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의 분재(盆栽)였다.
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내게 물밥을 떠먹여주었다.
수령 56년,
이제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의 수형이 잡혔을까.
오늘 아침, 나의 분재에서 꽃이 피었다.
장돌림 아버지보다 튼튼한 역마 한 마리 끌고 세상을 떠도는 사이
첫 시집을 내고,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고,
하필, 또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낸다.
첫눈이 하필 흰색인 까닭은 첫눈 맞는 대추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시집과 시집의 사이, 대체 그 10년이란 무엇인지.
봄여름가을겨울 물 밥상 차려 올린 내게 앙가슴을 열어준 풍로초 한 송이…….
10년이란 오늘 아침 눈을 뜬 꽃만 같다.
나무를 닮은 풀 한 포기 화분에 담아 10년을 살폈더니 비로소 나무가 되었다.
그 느려터진 세월의 뒤안에서 나도 나무가 되려는지 낡은 팔다리에서 싹이 돋는다.
어쨌거나 사람이라는 나무라면 다행이겠다.
아껴 먹은 햇살 몇 술 간장 종지에 담아두고 집 밖으로 나선다.
늦기 전에 바다의 숲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
길은 늘 아버지가 걸었던 그 길,
익숙한 초행이 즐겁다.
2014년 겨울
‘진리를 규명하고 싶은 감정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해서 일본 최고의 다큐 사진 ‘미나마타’를 기록한 구와바라 시세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고 천명한 작가 아니 에르노. 그리고 발터 벤야민.
이들은 내게 글도 사진도 ‘산책자가 아니라 내부자의 시선’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 그때마다 거리(距離)의 문제를 송곳처럼 들이밀었다. 대상과 나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 다큐멘터리다.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이 당연한 이치를 종종 의심한 덕분일 것이다. 현재 내 시선이 머문 시공간이 어딘지, 진실을 분별할 만큼 거리는 좁혔는지, 여인숙과 철거 현장을 오가며 시시때때로 내게 반문하는 것은. 『바다, 인간의 조건』이 그 대답의 일단을 보여준다면 다행이겠다.
흑백소설의 진실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면 무슨 이야기를 쓰든 모두 진실이다.’
영화 〈ALL IS TRUE〉의 중심인물 셰익스피어의 대사다. 같은 제목으로 수록한 작품에서도 인용한 바 있다.
모든 문학작품이 당연히 그렇겠지만 소설집 <아버지의 초상肖像>은 진실의 기록이다. 삶과 죽음, 욕망과 좌절, 동행과 배반, 상승과 추락에 대한 진실을 중·단편소설 여섯 편으로 담았다. 진실의 가치와 경중을 떠나서 모든 것은 오롯이 진실이다.
나는 진실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아버지의 초상>에 실린 모든 작품의 중심인물을 나-이민우로 선택했다. 나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편협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캐릭터로 한정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의 초상>에 실린 작품들은 색과 맛은 다르지만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겠다.
시골 훈장의 장남. 일제 징용피해자. 한국전쟁 피난민. 육장六場을 떠돈 톱 장수 장돌뱅이.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연보의 소유자인 아버지는 나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다. 내가 눈을 뜰 때마다, 숨을 몰아쉬는 순간마다 맞닥뜨리는 가장 구체적이면서 공고한 현실이다. 어린 아들의 등에 쇠톱을 휘두른 아버지와 동행과 결별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읽고, 쓰고, 찍으며 이순의 문턱을 넘었다.
나는 <아버지의 초상>을 내면서 한 가지를 작정했다. 아버지와 가족사로부터의 일탈이다.
92년간 가족이라는 덩굴을 이끌고 세상의 벽을 타고 오른 아버지. 가늘고 여린 당신의 힘으로 일곱 권의 시집과 소설집, 그리고 두 권의 흑백다큐사진집을 건축했다. 그런데 왜, 다시 아버지인가. 묻어 둔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디지털 광속의 시대에 꺼내는 일은 아닌가. 반문에 대한 답은 명료하다. 자유를 위해서다. <아버지의 초상>은 아버지라는 세계와의 마지막 갈등이며 동시에 극복을 위한 배수진인 셈이다.
“나중에 커서 내 얘기를 꼭 연속극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버지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화려한 약력에도 불구하고 내 일천한 능력 탓에 무명으로 묻히고 말았다. 당신껜 면목이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극구 만류하는 아버지와 가족사의 누설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이제 당신도 나도 자유로울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화석처럼 굳어져 더 이상 늙고 낡아질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붉은 세월의 녹물이 빈틈없이 배어든 당신의 흑백사진. 그와 엇비슷한 색채를 띤 진실의 존재들.
<아버지의 초상>을 아날로그 활자의 셔터를 눌러 찍은 ‘흑백소설’이라 부르자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2021년 늦가을
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