌 없이 소개한다. 시간 탓, 환경 탓, 내 탓에서 벗어나 자기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멘탈과 태도의 중요성을 역설함은 물론이다. 저자는 남들보다 머리가 좋아서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거라면 공부법을 나누는 유튜브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우리의 공부를 도울 그 노력의 결실과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깊은 밤 필통 안에서
    길상효 (지은이), 심보영 (그림) | 비룡소 | 2021년 3월 "제10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꽝 없는 뽑기 기계>, <한밤중 달빛 식당> 등으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 온 비룡소 문학상의 10회 수상작. 새 학기에 가장 신나는 일은 새로운 학용품을 장만하는 일일 것이다. 미국에서 온 매끈한 연필, 무지개 연필, 돌고래가 달린 연필 같은 학용품을 가지런히 정리해 필통에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뾰족한 연필로 꾹꾹 자신의 이름을 적거나 받아쓰기를 하고 일기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할 말도 없는데 일기를 써야 하는 연필은 죽을 맛이다. 담이가 깊은 잠에 든 밤이면 연필과 샤프와 지우개와 색연필은 "일기 좀 안 쓰고 살 수 없을까?" 투덜 댄다. 동시를 쓰는 것도 어렵고 받아 올림 있는 곱셈도 어렵기만 하다. 담이는 이런 필통 안의 일을 알 턱이 없다. 그래도 담이가 모르는 담이의 연필 친구들은 담이가 더 즐겁게 일기를 쓰고 쉽게 수학 문제를 풀길 응원한다. "일기장이 꽉 차게, 대문짝만한 글씨로, 정, 말, 신, 났, 다!"라고 말이다.

    모든 어린이들의 필통 안이 들썩들썩, 즐거움으로 가득 차기를. 모든 일기장이 행복한 이야기로 가득 차기를!

  • 네 명의 완벽주의자
    이동귀, 손하림, 김서영 (지은이) | 흐름출판 | 2021년 2월 "완벽주의의 단점 떨쳐내고 장점 강화하기!"

    이 책은 완벽주의에 관한 내용이고, 오해를 막기 위해 성급하게 말해보자면 강박에서 벗어나라고만 외치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일단 독자분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으니 이제 찬찬히 소개해보겠다. 완벽주의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인상은 스스로를 괴롭히고 내면을 갉아먹는 모습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를 불행한 완벽주의라고 하는데, 이와 달리 행복한 완벽주의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완벽주의란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잘 이용하여 삶의 전반에 활력과 성취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태다. 책은 무턱대고 강박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대신, 불행한 완벽주의를 잘 다듬어 행복한 완벽주의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안내한다.

    완벽주의를 다듬기 위해선 우선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책은 완벽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크게 네 갈래로 분류한다. 그리고 각 성향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행복한 완벽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한다. 두루뭉술한 방향이 아닌 구체적 액션플랜을 제공하기에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이 방법들을 실행하며 스스로를 다잡기에 적절하다.

    한국인 2명 중 1명은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책엔 완벽주의 자가 진단 검사표가 있으니 한번 체크해보길 권한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마음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들거나 실수에 대한 불안이 크고, 예전에 망친 일에 대해 과도한 후회의 감정이 드는 일이 잦다면 책을 통해 위안과 해방의 실마리를 얻길 바란다. 2018년, 시그나 그룹에서 실시했던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스트레스 지수가 조사대상 23개국 중 1위였다. 2021년인 지금도 그때와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모두들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다.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행복한 일상으로 연결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3.122021
  • 환한 숨
    조해진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누구도 당신 이상을 해낼 수 없었을 거라고"

    조해진의 여섯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에서 <단순한 진심>까지의 나아감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이 나아간 자리가 '이곳'이라는 사실에 우선 마음을 빼앗길 듯하다. 조해진의 소설은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호명한다. 동창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돌보고 그의 재산 일부를 맡게 된 호스피스. 조기 취업을 나간 제자의 힘들다는 말에도 더 버텨보라는 말만 했던, 재계약 불발을 앞둔 특성화고 기간제 교사. 늘 환하지 않은 곳을 두드리던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머무르는 이들은 "자신의 삶에는 타인의 호기심이나 애틋한 관심을 받을 만한 사연이 없다고 생각" (<환한 나무 꼭대기>, 28쪽)했을 법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느끼는 쉽사리 말해지지 않는 감정들. 외로움, 고통, 모욕감.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아야 했던 시절"(<흩어지는 구름>, 50쪽)에 대한 기억. 혹은 "저마다 비슷한 무게로 절박했을 그들의 염원을 고유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그 염원의 안쪽에 펼쳐진 개개인의 고통을 절대적으로 동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환한 나무 꼭대기> 26쪽) 에 대한 자문. 혹은 "그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던 모욕감은 눈송이 같은 입자의 형태를 띄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숨> 94쪽)라고 그려지는 구체적인 모양새. 조해진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감히 그들에게 말한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누구도 그 이상을 해낼 순 없었을 거라고......" (<흩어지는 구름> 69쪽)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한 소설은 작가의 자전소설이기도 한 <문래>. 이 소설이 말하는 '상처'에서 나는-우리는 나의-자신의 상처를 본다. "그 방이 저에게 새겨 넣은 상처가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는 것을요."(290쪽)라고 말하는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그 상처 없이는 우리의 '문학적인 삶'도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위로하지 않음으로써 위로하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소설집을 사랑하게 된 입장에서, 차례로 배치된 소설을 아껴 읽으며 아홉 편의 소설이 실린 이 소설집이 끝나지 않길 바랐다. 어떤 소설은 그 소설을 만난 이후의 삶을 다른 모습으로 만든다. 조해진의 이 소설들은 그런 유형의 소설이다.

  • 전국축제자랑
    김혼비, 박태하 (지은이) | 민음사 | 2021년 2월 "김혼비X박태하 부부의 유쾌한 지역 축제 여행기"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김혼비 작가와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 박태하 작가가 공동으로 작업한 책 <전국축제자랑>이 출간되었다. '전국축제자랑' '김혼비.박태하'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데, '지금까지 이런 여행기는 없었다' 이 한 문장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든다. 이 책을 일단 집기만 하면 읽어내는 것은 시간문제다.

    의좋은형제축제, 음성품바축제, 젓가락페스티벌, 완주와일드푸드축제, 지리산산청곶감축제. 충남 예산에서부터 경북 산청에 이르기까지, 이상하고 아름다운 지역 축제를 경험한 부부 작가가 때로는 각자가 느낀 바를, 때로는 함께 바라본 것들에 대해 엄청난 유머를 장착하고 풀어낸다. 글 잘 쓰고 유머러스 하기로 소문난 두 작가가 함께했으니, 그 시너지는 실로 대단하다. 생생한 축제 현장의 풍경과 경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감연구회'라는 단체가 있고, 전국을 다니며 연싸움을 하는 이들이 있고, 품바에 위로받는 팬들이 있고, 썰렁한 관객석 앞에서 열창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이 있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애쓰는 사회자들이 있다. 두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취향과 노력이 이뤄낸 지역 축제의 세계와 경험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살뜰히 전하면서 정말이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애틋한 마음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 이 책은 김하나 작가와 박연준 시인의 추천대로다. "너무나 웃기고 가차 없으며" "두세 페이지에 한 번씩은 웃게 되리라"

  • 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지은이), 함규진 (옮긴이) | 글항아리 | 2021년 3월 "우리, 인간의 마음으로!"

    평소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을 챙겨 보는 편이다. 실제 사건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같은 인간이 저지른 일이라고는 상상하기도 싫은 그 역사적 비극 앞에 늘 마음 한구석이 침울해지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히틀러의 반대편엔 스탈린이 있었고, 스탈린이 저지른 대량학살은 히틀러에 맞먹는 규모였다. 그렇게 히틀러와 스탈린의 만행으로 살육당한 사람이 무려 1400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우리를 또 다른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전사한 병사는 한 명도 없었고 대부분 여성, 어린이, 노인이었다. 그들의 절반은 식량을 배급받지 못해 굶어 죽었다.

    ‘블러드랜드’라 불리는 독일과 소련 사이 지역의 수많은 희생자들은 나치와 소련의 철저한 살육 정책에 의해 학살당했다.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정치적 대량학살의 전모를 드러낸다. 그는 10개 언어로 된 16개의 기록보관소에서 찾은 막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어둠 속에 감춰졌던 블러드랜드의 역사에 불을 밝히고, 그런 만행이 가능했던 체제와 사회를 분석한다. '희생자는 애도자의 뒤에 가려져 있고 살육자는 숫자들 뒤에 숨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그 죽은 이들의 숫자를 하나하나의 이름과 삶으로 되돌려 놓는 가슴 벅찬 작업이다.

  • 아르센 벵거 자서전 My Life in Red and White
    아르센 벵거 (지은이), 이성모 (옮긴이)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3월 "아르센 벵거, 위대한 감독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직접 밝히다!'

    축구계의 아이콘이자 전설적인 감독, 아르센 벵거의 첫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그간 몇 권의 책들이 아르센 벵거의 성공과 그의 업적을 책으로 정리해 내놓았지만, 아르센 벵거 자신이 직접 본인의 삶과 커리어를 반추하여 기록한 책은 현재로선 이 책이 유일하다. 그만큼 그를 사랑했던, 그리고 축구를 사랑했던 팬들에겐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가 없다.

    프리미어리그 최초의 49경기 무패 기록과 115년 만의 무패 우승을 달성한 감독, 비영국인으로서 프리미어 리그에 당당히 입성해 축구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감독, '감독은 항상 혁신가여야 한다.'고 말한 아르센 벵거 감독의 '진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나보자. 나는 잘 모른다. 축구를 그리고 아르센 벵거를. 그런데 알고 싶어졌다. 그의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 그의 어록으로 축구 문외한인 나의 프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떤 팀도 경기마다 매력적이고 환상적일 수 없다. 하지만 팬들에게 보내는 내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행복해지자.'

3.162021
  • 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편혜영이라는 숲이 당신을 초대할 때"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 속의 한 장면. 옆집과 우리집 사이엔 어림잡아 삼천 평은 되는 것 같은 무성한 옥수수밭이 있다. 이웃과의 거리는 그 옥수수밭의 면적만큼 멀다. 옥황상제를 모셔야 한다는 전도사와 이런 골짜기 외딴집은 위험성 측면에서 단독주택이 아니라 길거리로 보는 편이 낫다고 비싼 가격의 보안 용품 설치를 권유하는 보안 업체 직원들이 가끔 이 집을 찾는다. "아아악." (<어쩌면 스무 번> 20쪽) 고즈넉한 교외의 풍경을 깨트리는, 느닷없이 내질러진 비명처럼 그렇게 서스펜스는 존재한다. 조금 더 일상적인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은 편혜영이라는 숲의 풍경. <홀>로 셜리잭슨상을 수상하기도 한 편혜영의 여섯번째 소설집.

    정교하고 경제적인 문장은 한 단락만으로도 우리를 그 숲으로 초대한다. "어찌보면 나는 줄곧 그런 사람한테 끌렸던 것 같아요.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 지금의 삶이 힘들어서 다른 삶으로 건너가려는 사람들." (소설가 손보미와의 인터뷰 <어쩌면, 편혜영> 中) 이라고 말하는 작가 편혜영은 부정하고 불의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수치스러워하는 사람들을, 궁지에 몰린 후 '시골' 같은 낯선 곳에서 또 다시 삶을 세우려는 사람들을 선택해 그들의 앞에 갈림길을 내민다. 각 단편이 마무리되는 순간, 그 가차없는 마지막 문장 이후 남은 뒷맛을 바로 보내기가 아쉬워 몇 번이나 쉬어가며 소설집을 아껴 읽었다. 그들의 삶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제 편혜영의 서스펜스는 죽음의 공포가 아닌 삶의 영속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지독한 그 일상을 본다.

  • 여성, 정치를 하다
    장영은 (지은이) | 민음사 | 2021년 3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여성 정치인 21명의 여정"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이들에겐 정치와 생활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 책엔 여성 정치인 21명의 삶이 들어있다.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다. 굳센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다.

    '삐삐'를 탄생시킨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풍자 소설로 집권당을 비판했고 독일의 미술가 케테 콜비츠는 나치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모으는 일에 앞장섰으며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여성의 투표권을 주장하며 달리는 말 앞에 몸을 내던졌다.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는 나무를 심는 환경 운동가에서 직업 정치인이 되었고 시몬 베유는 임신 중단을 합법화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목소리를 냈지만 비난과 조롱에 꺾이지 않고 끝까지 걸었다는 점에서만큼은 모두 같다. 저자는 애초 집필의 목적과 상관없이 이들의 이야기를 모으며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한 명의 독자로서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 용기가 번져나가 또 다른 여성 정치인들을 탄생시키길 바란다. 몫 없는 이들이 자신의 몫을 모두 되찾을 때까지.

  • 유다
    아모스 오즈 (지은이), 최창모 (옮긴이) | 현대문학 | 2021년 3월 "유다는 과연 배신자였을까?"

    '배신'이란 무엇인가.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혀왔던 히브리 문학의 거장, 아모스 오즈의 생을 관통하는 이 물음은 그가 남긴 마지막 소설 <유다>의 뿌리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세계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 아랍 국가와의 공존과 평화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라 비난받았지만, 집필을 계속하며 침묵하지 않았던 작가의 삶이 소설 전반에 드리워져 있다.

    소설은 역사 속 두 명의 '배신자'를 호명하여 숨결을 불어넣는다. 예수의 제자 '가룟 유다'와, 아랍인과 유대인이 공존하는 세상을 염원한 지식인 '쉐알티엘 아브라바넬'. 배신자라는 낙인이 덮어버린 이들의 삶 속 무수한 부분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면서,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배신이란 오직 선택지가 둘뿐인 이분법적 세계에서만 가능한 단어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찢긴 세계를 잇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오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소설 속 대사가 여전히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를 혐오하는 사람들 눈에 언제나 배신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어요."

  •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박서련, 김현, 이종산, 김보라, 이울, 정유한, 전삼혜, 최진영 (지은이), 무지개책갈피 (엮은이) | 돌베개 | 2021년 3월 "여덟 빛깔의 사랑, 청소년 퀴어 로맨스 소설집"

    사랑하는 마음에 대하여. 한국문학의 현재이자 미래, 박서련·김현·이종산·김보라·이울·정유한·전삼혜·최진영(수록순) 여덟 작가의 소설이 모였다. "우리는 어째서 사랑을 할까?"라는 질문에 "비는 왜 내릴까?"라고 대답하는 마음, "오늘 집에 같이 갈래?"라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마음, "사랑은 절대 나쁜 짓이 아니"라고 혼자 되뇌는 마음. 사랑의 다양한 순간들과 마음들이 소중히 포착되어 소설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를 손에 든 청소년들이 있는 그대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의심하거나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껏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므로. 또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 사회에 발걸음 할 때에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소개할 때 퀴어 로맨스라는 별도의 장르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세상이기를 바라본다.

3.192021
  • 정원의 쓸모
    수 스튜어트 스미스 (지은이), 고정아 (옮긴이) | 윌북 | 2021년 3월 "식물 가꾸는 정신과 의사가 밝히는 식물의 힘"

    삭막한 마음 돌볼 길 몰라 헤매고 있다면 식물을 가꾸어 보는 것이 어떨지 조심스레 권유해본다. 초록이 마음에 평화를 주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은 그보다 더 확실한 도움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30년간 정원을 가꿔온 정신과 의사다. 그는 식물에게 삶을 바꾸는 치유력이 있다고 단언한다.

    책은 식물을 가꾸는 일이 정신의학적, 심리학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가드닝을 '파괴 행위'와 연결하는 것이다. 잡초 뽑기, 가지치기 같은 파괴적인 행위엔 인간 본성을 치유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땀 흘리고 몸 움직이며 노동한 결과가 식물의 성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자기 존중감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식물 가꾸는 일의 긍정성에 대한 간증과 과학적 뒷받침으로 빼곡하다. 푸릇한 새싹 이미지와 흙냄새를 상상하며 읽다 보면 원예를 향한 찬양에 저항 없이 설득당한다.

    삶은 매일 더 복잡해지고, 세상을 따라잡으려 꾸역꾸역 살다 보니 속은 자주 만신창이가 된다. 책에서도 말하듯 이 사회는 "돌봄을 폄하"하지만, 잘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과 서로를 돌보는 능력이라는 것을 우린 이미 알지 않나. "땅을 가꿀 때는 세상을 향한 돌봄의 태도도 가꾸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돌봄이 울창한 숲이 되면 세상은 조금 더 안전한 곳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어봐도 될까.

  •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이승희 (지은이) | 폭스코너 | 2021년 3월 "시인과 식물 사이의 시간과 이야기"

    봄은, 초록 같은 것, 그리고 그 초록의 빛깔과 기운으로 누구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산뜻한 계절에 발맞춰 식물, 정원에 관한 좋은 책들이 한 권 또 한 권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 한 시인의 이야기이자 시인과 식물 사이의 시간에 관한 기록의 책을 독자들에게 건넨다.

    이승희 시인이 그의 첫 산문집으로 알록달록하면서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초록의 이야기를 펴냈다. 식물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작정하고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한 후 새로운 식구를 들이기도 하며 여러 모양의 반려식물과 동거동락한다. 시인은 식물을 키우는 법이나 식물을 만지고 가꾸는 재주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식물에게 시를 읽어주고, 비오는 날이면 비를 맞히고, 라디오를 함께 들으며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인이 초록의 진심을 담은 언어로 써내려간 산문을 읽다 보면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와 다독이고 보듬어준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식물처럼, 그렇게 가만히 가만히.

  • 초등 수포자로 빠지지 않는 수학약점 공략법
    송재환 (지은이) | 글담출판 | 2021년 3월 "송재환, 수학약점이 초등 수포자를 만든다!"

    20년 넘게 초등 교사로 재직하면서 <초등 고전읽기 혁명>, <초등 1학년, 수학을 잡아야 공부가 잡힌다> 등의 저서로 학부모와 만나온 송재환 선생님 신작. 수학은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공부하는 과목이지만, 싫어하거나 어려워하거나 아예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가장 많은 과목이다. 1학년 수학은 너무 쉬웠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수학은 모든 영역과 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어느 한 부분에서 제대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부분이 점점 약해지고 커져서 큰 약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저학년에서 틀린 한두 문제가 나중에는 엄청난 점수 차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약점은 대부분의 아이에게 공통으로 보인다. 학년별로, 작년의 아이들이 어려워했던 부분은 올해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작년의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배운 내용은 올해도 수월하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수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과서를 분석하여 수학약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학년별, 영역별로 아이들이 쉽게 빠지는 약점들을 소개하고 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구체적인 사례와 상세한 설명이 있어, 아이들만큼이나 수학이 두려운 부모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서미애 (지은이) | 엘릭시르 | 2021년 3월 "<잘 자요, 엄마> 후속작, 서미애의 귀환"

    2018년작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으로 미스터리 독자의 환대를 받은 서미애의 2021년 최신작. 전 세계 16개국에 수출되며 세계의 미스터리 독자가 함께 읽은 작가의 대표작인 <잘 자요, 엄마>의 '하영'이 돌아왔다.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전작의 열한 살 하영은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다. 연쇄살인범 이병도와의 사건 이후, 꾸준히 상담을 받고 있지만 하영의 새엄마인 '선경'은 여전히 하영을 경계하고 있다. 하영 역시 가끔 제 안에 있는 것을 느낀다. 하영은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 계속 자신을 괴롭힐 것 같'(193쪽)아서 뱀을 향해 칼을 뻗을 수 있는 아이. 전학을 하게 된 학교에서 하영은 '유리'의 사건과 얽히게 된다. 그렇게 하영은 학교폭력과 만난다.

    "트릭보다는 범죄 심리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작가 서미애는 하영의 내면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직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미성년'인 하영에겐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인간이 될지, 집중한 독자의 손과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개연성 있게 잘 읽히는, 이 책을 선택한 독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이야기가 미덕. "수많은 범죄자의 마음을 분석했지만, 가장 들여다보고 싶은 인물이 이 소설에 있다."는 말로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추천했다. 총 3부로 구성될 '하영 연대기'의 두 번째 이야기. 성인이 된 하영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3.232021
  • 우리는 안녕
    박준 (지은이), 김한나 (그림) | 난다 | 2021년 3월 "시인 박준의 첫 시 그림책"

    "안녕은 그리는 거야.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하는 거야."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시인 박준이 서양화가 김한나 작가와 함께한 시 그림책. 시인의 아버지가 키우는 개 '단비'와 어느 날 단비 곁으로 날아든 새의 이야기이다. '안녕'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품은 한 편의 시(詩)와 같다. 만남도 안녕(hello), 헤어짐도 안녕(good-bye), 오늘도 안녕(peace). 단비와 새가 만나는 안녕, 안녕은 처음 하는 말이다. 친구가 되고, 서로를 알아가는 안녕은, 같이 앉아 있고, 혼자를 뛰어넘고, 등 뒤에서 안아주는 말이다. 그리고 헤어짐의 안녕, 안녕은 차곡차곡 모으는 마음이고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사계절이 변화하는 그림 속 단비와 새의 모습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박준 시인의 '안녕'을 바라보면, 다정하고 그립고 아련한 마음이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른다.

  • 에스에프널 SFnal 2021 세트 - 전2권
    테드 창, 켄 리우, S. L. 황, 그렉 이건, 캐롤라인 M. 요킴, 말카 올더, 앨리스 솔라 김, 한쑹, 엘리자베스 베어, 소피아 레이, 폰다 리, 치넬로 온왈루, 반다나 싱, 토비아스 S. 버켈, 찰리 제인 앤더스, N. K. 제미신, 프랜 와일드, 인드라프라미트 다스, 피터 와츠, 리치 라슨, 아닐 메논, E. 릴리 유, 카린 티드베크, 알렉 네발라리, 수전 파머, 수이 데이비스 오쿵보와, 테건 무어 (지은이), 조너선 스트라한 (엮은이), 김상훈, 장성주, 박중서, 이동현 (옮긴이) | 허블 | 2021년 3월 "매년 세계 최고의 신작 SF를 한 권으로 만난다"

    테드 창, 켄 리우, N. K. 제미신… 당신이 손꼽아 기다린 주요 작가의 최신작뿐 아니라,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진 작가의 중단편을 매년 한 권의 책으로 맛볼 수 있다면 어떨까. <올해의 SF 걸작선(The Year's Best Science Fiction)>의 한국어판 출간으로 우리는 새로운 매체를 얻게 되었다. 한 작가가 발표하는 단편이 모여 단행본으로 묶일 정도의 분량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따끈따끈한 작품들을 독자와 바로 만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다.

    SF는 사람들이 '현실'이라 말하며 순응하는 모든 것 너머의 세상을 제시하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SFnal>이라는 제목은 'SF'와 '-nal(-적인)'의 단어 조합으로 이뤄져, 'SF적인 것'에 대한 작가들의 질문 혹은 정의을 담아내고자 했다. 가장 빠르게 한 권의 책으로 우리의 손에 도달하는 <SFnal>과의 만남이 독자의 일상을 제약하는 크고 작은 단단한 틀을 부수고 이제껏 닿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이끌 것을 기대한다.

  •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지은이), 김영현 (옮긴이) | 다다서재 | 2021년 3월 "두 여성 학자가 주고받은 병, 죽음, 운명에 관한 편지들"

    말 한마디도 얹기 어려운 책이 있다. 초연하게 분석하기엔 책을 읽은 후의 감정이 아무래도 식지 않아서다. 이 책은 평생 '우연'을 연구하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질병과 죽음, 확률과 선택의 문제를 고민해온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가 나눈 편지의 모음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들은 질병, 죽음, 우연, 운명, 불운, 불행에 대한 생각들을 나눈다. 마키코는 죽음으로 향하는 중에도 단정하고 꼿꼿하며 마호는 함부로 위로하지 않되 다정하고 사려 깊다. 이들이 나누는 아름다운 대화가 분명하고 따스하게 졸졸 흐른다. 책을 읽는 동안 무수한 감정이 끓었다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그것들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책은 내 옆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라는 예감만이 확실하다.

  • 대전환의 시대
    짐 로저스 (지은이), 송태욱 (옮긴이) | 알파미디어 | 2021년 3월 "거장의 경고에는 이유가 있다"

    2020년 3월 19일. 코스피는 1457.64로 마감하며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 후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간의 가파른 회복세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시의 위기 상황을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정체기를 맞은 지금, 서서히 현금 비중을 늘리며 변동성에 대응하자는 신중론부터 사상 최대의 버블 붕괴가 온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또 다른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후자, 즉 세계 증시의 과열 양상에 우려를 표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1964년 월가에 첫발을 디딘 이후 오일 쇼크, 블랙 먼데이, 아시아 외환위기,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의 굵직한 사건들을 투자의 최전선에서 모두 겪어 낸 그다. 잦은 미디어 출연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그를 한물간 노인으로 희화화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그의 투자 조언과 시장 전망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당장 내일모레 버블이 붕괴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위기 상황을 버텨 낼 투자 전략이 있는가? 15년 뒤에도 변함 없을 안전자산은 무엇인가? 그 힌트가 이 책에 있다.

3.262021
  •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이연 (지은이) | 미술문화 | 2021년 3월 "그림 유튜버 이연, 그림을 향한 진심"


    과연 내가 그림을 그려도 될까? 그림을 처음 시작하는 이도, 그림을 오래전부터 그려온 이도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2년 만에 독보적인 미술 크리에이터로 성장한 이연, 그의 첫 책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에서 작가의 진솔한 생각을 듣는다.

    그림 그리는 기술과 추천 그림 도구, 선의 이해와 색의 사용 등 실용적인 정보를 기본적으로 담고 있지만, 이 책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점은 그림을 그리는 마음, 창의적인 일을 지속하는 자세,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힘에 있다. 저자는 [준비] [관찰] [그리기] [다듬기] 그림 단계에 맞춰 자신이 오래 걸어온 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수년간 창작하는 일을 지속해왔더라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그림을 향한 진심, 그림을 대하는 마음을 이 책에 정성스레 담아냈다. 그림 대신, 무엇이든 대입해도 좋다. 대개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한, 좋아하고 설레는 일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이다.

  •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
    조애나 러스 (지은이), 박이은실 (옮긴이) | 낮은산 | 2021년 3월 "김초엽 추천, 누가 문학의 보편이 되는가"

    어떤 음악도 영화도 책도 그것이 달린 줄기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가 영향을 받은, 또 준 다른 예술가들이 있고 그들은 어떤 토양을 형성한다. 그 토양이 커지면 주류라고 불린다. 그리고 마치 외계에서 온 것 같은 취급을 당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토양 없는 여성 작가들. 이들은 계보 없이 갑작스레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왜? 어째서 이들은 돌연변이가 되었는가.

    돌연변이는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계보를 삭제당하면서. SF 작가이자 이 책의 저자인 러스는 "세상에는 어느 누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여자들이 쓴 좋은 문학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만 그들은 삭제 당했다. 이 책은 세상이 어떤 식으로 여성 작가들을 지워버리고 여자들이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여성의 가치는 글쓰기가 아닌 집안일에 있다고 주입하거나, 여성의 글은 가벼워 읽을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여성 작가가 쓴 글이 사실은 남자가 대신 써줬다거나 심지어 글이 스스로 써진 것이라고 말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여성 작가들은 뭉텅뭉텅 잘려 나갔다. 러스는 '관습'과 '문화'라는 말을 뒤집어쓴 체계적이고 철저한 여성 억압의 방식들을 짚어낸다.

    그는 이와 동시에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폄하되고 더럽혀지고 지워진 작품과 작가 들을 하나하나 복원해나간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낯선 작가와 작품 들 위의 흙먼지를 털어내자 미세한 관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다루기 힘든 괴물과 씨름"한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많은 주석이 그 어려움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그가 애써준 덕분에 우리는 귀한 기록을 얻게 되었다. 꼭 필요한 작업을 어떤 이가 더할 나위 없이 잘 해냈을 때, 나머지 사람들은 그에게 빚을 진다.

  • 타이탄의 지혜들
    데이비드 M. 루벤스타인 (지은이), 김현정 (옮긴이) | 토네이도 | 2021년 3월 "무엇이 리더의 핵심 자질인가?"

    IMF 외환위기 당시 한미은행을 인수했던 기업, 작년 한국계 미국인 이규성 씨가 CEO에 등극하고 최근에는 카카오 모빌리티에 투자하고 뚜레쥬르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던 기업, 바로 블랙스톤, KKR과 함께 세계 3대 사모펀드로 꼽히는 칼라일 그룹이다. 저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칼라일 그룹의 공동 창업자이자 회장으로 약 4조 원의 순자산을 보유 중인 세계 경제의 거물이다. 그는 워싱턴 경제클럽 회장 등 다양한 외부 활동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 정상의 리더들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 책은 그 값진 만남들의 결과다.

    루벤스타인이 인터뷰한 31명의 면모는 단연 압도적이다.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팀 쿡 같은 기업가부터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콘돌리자 라이스 같은 정치인, 대법관 긴즈버그와 골프선수 잭 니클라우스, 그리고 워런 버핏까지. 우리 독자들은 그들이 전하는 삶의 지혜를 한 자리에서 모두 접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자질과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제가 가진 거라곤 열린 마음과 미래에 대한 믿음뿐이죠.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한계도 설정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세계적 성악가 르네 플레밍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 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은이), 조혜진 (옮긴이) | 창비 | 2021년 3월 "편혜영, 강화길 추천! 라틴아메리카 현대문학 대표 작가"

    휴가를 보내기 위해 시골 마을을 찾은 아만다와 어린 딸 니나. 한가로이 햇빛과 수영을 즐기는 나날은 짧은 꿈처럼 지속된다. 이웃 여인 카를라에게 들은 기묘한 이야기가 모든 것을 바꿔놓기 전까지. 카를라의 아들 다비드가 개울물을 마신 후 원인 모를 병에 걸렸으며, ‘녹색 집 여인’에게 주술 치료를 받았지만 그 후 ‘괴물’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다. 아만다는 카를라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하지만,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 결코 아만다를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두 사람이 어떤 시공간에 있는지, 어떻게 함께 있게 된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언가 어둡고 거대한 것이 엄습하고 있다는 어떤 분위기만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 모든 모호함과 긴박함 속에서 책 속 인물이 겪는 불가해한 공포가 책을 비집고 나와 스멀스멀 퍼지고, 화자의 움직임과 정서 변화가 그대로 느껴져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입체적인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은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2019년과 2020년 이례적으로 2년 연속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현대문학 대표 작가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는 말과 함께 편혜영 작가가 추천하며 함께 읽은 소설.

3.302021
  • 미래가 불타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 (지은이), 이순희 (옮긴이) | 열린책들 | 2021년 3월 "그레타 툰베리 추천,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

    기후위기에 큰 관심 두지 않았던 독자들이 이 책을 처음 접한다면 절박한 문체에 놀랄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10년 동안 기후 변화와 관련해서 써온 기사와 논평, 강연 원고를 엮은 내용이다. 그는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에 민감한 촉을 세우며 빠른 속도로 망가져가는 지구를 감지해왔다. 인류에게 허락된 마지막 기회 앞에서 당연히 절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10년, 전 세계가 현 사태를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그린 뉴딜을 통해 전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그레타 툰베리의 시위를 비롯해 지난 10년간 진행됐던 수많은 기후운동들을 소개하며 현재의 상황과 운동의 흐름을 짚어준다. 그가 종합한 이 흐름의 방향은 '그린 뉴딜'이다. 에너지 전환, 녹색 산업의 배양, 무상 의료/보육/대학 교육 등 그는 비상사태 대응을 위한 총체적인 계획을 설명한다.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온 입체적 대응이다. 또 한번의 기회는 없다. 어떤 핑계도 의미가 없는 비상 상황, 단 10년 안에 멸망으로 질주하는 열차를 막아서야 한다. 우리가 다 같이 들불처럼 번져가야만 이 일을 해낼 수가 있다고, 그가 간절히 외친다.

  •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은이), 홍한별 (옮긴이) | 민음사 | 2021년 3월 "가즈오 이시구로,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발표 소설"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되는 인공지능 로봇 매장. 쇼윈도에 진열된 '클라라'는 바깥 세상에 호기심이 많다. 거리를 비추는 햇빛의 색깔과 무늬, 아이들의 웃음소리, 서로를 끌어안는 사람들의 행복한지 속상한지 모를 표정. 창밖 풍경을 빠짐없이 눈에 담아 언젠가 인간 친구를 만나 그 세계 속에서 함께할 자신을 상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라 앞에 다가온 한 소녀. 걸음걸이가 불편하고 어딘가 그늘을 가진 듯한 조시를 보고, 클라라는 한눈에 조시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인공지능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물음이 무례하게 느껴질까 조심스러운 것은 소설 속 클라라가 보여준 무수히 따스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에 '마음' 외에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과 상호작용을 유심히 관찰하며 기억하고, 진심을 다해 위로의 말을 건네고, 태양이 자신에게 주는 양분과 힘이 조시에게도 닿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행동하는 클라라.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건네는 자신의 전부에 대해 생각한다.

  •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
    김옥선 (지은이) | 상상출판 | 2021년 3월 "여락이들,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

    지난 5년간 여행 유튜버로서 세계 곳곳을 여행한 경험을 뜨겁게 나눈 '여락이들'이 첫 책을 펴냈다. 러시아, 쿠바, 인도, 프랑스, 스위스, 이집트, 포르투갈, 태국, 그리고 한국. 아름다운 여행지, 재밌는 여행을 선택한 대신 겪어야 했던 전전긍긍의 시간들과 속내, 영상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숨은 에피소드까지 담아 여락이들만의 여행기를 펼쳐 보인다.

    책은 아버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관한 가슴 아픈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하고 싶은 일은 후회 없이 다 해보라는 엄마의 응원이 더해져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마음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며 선택한 것이 여행이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여행이었으나 계획한 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넘어지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반복하며 길 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여행의 순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여행을 통한 깨달음, 새로운 도전. 그 값진 이야기들이 여행의 설렘으로 이끈다.

  • 집 안에 무슨 일이?
    카테리나 고렐리크 (지은이), 김여진 (옮긴이) | 올리 | 2021년 3월 "2021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꽃이 핀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 창문으로 인상 좋은 할머니가 보인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는 무시무시한 식자재(?)가 담긴 커다란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새와 고양이가 방긋 웃고 있는 작은 집, 빨간 망토가 걸쳐진 창 안에는 늑대가 입맛을 다시며 웃고 있다. 할머니와 빨간 망토 아가씨는 벌써 잡아먹힌 걸까?

    2021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상을 받은 카텔리나 고렐리크의 <집 안에 무슨 일이?>는 페이지를 넘기며 확인하는 반전과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뒤 페이지의 일부가 보이는, 창문이 뚫려 있는 페이지를 통해 먼저 창문 안의 풍경을 상상해보고 이후 페이지를 넘겨 창문 안의 모습을 확인한다. 안과 밖의 반전을 보는 재미와 더불어, 겉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쉽고 재미있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