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고형렬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4년,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

직업:시인

최근작
2024년 3월 <몇 개의 문답과 서른여섯 명의 시인과 서른여섯 편의 시>

이 저자의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로쟈
1번째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후애(厚...
2번째
마니아
마니아 이미지
올리브
3번째
마니아

그 길의 그 상수리나무

‘그 상수리나무’는 자신을 끝까지 찾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유쾌하지만도 않을 뿐더러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 상수리나무 앞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 나그네였다. 아니 시간을 쓴 적이 없다. 어디 한곳 쓴 적 없는 마음이 있다면 그가 상수리나무가 아닐까. 무용은 세상 만물 중 그 어느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한 번도 쓰지 않음 쪽으로 탈주하는 것이 만물과 인간을 찾는 길인지 모른다. 지리소(支離疏)도 쓴 적이 없는 그 무엇의 이름일 것이다. 유한한 존재의 숙명 앞에 던져진 선물은 무엇일까. 책무만 강화된 불행한 사회적 존재로부터의 과분한 내적 초월과 탁부득이를 확인하기 전에 어쨌든 나그네의 지체는 자신에게만 있다. 장자는 대목(大木)이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누가 인간과 사회를 위한다고 말해도, 어느 나무가 새잎을 피운다고 말해도 무용만 못할 것 같다. 소통은 양적으로 줄어들고 불통은 질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인간은 너무 용이하고 과도하게 소통했기 때문에 지배되고 이용되어 왔다. 그것이 역사와 문명, 삶의 모습일지 모른다. 나그네가 찾아가는 장자는 쓸 수 없는 재목 같다. 그는 산목의 철인이었다. 역시 장자의 나그네에겐 그 어찌할 수 없는 불통과 모름을 간직할 수밖에 없다.

김포 운호가든집에서

언제나 처음처럼 서투르고 부끄러운 시작의 어린 마음 '초심(初心)'으로 시집을 묶는다. 고르고 다듬어서 발표한 시들 중에서 다시 시집으로 묶을 작품을 고른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또 어쩌면 이렇게 시에 숙련되지 않는가 자문했다. 이제는 모든 시재와 시상들이 만만치가 않아서일 것이다. 시집을 내면서 무슨 군말이 필요하겠는가. 마치 시집을 내는 것은 죄지은 사람이 벌을 서는 것과 같다. 나는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선배와 친구들, 그리고 후배에게 매맞을 준비를 했다. 시의 대상이기도 한 내 마음속의 독자인 시재들에게 좋은 시를 선보이지 못해 부끄럽다. 이 다음에 더 좋은 시집을 내겠다는 다짐이 있을 뿐이다. 2001년 11월 불당(佛堂)골에서

대양의 쌍둥이

내려앉고 싶지만 쉴 곳이 보이지 않는다. 평화롭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못하다. 불안하고 암울하다. 저쪽 피사체는 초점이 맞지 않고 수정체는 많이 일그러졌다. 착륙 불가의 여정이 시작된 이래 그 불구의 비상은 끝이 없다. 내 안에 있어야 할 나 자신도 없는 것 같다. 하나의 DNA에서 모든 허무가 찾아왔을까. 나의 현존은 이미 과거라는 화석 속 갇혀버렸다. 오직 이 파닥임만 나의 영원한 잠이 될 것이다.

등대와 뿔

고백하고 싶은 것은 감추지 않았다. 자신을 치유하도록 퍼즐을 맞췄다. 그 흘러간 시간의 구멍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있는 나는 분명 나인데 다른 나인 것 같다. 그 다른 내가 그립다. 이 책은 비역사적인 것들의 기억이다. 젊은 날의 방황과 유혹, 어리석음, 슬픔, 갈망 같은 감정에 충실하면서 망각한 것을 찾도록 했다. 결국 하나인 줄로만 알았던 나는 여럿이었다. 어떤 시공간의 과거만 나의 기억 속에서 떠돌고 편재(偏在)한다. 그 사라진 과거의 한계와 떠돎을 찾아간다. 어느 시대나 나름의 한계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 편린들이 모인 간헐적 기억을 다시 편집했지만 역시 다른 과거일 것이다. 모든 생은 영원 속에 편집되는 한 장의 사진이다. 나라고 하는 타자가 되어 살았던 삶의 한구석을 비춰보았지만 이것은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의 앨범일 뿐이다. 이 앨범 속에 나오는 속초와 사진리의 작은 풍경과 예후들이 미풍처럼 스쳐가는 것들을 읽어주기 바란다. 그 사이와 갈피와 뒷면에서 나는 아슬아슬하게 존재했던 것 같다. 부족하지만 후일담을 넘어 하나의 작품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기억했다. 읽으면서 속초에 얼굴이 까만 한 소년이 있었구나 하는 것만 느껴주어도 행복할 것 같다. - ‘문학 앨범을 내며’ 중에서

몬순 vol.1

통약(通約) 불가능해 보이는 패러다임이 하나의 소통을 가지는 것은 다른 미래와 과거의 시간에서 이곳으로 예외와 미정을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경계를 이동하면서 없었던 시단의 영토와 독자를 만나는 희망과 설렘이다. 천변만화하는 대륙과 반도, 열도의 유구한 문체와 현재적 문제들이 몬순의 계절에 맞춰 출항하길 바란다.

바람이 와서 몸이 되다

시단에 나와서 44년 동안 쉬지 않고 쓰고 발표해온 시가 고작 일천여편에 지나지 않는다. 선집을 생각하고 써온 것이 아님에도 결과적으로 이것을 향해 뛰어온 모양새가 되었다. 선집을 내는 느낌은 시와 삶에 죄지은 자가 선고를 기다리는 피고인의 심정이다. 형량이 얼마가 되든 간에 무엇이 시인가에 대해 한마디는 해야겠지만 시는 작고 어렵고 불편한 가시와 씨앗 같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어떤 안개 바람의 이미지 하나를 붙잡고 봄마다 먼 곳으로 떠났음에도 그 꿈의 언어는 멀어졌고 나는 시에서 실종되었다. 벌써 정신이 돌아오는 듯하던 어느 봄날, 시장 앞의 전신거울 속을 지나가는 한 남자와 스친 적이 있었고 이미 십여년 전에 죽은 어느 시인 같았으며 어떻게 사는지 통 알 수가 없는 옆집 남자 같기도 했다.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 자신을 잃는 길이었다. 시는 겉도는 삶보다 난해하고 때론 슬픈 액체로 채워진다. 육체와 현실보다 있지도 않은 언어들의 지시 대상 너머의 가유(假有)를 믿고 저 스스로 조합될 때, 선명한 시간경험이 되곤 했지만 역시 정신머리가 흐려지고 길을 잃을 때 시는 기웃거리며 불행한 자를 방문하곤 했다. 그래서 일찍 망가졌으면 좋았으련만 망가지지도 않았다. 잔설이 밟히던 열여덟에 봄처럼 가출해서 시작된 그 시는 끝나지 못했고 이곳까지 유랑의 혼이 되었다. 그래서 앞에 오는 것이나 뒤에 간 것이나 절나를 잃어버리고 돌아온 어느 시인의 문 앞에서 절망과 희망으로 얼룩졌다. (…)

밤 미시령

나의 시는 다시 표지 밑에서 죽는다. 아니 인쇄하는 과정에 죽었을 것이다. 어쩌면 시가 씌어질 때 이미 나의 손에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언어의 껍질만 남긴 채.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름달이 다른 하늘로 빠져나올 수 있을지. 현실은 까다롭게 날아오는 공 같다. 나의 시들은 나의 시의 징검돌이 되기를 꿈꾼다. 기호와 메타포로 가득한 세계에서 나는 아직 시의 길을 찾지 못했다. 언어를 상대해서 싸우는 나의 손을 거미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 나도 절망의 아침 가까이 다가온 것인가. 모든 시인들의 눈이 어두워지는 아침에 도착할 것이므로 걱정할 것은 아니다. 실존의 성찰만 더 필요하다. 그나저나 하늘에 떠도는 수많은 돌 중 하나가 날아와 내 머리를 부수고 공중으로 사라지길 바란다. 희미한 광기와 선미를 남기고, 캄캄한 천체를 보는 굴절망원경의 심방에 오롯이 있는 달처럼 내가 사용한 말들이 숨어 있을 수 있을까. 여전희 씌어지지 않은 시를 탐하면서 덕지덕지 때 묻은 이 못난 시들이 깨끗해지라고 세상 멀리 내보낸다.

시 속에 꽃이 피었네

여러분도 길을 가다가 무서울 때, 쓸쓸할 때, 어처구니 없을 때, 먼 여행 중일 때 한 구절을 '중얼중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멀리 있는 친구도 떠오르고 가족도 생각나면서 심심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 것도 없는 듯한 감정 속에 이 시라는 것의 언어들이 놀고 반짝이는 것이 즐거워집니다. 시가 무용한 것이기에 매력이 있지만 그러나 너무 거창한 것에 사용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시는 생활과 감정에 필요한 친구입니다.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시는 믿을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존재한다. 경황없는 세월 속에서 한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멈추어본다는 포즈이며, 한편의 시를 발표한다는 것은 또 부단한 떠남의 결의이다. 시는 플랫폼에 내리고 열차는 다시 떠난다. 방황은 시 앞에서 머뭇거린다. 언제나 그는 비정치적이면서 정치적이었고 본질적이면서 초월적이었다. 땅에 떨어지는 빠른 빗방울처럼 재촉해서 남은 길을 시여, 어서 뛰어가자. 바람이 뿔을 뚫고 가듯이 말이다. 그가 도착하지 않아도 시는 이미 그곳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2020년 코비드19의 봄, 양평에서

유리체를 통과하다

4년 전 한 시골로 내려와 파묻혀 살면서 나는 낯선 나를 만들고 싶었다. 야릇한 절망의 끝이 만져졌다. 나에 대한 반성과 반작용의 작업들이 내 어두운 눈구멍을 활짝 열어주길 바란다. 감히, 그리고 어느새, 육십(六十) 앞에 왔다. 천변을 겪고 만화를 맞는 이 새로운 전이(轉移)와 인식은 ‘이사’이다. 이 강을 건너간 쟁쟁한 시인들은 무언가를 한 가지씩 얻어간 것으로 안다. 초월하고 번지고 생략되어 사라지는 물빛 같은 정신의 언어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찢어진 눈 밖에 창상(創傷)은 수많은데 해결(解決)은 없다. 아직도 시는 이 렌즈에서 시작하고 끝날 수밖에 없다. 한 덩이 혼돈의 떡을 108개로 떼어 다시 하나로 묶은 이것은 어둡고 불분명한 의식의 파편들이다. 이것들이 어쩌다 내가 찾은 나의 정체와 분신이다. 시란 무엇인가. 33년 써왔지만 나는 시의 불가지론을 믿는다. 이 부지(不知)가 시를 쓰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길을 모르고 걸어왔으니까 앞길도 모르고 걸어갈 것이다. 자신의 길을 혼자 가는 시를 따라간다. 이 악몽의 시들은 모두 신작이다. 언어에 속도를 내고 서사를 줄여보고 간결한 형식을 취했다. 끊어질 순 없는, 무사(無事)의 우둔처럼, 일성순(一成純)의 자연에서 뒹굴 것이다. -2012년 지평(砥平) 갈지산 밑에서 - 시인의 말

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

그의 날개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나의 두 가슴만했다 숨을 모으고 그리고 거두어가도 그의 시의 여행은 여기까지이다 나의 두 날개는 그의 가슴속 하늘을 날고 있다 또 한번 이 시집으로 나는 그 오후에 죽는다 2013년 5월 지평(砥平)에서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