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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이하영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직업:방송작가 북칼럼니스트

최근작
2023년 9월 <책 읽는 책 쓰는 책 만드는>

누군가 함께라는 것만으로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나에게 오래 준비해온 야심찬 여행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돌아보면 2020년은 험난했다. 별것 아닌 일에 감정이 폭발했고, 사소한 돌발 상황에 긴장했으며, 밤마다 내일 일을 걱정하느라 잠 못 이루었다. 지금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나와 가족, 가까운 이들이 모두 무사한 것에 안도해야 하나, 아니면 다시 내일 일을 걱정해야 하나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오히려 하늘이 맑아져서 좋다고 호탕하게 웃어보아도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현해탄 건너기가 동생 만나기보다 쉬웠고, 태평양 횡단을 연례 행사하듯 했던, 지난 몇 년간의 자유롭던 외유가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개인이 평생 배출하는 탄소량에 한도가 있다고 해도, 내 탄소배출량은 아직 한참 미미한 수준일 텐데, 이렇게 턱 발이 묶이다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발밑에 구름, 구름 밑에 까마득히 망망하던 바다를 내려다보던 항공 시점은 이제는 나의 일상과는 멀어져버렸지만, 반면에 확 가까워진 것들도 많다. 요 몇 달 사이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틈틈이 걸었다. 오륙도에서 출발해 국토의 동쪽 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을 한 코스씩 다니기 시작했다. 제주 올레길을 21코스부터 거꾸로 걷는 여정에도 동참했다. 이제 고작 김녕과 함덕을 걸어서 지났을 뿐이지만, 내 생애 최고의 바다 빛깔을 가슴에 담은 그 시간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바다의 물빛을 들여다보고, 파도 소리에 호흡을 맞추며 바다 새들의 리셉션에 말없이 배석해 있던 그 순간에, 비로소 내 안의 바다를 느꼈다고나 할까. 소금내가 간간한 바다의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한참 만에 만난 가족의 얼굴을 보듯 바다를 그 파란 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바다를 오른편에 두고 틈틈이 걷던 몇 달 사이 일어난 변화 중에는 수영 강습을 등록한 사실도 있다. 일곱 살 때 남해해수욕장에서 물에 빠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인지, 수영 배우기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수영장 물에서 약품 냄새가 나서, 물이 차서, 샤워실이 비좁아서 등등 여러 가지 핑계로 포기하곤 했었다. 이번에도 감염병 유행을 기회로 삼았다. 스포츠센터가 한결 한갓진 틈에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이었다. 나 자신에게 수영 배울 기회를 마지막으로 준다는, 자못 엄중한 도전이었으나, 또 실패하고 말거라는 예감을 떨치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수압을 느끼며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물이 포근하게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랑 블루>를 여러 번 돌려본 때문일까. 물의 압력을 받으며 바다 밑에서 자크가 느꼈을 행복한 고독을 떠올려보기까지 했다. 물론 자크처럼 바다를 음미하기는 내 폐활량이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어쨌든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시작은 반이 아니라 전부다. 배우가 서양인이면 누가 주연이고 조연인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분간을 못하고, 영상 문법에 어두워서 이야기를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던 영상맹이었던 나도 영화의 세계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영화가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대안연구공동체의 골방에 모여 온갖 영화를 함께 보아준 금영모 멤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눈 영화 몇 편이 이 책에 새겨져 있다. 감염병 때문에 텅 빈 극장에서 나 혼자 보았던 영화들도 이 책의 곳곳을 수놓고 있다. 아무도 없는 극장에 홀로 들어서서, 정말 나 혼자뿐인 거냐고 놀라워하며 빈 객석을 스마트폰으로 찍기도 했지만, 나 말고는 관객이 아무도 없었을 때조차도 나는 결코 혼자는 아니었다. 단 한 명인 관객을 위해 발열체크를 하고 입구를 안내해준 이가 있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에 맞춰 돌아와 출구를 열어주고 나가는 방향을 알려준 이가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세상이기에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하며 항상 연결되어 있다. 어떤 밤에는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에 사무쳐 눈물지을지라도, 벽 너머 어둠 속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우리는 괜찮을 것이다.

예술가의 서재

모든 시작은 신선하고 아름답다 이름 앞에 방송작가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도 면구스러운 처지에 ‘북칼럼니스트’라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은 타이틀을 멋대로 붙이고 뻔뻔하게 지면을 어지럽힌 이 글들은 개인적으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절의 흔적이기도 하다. 일에 지치고 자신감을 잃은 채 집 밖에 책상 하나 갖기를 소망하던 내가 일 년 동안 책을 읽으며 혼자 묻고 혼자 답하던 시절이 통째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술가의 삶과 작품, 그들이 읽었던 책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답사를 하며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처음 쓴 원고에서 단 한 줄도 더 써넣을 수가 없었다. 그저 눈살이 찌푸려지는 몇 마디 감탄사들만 지워냈을 뿐이다. 다시 읽어보아도 뺄 문장은 있어도 더할 문장은 없었다. 물론 더 많은 자료가 쌓였고 더 긴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예술가의 삶을 기록한 전기와 그들이 사랑했던 책을 숨가쁘게 따라 읽었던, 서른다섯 살의 내 숨결이 고스란히 새겨진 그 조악하고 거친 문장들이 이제는 예쁘게도 보인다. 연재 당시 2주마다 돌아오는 마감을 막아내기 위해 나는 책상 위에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고, 뒤에서 누가 쫓아올세라 허겁지겁 읽어치운 후, 다짜고짜 글을 써 내려갔다. 그 시간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쫓기듯이 써 내려간 글을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 책을 펴낼 용기를 불어넣어준 사건이 있었으니, 스물다섯 살 취업준비생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참새에게 방앗간이 있다면 내게는 집 근처의 ‘대안연구공동체’가 있다. 그곳에서 나는 금요일 열 시마다 열리는 영화감상 모임을 4년째 꾸려오고 있다. 이 모임에 새로 들어온 젊은 취준생은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언론사 취업 대비 관련 스터디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원래 꿈은 ‘영화평론가’였다기에 그 꿈을 접은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 활약하고 있는 영화평론가들을 보면, 내가 지금부터 아무리 영화를 열심히 본다고 해도 도저히 그들만큼 영화를 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분들이 영화를 향유했던 그 시대, 그 문화가 너무나 부러워요.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했다는 것이….” 그녀는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어떤 시간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하고 있었다. 대체 그녀가 생각하는 오늘날의 유명한 영화평론가들이 시네키드였던 그 시절의 그 문화란 어떤 걸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태어나자마자 텔레비전 리모컨을 손에 쥐고, 전 세계 인터넷 형제들과 영화파일을 공유하며, 구세대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영화를 즐기는 지금 이 시대 영화광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한다고, 그렇게 영화를 본 세대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를 가지고 나름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벽에다 대고 독백을 하는 듯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외로운 일을 지속적으로 해내는 고독한 시간에는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고 믿는다. 뒤돌아보기 싫어 밀쳐놓았던 글들이 이제 와서 내게 얼마나 많은 영감과 힘을 주는지 말로 다 못 하겠다. 모든 시작은 신선하고 아름답다. 서툴고 틀리는 것을 겁내지 말고, 매번 새로 시작하고, 약속을 지키려 애써보자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가끔은 주저앉아서 아무 쓸모없는 것 같은 일에 시간을 소모해보아도 좋다고, 이 보잘 것 없는 작은 책으로 말해주고 싶다. 아는 사람의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집어든 한 권의 책 표지를 살펴보는 기분으로 이 글들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책 읽는 책 쓰는 책 만드는

나를 찾아줘 이야기가 좋은 것은 그 속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가 좋은 것은 내가 알고 싶은 인생이 옷을 입고 거리를 걸으며 목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대리 체험하게 해주고 내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겪어보게 해준다. 영화를 통해 아름다운 이야기, 궁금한 인생을 많이 만났다. 견문이 부박한 나는 영화가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 될 거라 기대했으나,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영화를 통해 나를 좀 더 잘 알게 된 것뿐인 것 같다. 어제 본 영화도 제목조차 가물가물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아주 오래전에 보았는데도 자꾸만 어떤 장면이 생각나고 어떤 인물을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 있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인물들은 책 읽는 사람, 책 쓰는 사람 그리고 책 만드는 사람이다.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은 책 만드는 사람이라는 집합 속에 포함된다. 작가와 독자가 없다면 책은 만들어지지 않을 테니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을 매개로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를 쓰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오브제로서의 책에 주목한 글이다. 이후로도 영화 속에 나오는 책에 관한 이야기는 자꾸만 나를 사로잡아서 작가와 출판사, 서점 등이 나오는 영화를 줄기차게 찾아보게 되었다. 특히 책을 만드는 사람, 편집자가 등장하면 내 홍채가 커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책에 언급한 영화 이야기들은 언젠가 본 영화의 기억에 의지해 시작했지만 한 번씩은 더 찾아서 보았다. 다시 보면 내가 기억하는 장면이 아주 짧게 지나가기도 하고, 전엔 눈에 안 들어왔던 신scene이 다시 보이기도 한다. 요즘은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쉽게 다운로드 받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서 짬짬이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 영화도 있다. 고색창연한 필름깡통 시절도 아니고 뻔히 21세기에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말이다. 유독 아날로그 유통방식만을 고수하는 제작자들이 있는 것이다. 어디서도 다운로드할 수 없고, 영화도서관에 가서 DVD나 운이 좋으면 블루레이 디스크를 구해서 볼 수 있는 이런 자료들은 서점에서 구입할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품절인 때가 많다. 몇 년 전 영화 프로그램 대본을 쓸 때의 나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을 찾아가서 대출하여 DVD에서 영상을 추출해 동영상 파일로 만들었다. 거기다 자막 작업까지 새로 해서 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는 데에 대단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거기 투자할 만한 시간과, 무엇보다 ‘의지’가 뒷받침됐을 뿐이다. 간혹 클라우드에 남아 있는 그 시절 흔적을 볼 때면 새삼스레 놀라곤 한다. 이렇게까지 했었구나 싶어서. 이 책은 영화 작품 자체를 소개하는 게 목적이 아니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무언가를 추출해내서 거기에 무언가를 덧씌웠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의지’가 내 기억 속에서 추출해내는 그 무엇이 드러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의 ‘기억’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영사실 같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이란 게 결국, 각자의 마음속에 영사된 필름의 환영을 보며 일희일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 이제 함께 영화 속으로 편집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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