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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신이현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4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청도

직업:소설가

기타:계명대학교 불문학과 졸업

최근작
2024년 1월 <떼루아의 맛>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라가 전쟁, 기근, 경제공황과 같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일방적인 희생을 당하는 세대는 노인, 청소년, 유아들이다. 이 세대의 대부분은 환란의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으며 해결의 주체가 아니기 십상이다. 특히 청소년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마주하고 있어서 그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97년 12월의 국제구제금융 요청 이후 우리사회엔 '반성에 이어오는 국가의 재활' '물질 대신 정신의 가치 구현' 등의 담론이 무성했다. 하지만 이런 턱없이 희망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의는, 아무런 수식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우리나라가 망했다'라고 말하는 청소년의 눈에는 위선적인 것이다. 이 소설은 청소년들이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통과하고 느끼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숨어있기 좋은 방

숨어있기 좋은 방을 갖고 싶어요 누군가 나에게 “너는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숨어있기 좋은 방을 갖고 싶어요.” 그리고 조금 머뭇거리다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그 안에 남자도 한 명 있으면 좋겠어요.” 나 자신을 위해 만든 방이지만, 인생이 고단하다고 느끼는 당신에게도 이 선물을 주고 싶다. 거기서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데리고 가든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그냥 선물이니까.

알자스

알자스는 평범하고 조용한 시골이다. 모험가의 심장을 방망이질하는 태양과 바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프랑스와 독일 국경의 산골 마을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로 부드럽게 펼쳐진 포도밭과 꼬부랑길이 숨겨진 첩첩산중에 사는 이곳 사람들은 낭만적이지도 멋스럽지도 않다. 검소하고 투박하고 내성적이다. 사람과 풍경이 꼭 닮았다. 보주 산맥 골골이 피고지는 꽃과 열매를 알고 사람들의 속마음을 아는 데는 적어도 네 개의 계절은 함께 해야 하는 세월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알자스인이여. 이 이야기는 보주 산맥 속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은 노부부, 나의 시부모인 루시와 레몽 이야기다. 알자스로부터 지구 반대편 끝에서 태어나 이곳에 떨어진 나는 이방인으로서의 낯설음을 느릿느릿 극복해 나갔다. 때로는 겨울 전나무 아래서 눈 벼락을 맞으며, 때로는 여름밤의 천둥 번개에 잠을 깨며, 때로는 물든 포도밭 길을 달려가는 강아지를 뒤따라가며, 때로는 루시의 텃밭에서 뽑은 감자를 볶아 먹으며, 때로는 레몽의 다락바에서 잡동사니들을 구경하며... 지금도 알자스 이야기는 진행 중이다.

에펠탑 없는 파리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정말 싫어질 때가 있다. 하늘은 햇빛에 인색하고 부드러운 가랑비는 음험하게 등을 적셔 독한 감기에 걸리게 한다. 사람들은 쌀쌀맞은데다 잘난체하고 지나치게 예쁘게 장식한 가게들은 모든 것이 너무 비싸다. 긴 세월 안정된 연금제도 덕택에 화려한 성공도 뼈저린 실패의 인생 드라마도 없다. 전업 주부가 직업인 이곳의 내 인생은 하품 나도록 따분하게만 계속된다. 아, 숨이 막힌다. 파리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의 기분이 되어 이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한달 정기권 전철 티켓이 있었기에 이 도시 안에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파리의 많은 골목길들을 알게 되었다. 갈라지고 곰팡이 피거나 지린내 진동하는 곳도 있었고 무서운 곳도 있었다. 웃기고 이상야릇한 곳도 있었고 새소리 꽃 냄새 가득한 곳도 있었고 숨 막히게 적막한 곳도 있었다. 매번 낯선 골목길에 들어설 때마다 단편영화가 시작되는 듯한 두근거림 혹은 문고판 얄팍한 책의 첫 장을 펼칠 때의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어디고 사연 없는 골목길이 없었다. 이 글은 도시에 갇힌 자를 위한 산책의 방법들이다. 기본 준비물은 지하철 정기권과 가벼운 운동화, 커피 혹은 국수 한 그릇 값 정도의 돈이 필요하겠다. 그럼, 즐거운 골목길 산보 되시길.

열대탐닉

나는 이상하고 야릇한, 참으로 많은 열대 과일을 맛보았다. 황홀한 맛이었다. 영하의 맹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은 사계절 과일들의 달콤함에는 딱딱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런 과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삶의 목표가 뚜렷하지만 차갑고 전투적인 성향이 강했다. 반면 열사의 과일들에는 뜨거운 즙이 흘렀고 부드러웠다. 먹는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달콤함에 취해 가는 그 순간이 좋기만 했다. 이것으로 끝, 그러니까 말 시키지 마. 이렇게 되어 버렸다. 수영장에 누운 5인이 그랬다. 그들은 진정 열대 탐닉자들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남자

이 이야기는 안주머니에 술 한 병과 면도기, 빗을 꼽고 오늘도 어느 벽에 기대서 있는 그 남자에 대한 것이다. 행복한 당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눈에도 행복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입 안이 너무 바싹 말랐거나 오랫동안 모래만 씹고 살았던 이라면 문득 그가 보일 것이다. 그러면 부탁하건데 망설이지 말고 그를 따라가보라. 짤막한 여행을 끝낸 뒤 먼 하늘을 보며 아, 이제 좀 살아봐야겠군,하고 생각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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