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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이름:이응준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0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소설가

기타:한양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최근작
2023년 8월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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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 책의 형식과 내면은 근미래 가상 역사와 추리, 느와르와 스릴러, 블랙코미디와 멜로, 신화와 우화 등등이 원래 그런 것처럼 혼혈되어 있다. 무거운 주제와 난해한 배경을 흥미롭게 승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말미암아 이렇듯 복잡한 장르의 유전자를 지닌 소설이 태어나고 말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쓰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모두가 재미있게 읽어 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나는 문학 이전에 문학에 대한 과학을 잃진 않았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나는 일기를 남기지 않는다. 내 이 부끄러운 오늘을, 그리하여 괴로움인 저 어제를 굳이 기록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내 소설들을 보면 그것들을 빚어내려 애쓰던 무렵의 내가 타인은 해독해내지 못하는 암호가 되어 거기에 있다. 나는 내가 쓴 것들 말고는 모두 잃어버렸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 지금의 나는 과연 /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쏘아올렸던 / 폭죽들이 모두 사라진 / 저 어두운 밤하늘의 / 맑은 별들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에 잠긴다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완전히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은 손에는 피가 묻어 있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죽음이 죽음인 것처럼.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그간 나는 너무 긴 시간을 길에서 떠돌았다. 실지로 이 책의 절반은 술집과 찻집 모퉁이에서 씌어진 것들이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명백히 기웃거렸고, 반드시 정면으로 시비 걸어야 했던 상황들로부터 곧잘 도망쳤음을 고백한다. 물론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며 간혹 투덜거려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의 유치한 변명일 뿐이고 자기 연민일 터이다. 아주 멋진 음악을 들었을 때 잠시 온갖 아픔을 잊듯, 나는 흘러간 나를 용서하고 더불어 한바탕 웃어주기로 한다. 너무 오래 실망하거나 자주 그리워하는 것도 죄악인 까닭이다. 어른들이 부끄럽다는 막연한 생각에 난생 처음 시를 썼던, 그 광휘로 가득 찬 순간의 어린 나를 기억한다. 그때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인생에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덧 지금의 나는 묻는다. 내가 두려워하던 울긋불긋한 얼굴들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누가 내게 사랑하거나 혐오하는 법을 가르쳤고, 왜 내가 자진하여 거기에 몸을 낭비했으며, 내 마음에 물든 내 모습이 끌려온 그다지 밝지 않은 여기는 과연 어디인가를. 아마도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였기에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무리가 따를지언정, 이제는 내가 나를 믿어주어야 할 시기란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이 태어난 것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진리를, 또한 아무리 묘하고 기발한 이야기를 수억 편 찍어낸다 하더라도 결국엔 그 모두가 우리들의 평범한 하루하루라는 것까지도. 나는 다시금 출발선에 선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두근거리는 이 가슴이, 참 마음에 든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건 간에, 내가 가려는 그곳에서 끝을 볼 것이다.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숲에서 소년은 바다를 바라봤다. 소년은 숲이 괴로웠다. 숲이 있었고 소년이 있었고 시간이 있었다. 소년이었던 그가 숲을 베어 배를 만들었다. 숲은 사라졌다. 이제 가자.

내 연애의 모든 것

젊어서는 비극을 쓰고 늙어서는 희극을 쓰자. 스무 살 무렵부터 지녀 온 내 다짐이었다. 비극은 청춘이 쓰는 비극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고 반면 노인이 되어서도 인생이란 비극으로 멋진 희극을 써내지 못한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더 부끄러운 노릇은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삶이란 늘 계획과 예상을 빗나가기 마련이어서 이렇게 다소간 일찍 희극을 쓰게 되었다. 청춘은 결국 블랙홀 같은 상처만을 남기고 지나가 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은 평생 지은 죄의 이론을 체계화시키고자 회고록을 쓰고 있는 노인도 아니니까 말이다. 게다가 인간을 향한 내 비관이 비등점에 이른 마당에 코미디도 그냥 코미디가 아니라 러브스토리로 코미디를 쓰게 되다니 이게 과연 비극인지 희극인지 아리송하다. 파계한 입장에 변명 아닌 변명을 대충 하자면, 나는 희극을 비하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이 사랑을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대면할 수밖에 없는 모든 질문들 가운데 죽음 다음으로 엄중한 화두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랑에 정답이 존재하건 말건 간에, 사랑이란 의문부호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인생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숙제가 없다면 인간은 금방 빛을 잃고 시들어 버릴 것이다. 내게 있어 사랑에 대해 묻는다는 것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인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죽음은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고 그런 우리는 사랑이 있기에 운명과 투쟁할 수 있다. 하여 거대한 벽 앞에 홀로 서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 거대한 벽을 박살 내는 법까지는 못 가르쳐 줘도 그 거대한 벽 앞에서 맘껏 웃을 수 있는 방법은 알려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망치를 들거나 폭탄을 제작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도 세상은 내게 허황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발짝도 비켜서지 않으며 저 거대한 벽 너머에 뭐가 있는지 좀 봐야겠다. 화두가 풀리는 것 처럼 저 거대한 벽이 산산조각 나는 꼴을 꼭 봐야겠다. 내가 이러는 것은 우선 나 자신을 믿기 때문이고 저 거대한 벽이 사실은 허당과 허깨비의 합성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계산해 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뒤에 숨어 있는 것들이라야. 쓴 자와 읽는 자 사이에는 감히 아무도 개입할 수가 없다. 바로 그것이 내가 가소로운 수모에 종종 구역질이 나면서도 무슨 계시라도 받은 양 글쓰기를 계속하는 유일하고 충분한 이유다. 또 모르지. 어쩌면 그것이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사랑의 핵심일지도. 삶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희망을 잃어선 안 되듯이 웃음의 몸을입은 이 책의 혼은 사랑이다. 그리고 지난날 거대한 벽 앞에서 밤과 낮을 잊으며 홀로 그것을 쓴 자와 지금 어디서건 자신의 거대한 벽 앞에 홀로 서서 그것을 읽고 있을 당신의 똑같은 이름은 자유인이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나의 20대는 온전히 20세기의 끝이었다. 세기말에 청춘을 탕진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독특한 경험이었다. 하여 나와 함께 20대로서 세기말을 겪어낸 뒤 이 기괴한 21세기를 함께 돌파해나가고 있는 나의 몇 안 되는 오랜 독자들에게, 멀리서 아주 조용하게 한 외로운 작가를 응원해주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추억과 각성의 징표로서 이 책을 보내고 싶다. 더불어, 21세기의 청춘들이 이 책을 읽어준다면 좋겠다는 충정 같은 바람을 가져본다.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나는 내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종잡을 수 없었고 정처 없었다. 어차피 천사가 못 되는 것이야 바라지도 않는 기정사실이라지만 악마조차 못 되는 주제파악이 내게는 소년 시절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의 최대 의문이자 최악의 불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작은 죄를 몰래 짓고 집을 향해 일부러 터벅터벅 걸어가던 저물녘 무렵, 나는 허공의 멍한 햇살 속을 문득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이제껏 나를 사로잡으며 지배했던 이 괴로움이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모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았을 때의 그 느낌만을 경험하고는 여전히 한 마리의 짐승으로 남았다. 하지만 기뻤다. 나는 전체로는 깨닫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분으로는 완전히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사랑과 미학과 얼룩의 투쟁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무정한 짐승의 연애

나는 죽기까지 내 마음 어디에도 나의 사원을 세우지 않을 작정이다. 대신 여기 짐승을 화두로 삼은 아홉 편의 소설들이, 인간이라는 물음표를 괴로워했던 내 청춘의 면벽을 두고두고 증명할 것이다. 부질없는 속세의 판단은 이미 나의 소관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책 한 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지금의 이 기쁨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밤의 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다가 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불모와 모순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만큼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법이다. 글을 쓰는 시간은 이제껏 내가 이승이라는 사막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깨어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것들을 눈이 멀 정도로 환멸하면서도 인간의 곁을 아주 떠나 버리지는 못하는 얄궂고 답답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칼날에 상처 입듯 쾌락에도 상처받는다. 나는 인간에게 상처받았듯이 문학에 의해 상처 입었다. 그래서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작가다. 나는 후회로 가득 찬 한 인간으로서 변명이 부질없는 청춘과 멀어지며 언뜻 지루해 보이는 질문들을 차마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은 무엇이었던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신기루에 불과한 악몽이거나 악몽에 가까운 신기루일 뿐이었을까. 사랑의 아픔으로 통찰하는 인간 미학과 닫힌 마음으로는 감각할 수 없는 인연의 구조를 화두로 삼은 이 연작소설집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은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쓸쓸한 의지와 불굴의 희망을 주장하고 있다. 하여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는 이로부터 상처 입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위로를 받으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위로를 갈망하는 인간에 대해 숙고해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여섯 편의 소설들이 한 몸이 돼 화살처럼 날아가 꽂혀 영혼을 밝히는 상처가 되기를 소망한다. 인생과 인생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뒤돌아서면 일제히 한 줌 재일 것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해서 그토록 미워했던 일들도 다 어리석은 과거일 뿐이다. 다만 내 문학의 목표는 오늘보다 내일 단 한 걸음이라도 더 전진해 있는 것이다. 유서 깊은 탐미주의자답게 이기고 지는 것은 아예 없는 것으로 치겠다. 오로지 어떤 거대한 진리보다 아름다운 노래 한 소절을 얻기 위해 슬픔을 귀하게 여길지언정 한심한 눈물보다는 무조건 강해질 것이다. 죽는 그날 그 순간까지, 나는 죽음이 인간을 대하듯 싸우고 싶다.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소설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나의 종교이므로 이것은 내게 교리문답과도 같다. 누군가 내게 다시 묻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는 대답한다. 소설이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간의 이야기란 결국 인간이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뭔지 몰라 심지어 생명이 불태워지기도 하는, 그러나 그 아수라 같은 사랑을 끌어안고 노래하는 만큼은 분명히 성장하는 모든 인간들의 총칭을 ‘소년’이라는 이미지로 떠올리며 나는 여기 이 소설들을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다. 천국에서조차 방황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그 소년은 자신의 마음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가슴속에 감추어진 저마다의 모습이다. 설령 당신이 백 살 먹은 노인이라 할지언정 사랑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라면, 그 소년은, 그러니까 당신의 소년은, 다름 아닌 당신이다(pp. 274~75). 누군가 내게 아직도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책 한 권이 모든 사람들을 진보시키진 못하더라도, 세상을 진보시킬 한 사람을 호명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어느 분야에서건 책과 작가가 개입되어 있지 않은 혁명이란 없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작가란, 오로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저 써야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쓰는 존재인 것이다. 시대의 환경과 대접에 따라 낙담할 바엔 애초에 손대지도 말았어야 할 일을 누군가는 죽는 그 순간까지 운명처럼 갈고 닦으면서 살아야 한다. 요컨대 그것이 장인(匠人)이 만들어내는 문화이며, 한 사람의 영혼이란 하나의 우주이기에, 한 사람을 감동시켰다면 이미 그것은 비좁은 세상 따위가 아니라 온 우주를 감동시킨 것 아니겠는가. 그저 나는 타인에게는 즐거우나 스스로에게만큼은 고통스러운 여러 형태의 문건들을 되도록 많이 남기고 싶을 뿐이다. 이제 내게 있어 문학은 나의 종교라는 감옥을 벗어나 인간의 사랑에 대한 신앙을 해석하는 도구가 되었다. 나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다만 작가라는 것은 뿔 달린 현대의 사제(司祭)임을 소중히 간수하며 나의 나머지 날들을 감당할 작정이다(p. 276).

약혼

궁극적으로 타인은 타인의 목소리를 모른다. 가면이 본질인 것들은 도처에 흔했다. 나는 아둔한 내가 문학 덕분에 나름의 작은 빛이나마 지닐 수 있어 무척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나머지 젊은 날들을 예의 없이 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여 너무 많은 것들을 증오하던 나는 문득 모든 힘을 하나로 집중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혜를 자처하는 자들이 나의 소망을 곡해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더 늠름하게 싸워내고 싶었다. 늙어 세상의 이치를 통달해 요망해질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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