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여성이 순간적인 실수로 전혀 다른 인생을 걸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은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작용으로 인해 인간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나는 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등장인물 모두 인생을 납치당한 사람들이다. 어디서 누구의 손으로 키워졌든, 그 과정이 조금 비정상적이라해도 인간은 파괴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보다 젊은 날에 쓴 글을 다시 읽으면 그 무지와 옹졸함, 미숙함에 반드시 부끄러워지지만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어도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마흔이 되어도 나는 이런 식이라며 뻔뻔하게 구는 것일 수도 있고 체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 생각하면 변변치도 못한 것만 써서 엮은 이 에세이는 나에게 내 키와 같은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친한 친구와 마주앉을 때처럼 젠체하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는 그런 나의 모습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 문고판 후기
‘영유아 학대사’를 선택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지 학대에 관해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다거나 이 이야기를 통해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또한 법정에서의 사건명은 ‘학대사’이지만 실제로 학대였는지 여부도 마지막까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의냐 과실이냐를 떠나서 아이를 죽인 사건을 선택한 이유는 화자가 피고에 과도하게 감정 이입할 필요성을 생각했을 때, 부부 사이보다는 아이의 존재가 더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죽이는 일이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는 가장 괴롭고 충격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